땡그랑 한 푼, 땡그랑 두 푼
골룸이 절대 반지를 손에 쥐고 외치는 한마디.
“My precious!”
500만 원은 나에게 절대 반지에 버금갈 정도의 가치였다. 2년간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처럼 한 톨, 한 톨 월급을 모았다. 잠깐 공백기에 받았던 할머니의 사랑 가득한 용돈도 저축했다. 크게 불릴 줄은 몰라도 저축하는 방법은 알았기에 생각날 때마다 저축해서 모은 돈이었다. 옷 사는 것보다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새벽에 퇴근해 아침에 출근하며 택시를 이용했던 내가 모은 돈이었다.
이 돈은 내가 한 번도 쥐어본 적 없는 거액이었다. 곧 로또가 당첨될 것 같지만, 여전히 내 희망 사항으로 남아 있지만, 미래에 내 손에 쥘 로또 당첨액을 제외한다면 500만 원은 100% 내가 만져본 가장 큰 액수였다.
사실 500만 원을 모았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거창하진 않았다.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이 자리에서 공개하자면, 바로 ‘독립’이었다. 그럭저럭 잘 사는, 자식한테 손 안 벌려도 될 정도로 평범하게 사는 부모님 밑에서 독립하고 싶었다.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부모님 슬하에서 영생을 누리고 싶다는 욕심이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도 자유를 원했다. 눈총도 눈총이었지만 자식이 아무런 꿈도 없이 숨만 쉬며 대소변 제조기로 사는 걸 기쁨이라 여기는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독립과 자유는 비슷한 어감으로 내 심장을 뛰게 했다. 태국으로 간다고 해도 언니가 곁에 있어서 잔소리는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여행할 때 크게 드는 비용을 나누자면 총 3가지였다. 첫 번째는 항공권, 두 번째는 여행자 보험, 세 번째는 환전(여행하면서 사용한 경비)이었다. 이번에 이야기하는 내용은 나를 슬프게 하는 내용이다. 돈은 쓸 때는 행복하지만 쓰고 난 뒤의 자취를 되짚어 보면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보통 지인들이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길면 2주였다. 그러나 난 도피 여행이지 않았던가. 편도로 끊었다. 언제 돌아올지는 내 기분에 맡기고 싶었다. 예전 세계여행을 다녀올 때도 돌아오는 날짜를 세다 보니 우울해졌다. 기차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파도처럼 내 마음이란 바위를 깎아댔다. 이번엔 그런 마음을 느끼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였다. 하지만 파도는 다른 방향으로 내 마음을 쳐댔다.
편도 티켓을 끊으면 항공사에서 각서를 쓰게 한다. 안 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회사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각서를 인쇄하여 내 앞에 작성하게끔 했다. 내용은 뻔했다. 편도 입국으로 인해 입국 심사에서 거부당했을 시에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며, 항공사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 통상적인 법정 드라마 같은 이야기. 체크인할 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차라리 티켓을 끊을 때 아예 예약을 하지 못하게 하든가, 미리 대문짝만하게 경고창을 띄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덜 불쾌했을 것이다. 이제 와 입국 거부가 될까 걱정을 하게 만들면 안 된다. 항공사 입장도 생각하고,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그들을 생각하며 각서에 사인하였다.
여행자 보험은 인터넷으로 빠르게 진행했다. 돈을 다 쓰면 돌아올 예정이었으니 언제 돌아올지도 나도 모르고, 하늘도 모른다. 예측할 수 없는 장기 여행에 필요한 것은 여행자 보험이 아니라 유학생 보험이었다. 유학생 보험은 3개월 이상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장기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여행자 보험이 아닌 유학생 보험을 추천한다.
비행기 티켓으로 29만 원, 보험으로 16만 원이 들었다. 태국 북부 여행 비용은 한화로 335,800원이 들었다. 10,000바트를 챙겼었는데 언니가 3,000바트를 주며 거래를 시도했다.
“너가 머무는 숙소의 화장실과 침대 사진 찍어서 보내.”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유를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예전에 언니와 여행하면서 나한테 머물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찾은 곳은 오래된 더블 침대가 삐걱거리고, 화장실은 공용 화장실에다가 군데군데 녹이 슬고, 전등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지저분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서 하룻밤을 지냈다.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언니가 보았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솔직히 부모님한테 내가 이런 곳에서 머문다고 말했다간 큰 불효를 저지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는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어떤 방에서 자는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도 그렇게 될까 염려했다. 나는 3,000바트에 수고스러움을 얻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쁘지 않는 거래라 생각하고 있다. 만약 이 돈을 안 받았다면 끝내 노숙자처럼 길거리에서 잠을 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태국 날씨가 더워 얼어 죽을 일은 없지만 맥주를 못 마셔서 불행했을 것이다.
내 손에는 13,000바트가 있었다. 지갑을 두 개로 나누었다. 하나는 큰돈만 넣어놓는 지갑, 하나는 나머지 작은돈을 넣는 지갑이었다. 하루에 쓸 돈을 약 300바트로 잡았다. 그러나 숙소값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나는 스쿠터를 탈 줄 모르는 뚜벅이었다. 비루한 뚜벅이는 걷다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야 했다. 교통비로 총 4219바트를 사용했다. 자전거도 못 타는 자에게 교통비는 필요악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걷고 또 걷다가 지칠 때쯤 교통을 이용했다. 만약 도시를 이동해야 한다면 제일 저렴한 버스 시간대를 찾아서,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예약했다. 그렇게 하는 게 더 저렴했다. 택시를 타야 하는 관광지라면 버스가 있는지 수소문했다. 썽태우(태국에서의 마을버스 같은 교통수단)를 조사했다. 썽태우 이용할 때도 비용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덤탱이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 최대한 지도 어플을 이용해서 km를 계산해서 이 정도 거리면 비용은 얼마 정도인지 파악하고 가격 협상했어야 했다.
숙박비와 식비로 9208바트를 썼다. 숙소는 1박에 180~300바트로 비교적 저렴한 곳을 찾아다녔다. 식비도 비싸면 1끼에 200바트를 썼다. 200바트를 썼을 때는 정말 어이없었다. 분명 99바트 뷔페를 갔었는데 혼자 먹었다고 자리값 포함해서 200바트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억울했지만 뷔페 시스템이 이해가 되어 200바트를 주고 나왔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99바트에 흡족하게 식사하고 나왔을 텐데.
북부 여행은 언니가 급하게 출장가야 하는 일이 생겨 종결되었지만, 13,000바트로 행복하게 돌아다녔다.
#4
여행비를 줄이는 데는 정보가 필수다. 여행하다 만난 한국인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저렴한 숙소를 물었다. 왜 말이 통하는 한국인에게 안 물어보냐고 물어보니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면 한국인이 많고, 청결하고 비싼 숙소를 말해준다고 했다. 또한 한국인들과 다니면 먹는 것도 비싼 것을 먹는다고 했다. 나도 그 부분은 인정한다. 저렴한 곳을 잘 알고 있는 여행자는 외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여행 기간이 길었다. 소비 패턴이 보통 한국인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 한국인의 팁을 이용해 말을 튼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숙소는 어디에서 머물었는지, 밥은 어디가 맛있는지 등을 물었다. 이건 비교적 잘 먹혔다.
하지만 경고한다. 저렴한 곳일수록 더러울 수 있고, 기대에 한참 못 미칠 수도 있다. 위생과 서비스를 포기하면 아낄 수 있다. 처음에도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태국에서 거지처럼 다니는 사람은 여행자와 거지 말고는 없다. 말 그대로 거지처럼 다니면 된다.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제대로 된 숙소와 식당을 방문하면 된다. 그래도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저렴하다.
교통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교통비를 줄이는 방법은 자전거나 스쿠터를 대여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비용이라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태국에서 면허 없이 탔다가 병원 신세를 진 사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심지어 몇 달 전 외국인 친구와 채팅하다가 태국 빠이에서 오토바이 사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인 여자가 역주행한 것이다. 내 친구는 다리에 깁스했고, 그 여자는 입원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했다.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타면서 배우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건 국내에서 연습해라.
난 여전히 못 탄다. 자전거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에서는 운전하지도 못한다. 운전면허도 따 볼 심상으로 시도했다가 우회전 90도 드래프트를 시전하고 감독관과 참관자의 외마디 비명을 들었다. 그러고 나니 알게 되었다. 될놈될, 안될안(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이라는 것을. 포기는 빠를수록 행복하고, 편하다. (여행 초반에는 오토바이를 못 탄다는 사실을 인정하질 못해서 조금 불행했다)
술값을 줄이면 된다. 이 방법은 추천하지 않는다. 저렴한 맥주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도피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맥주 한 모금에 있는데 말이다. 종일 뜨거운 햇볕을 쬐며 다니다가 시원한 맥주를 마실 때 느껴지는 목구멍의 청량감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우연히 만난 여행자와도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제격이다.
다만 맥주를 피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상한 새끼를 마주할 때다. 어떤 새끼랑 맥주를 마시는데 촉이 좋지 않을 때 도망가야 한다. 여행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을 만난다. 그럴 때는 감을 믿고 피해야 한다. 당신이 싫다고 말해도 그걸 알아듣는다면 그건 미친놈이 아니다. 여행에서 만난 미친놈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을 명심하고 또 명심할 것. 그리고 인간은 의외로 촉이 발달되어 있다는 것. 직감을 믿고 행동하자. 맥주가 눈에 아른거리더라도 맥주보단 생명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