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사람잡네
빠이를 기억하기론 낮에는 평화롭고 밤에는 유쾌한 곳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직접 밥도 만들어 먹고, 한국인을 우연히 만나 오토바이 얻어타고 놀러 다녔다. 영화도 보고, 시도 쓰고, 맥주도 마시고. 꽤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다시 빠이에 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에는 이곳을 가야지, 저곳을 가야지. 많이 바뀌었을까 하는 설렘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도착해서 숙소를 알아보러 다니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추억하는 빠이는 정겨운 시골의 모습이었는데 잘 꾸며진 읍내 느낌이었다. 시간을 피해갈 수 없는 건 나나 빠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예전에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찾아다녔지만 도통 보이질 않았다. 결국 플랜 B로 방갈로에 머물기로 했다. 꾸역꾸역 걸어가 방갈로에 입성했다. 여전히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생리가 찾아온 것이다.
생리가 주는 스트레스는 형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 더운 나라에서 생리는 그야말로 헬이었다. 기분이 축축 처지고, 조금만 걸으면 체력이 방전되고, 게으름 수치가 늘어나는데 생리대는 피를 머금고 있으니 갈아줘야 한다. 잘 때는 피가 옷이나 매트에 묻을까 걱정해야 한다. 그만큼 가만히 있어도 칼로리 소모가 느껴지는 생리현상이었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절실했다. 과거에 빠이에서 느낀 힐링을 다시 느꼈어야 했다. 나는 「아트 인 차이」에서 느꼈던 힐링을 재경험하기 위해서 그곳을 찾아다녔다. 분명 학교 근처에 있었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다 숙소로 돌아와 가게 위치를 검색했다. 그곳은 조금 떨어진 골목으로 이사 갔다. 옛날의 그 풍경을 기대할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되었던 「아트 인 차이」였다. 존재만으로 힐링이 될 수 있는 카페였다. 나중에 카페를 차린다면 그곳처럼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두세 명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안락한 카페를 말이다.
생리깡패와 함께 「아트 인 차이」에 도착했다. 오늘은 차이하기 딱 좋은 날이었는데 운수 좋은 날이었나 보다. 차이를 먹고 싶어서 왔는데 왜 문을 열지 않겠니. 왜 왔는데 먹질 못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내일 다시 도전하리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숙소로 돌아가자니 아쉬움이 컸다.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식사를 주문하려는데 갑자기 한국말이 들려왔다.
“한국분이세요?”
한국인이었다. 그녀가 먼저 말 걸어주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한국인은 못 볼 줄 알았는데 만나다니 기뻤다. 금세 우리는 합석하며 쉴 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정작 통성명은 하지 않은 채.
여행 경비를 물어보니 나보다 적은 금액인 300만 원이었다. 20대 초반이었던 그녀는 대학교를 입학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0대 후반인 내가 봐도 반할 것 같은 멋진 여동생이었다. 사실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예쁘고 멋있으면 언니라고 부르고 싶지 않는가.
빡빡한 여행 경비로 어떻게 생활하는지 꽤 궁금했다. 하루 경비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그녀는 숙박비를 최대한 줄인다고 했다. 현재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는 싱글룸에 개인 화장실까지 있다고 했다. 그 가격이 무려 150바트. 믿을 수 없었다. 나는 200바트였는데 그것보다 저렴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싱글룸이고 개인 화장실까지 있다니 충격적이었다. 방갈로에 화장실도 공용이라 씻기 번거로웠는데! 어떻게 그런 곳을 찾았냐고 물어보니 치앙라이에서 친해진 장기 여행자가 알려주었다고 했다. 이럴 수가. 럴수 럴수 이럴수가! 그녀를 만난 게 행운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해 준 게스트하우스 이름과 대략적인 가격을 핸드폰에 적었다.
그녀는 인도에 가고 싶은데 괜찮은지 염려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걱정하고 있다고 말은 했지만 눈빛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한다는 건 꽤 설레는 경험이었다. 위험할 수 있지만 무릅쓰고 출발한다는 것. 그 매력에 푸욱 빠진 그녀를 응원했다. 다만 인도가 현재 외국인 여성 범죄가 많이 이슈가 되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서로 갈 길이 달랐기에 레스토랑에서 헤어졌지만 이후에 내 도피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루만 만났지만 함께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보다 더 훌륭하게 여행할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를 생각하며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 부단한 노력도 했었다. 내 여행의 모토가 되어준 그녀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방갈로는 자연과 하나가 되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모기장이 있으니까 벌레들의 침입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이분들께서 날 시험에 들게 할 줄은 몰랐다. 조물주가 이분들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내 삶이 평온했으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뭔가 이상했다. 개미가 일렬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하나, 바로 내 가방이었다. 뭐지? 개미가 좋아할 만한 단 게 전혀 없는데 왜 개미들이 가방에 들어가 있는 것이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는 「개미가 사람 잡네」 시리즈에 등극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개미 떼가 내 가방을 점령했다.
개미가 싫다. 개미의 군집생활이 더욱 싫다. 작은 점들이 모여서 소곤소곤 이야기할 것만 같았다.
“저기 아랫마을 개미네가 오늘 길을 걷다가 홍수를 만나 죽었다지 뭐야.”
“내가 듣기론 홍수가 아니라 인간이 물에 빠트려 죽었다던데?”
“뭐야? 한낱 인간이 우리 개미를 괴롭힌다고? 복수하자!”
“복수하자!”
원래 작은 게 무서운 법이다. 처음 개미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내가 언니 뒤를 졸졸 쫓아다닐 정도로 성장하고 말도 제법할 줄 알았을 때다. 아마 유치원생이었을 것이다. 언니는 몸집이 큰 왕개미를 잡아 내 옷에 붙였다. 나는 커다란 덩치에 놀라 울고불고 난리였다.
“떼 줘. 떼 줘어어어엉.”
동생이 이정도로 놀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언니는 부랴부랴 왕개미를 내 옷에서 떼어줬다. 몸통만.
“으아아아아아앙!”
나는 개미를 다 떼 달라는 거였지 몸통만 떼 달라는 게 아니었다. 개미는 살겠다고 콱 내 옷을 물었겠지만 그게 죽음을 부를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개미는 결국 죽고 난 그 기억이 또렷하게 기억나고 개미만 보면 무섭고 개미는 질색이고 가끔씩 언니에게 “그때 그랬던 거 기억나느냐?” 하며 추억팔이하는 「개미가 사람 잡네」 에피소드였다.
여태껏 살면서 개미에게 해를 끼치는 짓은 잘 하지 않았는데 개미가 내 가방을 침입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행여 개미님들께서 내 가방을 건드리실까 염려되어 음식도 안 넣고 다녔다. 그랬는데 개미님들께서 내 가방에 알현하신 게 정녕 사실인가 싶었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개미가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거였다. 햇빛을 쐬면 알아서 제 갈 길 가시겠지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개미님들은 그리 쉽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가방을 들고 안절부절못했다. 있는 힘껏 흔들질 않나 갑자기 안을 확인하지 않나 내 행동이 이상했는지 게스트하우스 매니저가 다가왔다. 그는 무덤덤하게 툭툭 가방 속 개미를 털어주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개미님들과 이별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혼 도장을 찍고 싶은데 자꾸 위자료만 높게 부르고 도장 찍어줄 생각은 하지 않는 배우자 같았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개미가 싫어할 냄새가 무엇인지 폭풍 검색했다. 더는 내 가방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내 방갈로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할 계획이 필요했다. ‘개미 기피제’를 검색하니 명반이나 붕산이 기피제로 탁월하다고 써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이것들을 구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소금을 뿌리면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소금을 계속 들고 다니며 귀신 쫓듯 개미에게 뿌리고 다닐 수도 없고 엑소시스트를 위해 소금 테두리를 만들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한 묘책은 개미도 곤충이고 모기도 곤충이니 모기향을 피우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가방 안에 있던 게 개미를 부른 것 같으니 세탁하기로 했다. 가방도 함께.
생리로 체력 고갈이자 멀리 나가는 건 최대한 자제했다. 그리고 어플로 책을 다운 받아 읽기 시작했다. 책 읽는 게 느려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생리도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무려 3권이나 읽었다. 페이지 수도 짧았던 것도 아니었다. 여유롭게 책을 읽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평온했었다. 마음의 안식을 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거짓된 안식이었다. 한편으로는 외로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걸 알아 차렸지만 주변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이었고 좀처럼 스스로 다가가기 어려웠다.
어쩌면 거짓된 안식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나를 채찍질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내 외로움을 들키지 않도록 책 속으로 숨었다. 빠이에서 외로운 추억을 그렸다. 그림을 그려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일기를 써도 내용은 외로움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외로웠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을 살펴볼 시간이 많아졌다. 특이한 사람들이 많아 밤이 지루하진 않았다. 다만 그들과 많은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소속감을 제대로 못 느끼는 나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이게 다 생리 때문이다. 이게 다 개미 때문이다. 이게 다 나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