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파이 이야기

by 진하하하하

#1

여행자의 천국이라 불리는 태국에서도 시골, 그곳에서도 더 깊숙이 숨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꽤 많은 여행자가 머물렀다. 국적도 다양, 문화도 다양한 이곳에서 하루하루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독일, 노르웨이, 호주, 일본, 미국, 영국, 벨기에, 한국 등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마치 비정상회담을 직접 체험하는 듯한 야릇한 기분도 들었고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넓은 잔디 마당에서 요가하는 임산부를 볼 수 있고, 오후에는 따스한 햇볕에 원반던지기를 하고, 저녁에는 식탁에 앉아 서로가 준비한 음식 재료로 요리하고, 밤에는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한다. 방갈로가 주는 매력이 이런 것인가 싶다. 자유로움을 물 흐르듯이 즐기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가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외국인들을 떠오르다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세상은 넓다는 생각이 들어 우수에 빠지기도 한다. 그 당시 생리를 해서인지 조금은 감성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 구경이 재밌는 법이다. 사람 구경하다 보니 빠이에서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 것만 같다.


#2

브루스는 호주 출신으로 치앙라이에 사는 할아버지였다. 잠시(잠시라고 하기엔 그는 나보다 오래 머물렀다) 여행할 겸 빠이로 놀러 왔다고 했다. 그곳에서 맥주와 흡연을 즐기고 계시는 히피 할아버지였다. 나도 친구들 사이에서 알아주는 애주가이지만 브루스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민다. 그를 볼 때마다 한 손에는 맥주가, 다른 한 손에는 담배가 있었다. 마치 맥주가 벗이라면 담배는 연인처럼 항상 함께했다. 할아버지가 종종 기침을 격하게 할 때가 있는데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닌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면 “난 괜찮아!”라며 씨익 웃었다. 난 안 괜찮은데 말이다.

우스꽝스러운 흉내를 제법 잘하는 브루스는 옛날에 일본과 한국에서 일했었다고 했다. 호주 출신이니까 영어 강사를 했을 것 같았는데 색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퍼레이드에서 춤췄지. 후후.”


놀이공원에서 퍼레이드 복장을 하고 행렬에 참여하는 산타 할아버지가 생각나 바로 수긍해 버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는지 그는 어깨를 펴고 허허허 하고 웃기 시작했다.


브루스와 버금가는 장기 투숙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대신 그를 대표하는 우롱차만 생각날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엌에 가면 식탁에 앉아 우롱차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볼 수 있다. 별다른 계획이 없던 나는 식탁에 앉아 토스트를 먹고 있으면 그는 자연스럽게 우롱차를 권했다. 그것이 시작이다. 우롱차의 굴레에 빠진 것을 환영한다. 그는 우롱차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다. 아니, 유별났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우롱차는 우리면 우릴수록 맛이 좋고 몸에 더욱 좋다고 했다. 나에게 소주잔 크기의 찻잔에 우롱차를 무한으로 리필해 주었다. 다 마시면 또 따라주고, 또 다 마시면 또 따라주고. 그렇게 이십여 잔을 마신다. 우롱차가 다 떨어지면 찻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향을 맡게끔 시켰다. 우롱의 향을 이렇게 해야 느낄 수 있다나 뭐라나. 우롱차는 우리면 우릴수록 맛이 깊어진다고 하던데 나는 맛을 잘 알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커피에 물을 타면 탈수록 보리차 같아지는 거와 같은 이치로 우롱차는 우롱을 담갔다 뺀 물처럼 느껴졌다.

난 그의 국적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우롱차를 건네받았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가끔 새로 들어온 투숙객이 출신 나라를 물어보면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Anywhere.”


국적이 불분명한 그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뭐 하고 있는지 찾아보면 꽤 재밌었다. 그는 나름대로 하루를 계획적으로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우롱차를 마시고, 권하고, 노트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그 음악이 명상할 때 들을 법한 괴상한 음악이라 듣는 사람은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롱차와 어울리는 음악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종일 우롱차와 데이트를 하고 밤 9시가 되면 마당으로 가 택견을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너는 왜 그래?”라며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그의 취향을 존중해 줄 뿐. 책 제목 하나가 생각났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3

내가 여행 다닐 때 호텔보다 게스트하우스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비교적 많기 때문이다. 물론 숙박비도 숙박비지만(가끔 내가 도피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이렇게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면 알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우롱차에 대해서 1도 몰랐던 내가 우롱차를 경험하고, 우롱차를 마실 때마다 그가 떠오르고. 퍼레이드 행렬을 보며 브루스 할아버지의 웃음을 기억하고. 이런 게 여행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작은 씨앗이 마음속에서 싹을 피우기도 한다. 2011년 끝물, 그 작은 씨앗은 내 마음에도 심어졌다. 인도 고아에서 알게 된 영국인을 짝사랑했었다. 영어도 못 하는 내가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를 만나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원래 2주 정도 머물다가 다른 도시로 떠나려고 했는데 친구을 만나고 그와 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1달이 되었다. 그와 속 깊은 이야기는 주고받지 못했지만 함께 수영하고, 술 마시고, 밥 먹고 꽤 재밌는 날들을 보냈다. 비록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그저 함께 다니는 게 즐겁고 행복했다.


그가 더욱 좋아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해가 질 때쯤이었다. 그가 빈둥거리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해 지는 거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이곳에 머물면서 아직 선셋 포인트를 가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거기까진 거리가 있어 오토바이 없이는 이동이 힘들었다.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는 나에게 그 제안은 너무 달콤했다. 나는 당연히 가고 싶다며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 포인트까지 갔다. 지는 해를 보며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아이러니야. 맨 처음 너와 이야기할 때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몰랐는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어. 참 신기한 것 같아.”


그러면서 우리끼리의 신호 하나 생겼다. 양 끝의 관자놀이를 검지와 중지로 누르고 텔레파시를 보내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이때 만들어진 신호였다. 텔레파시의 대표적인 손짓이었지만 우리의 사이를 돈독하게 해 주는,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들의 친밀감을 상징하는 손짓이었다. 짝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좋은 추억이 되어 여전히 그날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4

여행에서 사랑은 운명적일 수밖에 없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끌림을 느끼고 함께하는 것. 그야말로 운명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길이 없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사랑은 국적을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한다. 이번에 그걸 뼛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방갈로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었다. 자정이 넘어도 잠이 오질 않아 누워서 전자책을 읽고 있었다. 책 제목은 『파이 이야기』였다. 생명을 담보로 호랑이와 대치하는 인도 소년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는데 남녀가 소란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대강 이야기 흐름을 보니 남자가 여자의 방갈로까지 배웅해 준 거였다. 남자가 떠나자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인도 소년이 어떻게 호랑이를 조련시킬지 궁금해졌다. 10분이 지났나. 왼쪽 방갈로에서 여자의 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여자 혼자 있는 방갈로였다. 신음은 방갈로의 엉성한 벽을 뚫고 내 귀까지 뚫었다. 나는 인도 소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하지만 신음을 직접 들은 건 처음이라 이것도 신기했다. 2분이 지나자 소리는 끊겼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오늘이 무슨 날인가 보다. 오른쪽에서 욕설이 담긴 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미국 드라마에서만 보던 욕설 담긴 섹스가 바로 옆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과 다를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드라마 같은 섹스를 직접 듣게 되었다. 시선은 핸드폰 액정에 고정되었지만 양 귀는 활짝 열렸다. 왼쪽에서는 자위, 오른쪽에서는 섹스. 책 읽기엔 타이밍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인도 소년이 죽을지 살지 1분 1초가 살 떨리는 장면이었다. 책 읽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침착하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위도 섹스도 언젠간 끝난다. 스크롤을 조금씩 내리며 인도 소년이 살아남기를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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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드디어 끝났다. 살다 살다 이런 경험도 해 본다. 그 당시에는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모든 게 마무리된 상황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개인적인 용무를 보는 것뿐이고, 나에게 피해 준 것도 없었다. 피해를 주었다면 소음 정도? 그것도 길지 않았다. 그 정도 소음은 견딜 수 있다. 이래 봬도 나는 어른이란 말씀.

본능에 충실했던 그들에게 고마웠다. 생리로 힘들고 지친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밤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일도 경험했는데, 뭘.’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난 꽤 보수적인 사람이었나 보다. 어찌 되었건 이번 경험은 태국에서 재밌었던 일을 말하라고 하면 열 손가락에 꼽히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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