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딸 김소라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 그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한국인이었다. 나보다 어리고,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섹시해서 질투가 났었다. 다음에 우연히 마주친다고 해도 질투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이야기를 쓰면서 나 스스로 얼마나 옹졸한지에 대해서 까발리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다. 사교적이라 생각했던 내가 전혀 그러지 못하고 낙오되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인생이다!’라는 심정으로 써 보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김소라(가명이다. 사실대로 쓰면 사생활 침해로 신고당할까 봐 이름을 바꾸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나 지인의 이야기 같다면 비슷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면 좋겠다). 빠이에서 가장 핫하다는 방갈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던 여행자 중 하나였다. 그녀는 내가 영어 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반가워했다.
“한국분이세요?”
특유의 악센트 때문이었다 생각한다. 난 너무 정직한 콩글리쉬를 사용했다. 그래도 의사 전달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다른 한국인이 알아본다는 게 재밌었다.
며칠 전에 한국인을 만나 신나게 대화를 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느껴졌다. 영어가 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느끼는 갈증을 소라와 이야기함으로 채우려고 했지만 그녀는 바빴다. 이미 그들과 함께하는 일행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통성명만 하고 헤어지려는 분위기였다.
아쉬웠다. 한국어로 수다 떨고 싶었는데 언제 다시 떨 수 있을까. 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합석해도 되냐고 물었다. 예쁜 그녀는 마음씨도 예뻤다. 당연하다며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와 함께 일행이 있는 테이블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유명인사였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 왔냐는 둥, 잘 다녀왔냐는 둥 꽤 인기 있는 한국인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이 상황을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내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대화를 이어가니 소라의 일행들이 우리를 축하해 주기 시작했다. 이미 매니저한테 한국인이 투숙 중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소라도 한국어가 하고 싶었는데 도무지 만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영어를 꽤 잘 하시는데요?”
“아니에요. 영어를 잘 못해서 게임할 때마다 후달려요.”
“오, 게임이요?”
게임을 할 정도면 영어를 못 하는 게 아니었다. 그 게임 룰을 이해하는 것도 만만치 않는 법인데... 시사에 대해서 토론하기는 힘들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정도는 된다. 심지어 그녀는 그녀 입으로 말했다.
“영어가 들리긴 하는데 무슨 말을 써야 하는지 생각이 안 나요.”
그렇다. 그녀가 영어를 잘 말하진 못하더라도 듣기는 최고로 잘한다는 것을. 부럽다. 난 듣는 것도 안 되는데... 엄친딸이 있다면 딱 그녀였을 것이다. 그녀는 딴짓하다가도 언제든지 끼어들어 대화에 참여하고 일행들에게 웃음을 준다. 무슨 말만 하면 빵빵 터지는 게 위축감이 들었다. 그녀는 영어도 잘하고 재밌었다. 질투가 났다. 그러나 그녀처럼 될 수 없는 내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질투를 한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렇다고 질투하지 말아야지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질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이래서 엄친딸들이란.(절레절레)
그녀는 치앙마이에서부터 친해진 일행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서로의 일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며 스스로 위안을 가졌지만 난 그녀의 눈빛 속에서 외로움을 보았다. 나만 본 게 아니었다는 듯 게스트하우스 남자 여행자들이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오늘 뭐 할 거야?”
“그냥 혼자 산책하려고.”
그중 소라에게 말을 많이 건 남자는 아랍계 외국인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랍인은 소라에게 이 노래 들어 봤냐, 어떤 노래 좋아하냐 등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를 이어갔다. 심지어 그 둘이 약간 떨어져 있다고 생각이 들면 자리를 옮겨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좀 전에 앉아 있던 곳에서도 대화는 가능했는데 말이다.
소라도 눈치챘을 것이다. 아랍인이 자신에게 지극한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행과 헤어지고 나서부터 슬픔이 그녀와 함께했다. 그녀는 가족들과 떨어지는 것보다 더 슬프다고 표현했었다. 그렇게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 또 한 명의 게스트가 등장하였다. 벨기에 출신의 오타쿠. 커다란 키에 순둥순둥한 얼굴을 가진 벨기에 남자도 아랍인처럼 소라에게 다가갔다.
벨기에인은 뉴페였다. 아랍인과 달리 이야기할 소재가 무궁무진했다. 같은 질문이어도 다른 대답이었고, 다른 반응이었다. 소라는 그게 나쁘진 않았는지 그랑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몇 마디 주고받았다.
맥주를 마시며 내일 무엇할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별다른 계획이 없으면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맛있는 음식을 파는 바를 아는데 거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벨기에인이 제안했다. 소라와 나는 딱히 계획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라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내일 셋이서 바에 가기로 약속했다.
다음 날 저녁. 바에 가는 동안 상황극을 벌이며 걸어갔다.
“그만 포기해. 너라도 먼저 가.”
“무슨 말이야. 다 같이 간다!”
침울했던 소라도 기분이 나아졌는지 상황극에 적극적이었다. 20여 분을 걸어 도착하니 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핫하다던데 사실이었다. 우리는 앉아 메뉴판을 살폈다. 우리가 주문하려는 메뉴가 없어 벨기에인은 종업원에게 물었다. 하지만 종업원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우리들의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재료가 내일 들어와요.”
우리는 이곳을 다시 와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소라는 친구와 만나기로 해서 못 온다고 했다. 그러자 벨기에인이 그 친구랑 또 오자고 제안했지만 소라는 섣부르게 약속잡지 않았다. 친구랑 이야기해 보고 나중에 연락 주겠다고 했다.
그녀의 단호함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난 이미 다른 남자들처럼 그녀에게 푹 빠졌다. 다음날부터는 친구와 다닌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도 숙소를 옮길 예정이라 그다지 큰 외로움은 느끼지 않았다. 아마 그녀와 나와의 추억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라의 일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베트남의 입국 심사가 삼엄하여 편도 티켓으로 입국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소라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공항에 가 체크인을 했다. 티켓 발부가 끝나고 들어가려는 찰나, 티켓을 재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아뿔싸. 직원에게 붙잡힌 것이다. 영화에서만 보던 사무실에 들어가 왜 편도만 끊었는지 등 질문세례를 받았다. 소라는 분명 왕복으로 티켓을 끊었는데 무슨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며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직원은 재차 소라의 티켓을 확인했다. 하지만 왕복은 무슨, 편도만 끊었다! 앙큼한 여우, 소라. 그녀는 여기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덧붙였다.
“친구가 티켓을 대신 구매해 주었는데 걔한테도 확인해 보라고 할게요. 만약에 안 샀으면 지금이라도 구매하면 되잖아요?”
그 말을 하면서도 정말 비싼 돈 주고 티켓을 사게 되면 어쩌지 하며 졸았다고 했다. 전화하러 간다며 소라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직원이 말렸다. 여기서 전화하라는 것이었다. 일이 쉽게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몰입되었다. 그녀는 직원을 떼어놓을 묘책을 생각하다 여기는 와이파이가 잘 안 잡혀서 나가서 전화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 말이 통했는지 다녀오라고 그녀를 보내줬다. 그녀는 유유히 비행기 티켓과 여권을 들고 탑승구로 들어갔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나는 쫄보라 티켓을 샀을 것이다. 그녀의 호기로운 행동에 감동받았다. 감동받은 만큼 질투도 느꼈다. 이런 경험들이 그녀를 한층 빛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헤어지면서도 그녀는 어느 곳을 가도 잘 버틸 것 같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며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