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능동적 행위여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삶을 살면서 능동적으로 행한 선택이라는 행위는 껍데기인 경우가 많다. 정해진 길, 남들이 가는 평범한 길을 걸으며 우리가 행한 많은 선택이 그렇다. 선택은 자유인 듯 보이나, 그 선택이 이미 정해진 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선택의 능동성은 가짜다. 노력 위에 노력을 쌓고 신중함까지 곁들여 우리는 노동과 직업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또 노력 위에 노력을 쌓는다. 그게 평범한 인생이다.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아니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인생은 어떤 샴푸를 살 것인가만을 고민한다. 인간에겐 샴푸를 사지 않을 선택도 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 《사표의 이유》 추천의 글 중에서, 사회학자 노명우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장재열씨와 두 계절쯤 같이 방송을 했습니다. 마음에 병이 생겨 직장 때려치우고 블로그에 하루하루 일기를 쓰다 보니 어느새 상담해주는 사람이 되어있더래요. 《사직서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나오자 선물로 주시더군요. “저도 사직서 좀 쓰고 싶은데요?”하고 웃으며 받았지만 그순간에도 퇴사가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조금은 어렵지 않은 일로 느껴지더군요. ‘나도 누군가 시키는 일 말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고민은 금세 잊히는 법. 늘 출근하고 퇴근하는 관성적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회사에 남을지 말지를 결정지을 일종의 테스트를 받게 됐습니다. 제가 우물쭈물하다가 내리지 못한 결정을 회사가 대신 내려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직장인으로 평생 살고 싶지는 않아서 사직을 꿈꿨지만, 막상 사표를 내가 직접 내는 것은 어떤 결단이나 계기 이유가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그 결정을 회사가 내려주는 것이 좋겠다고요. 그래서 버림받은 심정으로 뭐든 열 받아서 하고 싶다고요. 좋으면서도 싫어하고, 싫으면서도 기다리는 음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그 테스트는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로 시간만 보낸 겁니다. 능동적 행위를 할 수 없어서 기다렸던 타의적 판결이 없던 일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 사이 동무처럼 지낸 동료가 회사를 나간답니다. 늘 사표를 마음에 품고 산다며 같이 나가서 다른 일을 하자고 말해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난데없는 퇴사일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크게 놀라고 반대를 했습니다. 욱하고 내린 결정은 좋지 않다고요. 출근을 해서 그 친구 얼굴을 보는 것이 그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었는데, 그 친구의 퇴사가 거의 가족의 이민처럼 느껴졌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유가 없다고 말하지 말고, 빙돌려 말하지 말고,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달라고요. 그렇게 말리고 또 말리고, 절충안을 제시하고, 거절당하면 다시 말리다가 번뜩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정확한 이유라는 것이 없다고요. 무수히 많은 결정을 내리고 살면서도 저는 그 사소한 결정의 이유 하나도 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그런 것 같다거나, 그냥 그러고 싶다는 게 저의 이유여왔습니다. 하루의 반이나 차지하는 직장을 그만두면서 어떤 깔끔한 이유를 대 달라는 게 얼마나 무리인가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동료는, 아니 친구는 “그래도 슬퍼해줘서 고마워.”라고 했습니다. ‘사표를 내겠다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으면 얼마나 서운한 일일까’하고 생각은 합니다. 내가 이곳을 버리기로 했는데, 마침 이곳도 날 버려줘서 고맙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고 기분 나쁜 일이에요? ‘이제 매일 볼 수 없어요, 저는 다른 길을 갑니다’하는데 하나도 안 아쉬워하면 얼마나 기분이 묘하겠어요. 퇴사한단 소식에 충격을 받아 숟가락도 들지 못하는 동료들을 보고, 슬퍼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그 말에 ‘그래, 더 이상 말리지는 말자’ 싶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인생을 살며 내린 몇 안 되는 능동적 행위 중 하나일 겁니다. 어떤 샴푸를 살지 고민했는데, 샴푸를 안 사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내린 결정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