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꼬마 남치니가 데려다 주었니?"
오늘도, 까진 알겠는데 꼬마 남치니는 대체 무어냐.
양손 깍지 끼고 몸을 배배 꼬는 그 시추에이션은 또 뭐고.
"놔라. 너네 오빠들 팬 사인회에 온 줄 아나."
"우리 오빠들은 이런 거 못해줘. 소속사가 단호박이라."
"그래서 대리만족이야? 나로?"
"엉. 너 은근 냉미녀 타입이잖아. 내 최애 오빠가 또 알아주는 냉미남 아니시겠니."
"그 열정으로 문제집을 풀었으면 반등수가 다섯 계단 이상 올랐을 거다."
"난 중간으로 만족하는 걸."
"누구 맘대로 35명 중 28등이 중간이냐?"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고. 짜잔~ 이것 봐라."
개발새발 쓰인 A4 용지가 눈앞에서 펄럭인다.
죽었다 깨어나도 창작엔 영 소질 없으니 때려치워라 했거늘.
그 오그리 토그리 글을 또 읽어야 하는 거냐.
"너네 오빠들 애정행각엔 관심 없다 하지 않았니. 도대체가 말이야. 걸그룹이랑 엮일 바에야 오빠들끼리 사귀라는 그 논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까칠하긴.. 오늘은 그거 아니니까 염려 붙들어 매셔. 너의 충고대로 현실 버전이란다. 매의 눈으로 관찰한 결과물이랄까."
바들대는 토끼를 점찍어둔 야수처럼 노르스름한 빛을 내는 안광이 괴이쩍다.
곽지경이 느물 느물 웃을 땐 조심해야 해! 아니나 다를까 떨떠름한 눈빛으로 A4 용지를 더듬던 율의 입이 벌어진다.
입에 담지도 못할 표현들로 넘쳐나는 막장급 스토리가 요기 있네. 남남커플 애정씬은 귀여울 정도, 남녀로 바뀌고 나니 그 수위가 거침없다.
야, 인마! 여주가 초등학생인데 학교 뒤뜰에서 베드신을 찍는다는 게 말이 되냐?
"곽지경.."
"완전 감동적이지 그치? 저번에 쓴 것보다 열 배는 늘지 않았어?"
"... 열 배로 맞고 싶냐. 너, 이거 뭐야?"
"뭐가?"
"시치미 떼긴. 주인공 이름 말이야, 이름! 이기우? 하윰? 누가 봐도 나랑 시우잖아. 이시우! 하율!!"
"당연하지 너희 둘 얘기니까."
"이게 무슨 우리 얘기야? 내가 언제 다 무너져가는 학교 창고에서 시우랑.. 죽을래?"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당겨서 쓴 건데 무어? 왜, 꼬마 남친이랑 네 얘길 남의 손 타서 읽으니 쑥스럽니?"
"하아.. 진짜 쪼그만 게 발랑 까져서는. 너희 오빠들 변태성욕자로 만드는 걸로 모자라 친구랑 아는 동생한테까지 이러냐? 말로 할 때 당장 없애라. 조상님 만나고 싶지 않으면."
"시우 보여주면 좋아할걸?"
"보여주면 죽. 는. 다."
활자만 보면 하품을 해대는 지경에게 우선은 흥미위주로 읽어봐라 조언했던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러브스토릴 파다 파다 성인물을 거쳐서 금단의 사랑에까지 손을 뻗칠 줄이야.
대대로 기독교 집안의 막내딸인 네가 어쩌려고 그러니.
"소재 좀 공급해주라. 팬들이 기다림에 지쳐서 댓글 달고 쪽지 날리고 난리도 아니야. 인기 작가라도 된 기분이라니깐 헷."
"이걸 연재까지 한단 말이야? 어디다가?"
"안 가르쳐줘. 악플 테러하려고 그러지? 그러지 말고 너희 둘 사이에 있었던 그간의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놔봐. 달콤 찐득한 러브스토리로 재탄생시켜줄게."
"됐거든."
.. 이러한 연유로 팔자에도 없는 도망자 노릇을 했던 것이었다. 이주 씩이나.
스토커 옆집 꼬마도 모자라 망상 종결자 친구라니..
내 인생은 어이하여 이 모양 일꼬. 새삼 뒷목이 서늘해지는 율이다.
다음 생엔 무조건 엄청스레 먼 나라에서 태어나리라.
요 녀석들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치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