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단기 시집살이 이야기
스페인 온지 벌써 4개월이 다 되간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일까? 시간이 너무 잘도 간다.
1월 중순 세비야에 도착해 가게들이 문을 안열어 토요일날 바지런히 이리 저리 다녔지만
3개월이 지나도 우리 집이 준비가 안돼서 한동안 시댁에서 지냈다.
그래서 이번엔 시집살이가 스페인에도 존재하는지 ㅎㅎ
더불어 3개월 조금 넘게 안락했던 시집살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외국은 시집살이 1도 없다..?!
친구들도 하나 둘 결혼하고 내가 외국인이랑 결혼하면서 특히 여자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 좋겠다! 시집살이 안해도 돼서~!" 였다.
그리고 실질 적으로 친구들의 말이 맞았다. 시집살이는 없었다.
특히나 나는 남편 국가가 아닌 우리 둘만 외국에서 신혼살이를 시작했기에
물리적 거리로 인해 시집살이가 있을 수가 없었다.
가끔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듣는 나역시 '당장 이혼해~!'라고 소리칠만한 고된 시집 이야기도 있고
또 가끔은 못된 며느리이야기도 들었다. ㅎㅎ
그런데 정말 외국에도 시집살이가 있을까? 각 지역 문화별 가족 문화도 다르긴 하지만
아마도 좀더 가부장적인 사회, 남성 우월 주의 사회에서는 시집살이가 비슷한 형태로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보다 '가족'이란 개념을 바라보는 문화권의 차이에 따라
시집살이가 있는 곳은 우리와 비슷한 '가족 문화'를 가진 곳에서
확실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외국에서 신혼을 시작했고 시어머니가 결혼 전 돌아가셨기에
시집살이는 솔직히 없었다.
하지만 스페인 역시 여느 국가고아 마찬가지로
고부 지간의 갈등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간혹 고부간의 험담을 들어봤을 때
고부간의 갈등의 결이 확실히 좀 달랐다.
보통 내가 시어머니, 니가 며느리여서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성격이 이렇고 쟤는 성격이 저래서 성격이 달라서 생기는 갈등이랄까?
시어머니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 때문에 오는 갈등이라기 보다
개인 간의 성향 차이로 오는 갈등이 더 컸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착해야돼, 좋은 사람'이여야돼 라는 역할에 불충분하지 않았는지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 '효'라는 문화를 거슬렀다던지의 이야기는 없었다.
따라서 위와 같은 문화에서 자란 한국인 며느리, 사위의 경우
외국 시부모님을 큰 원성을 사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 또한 우리 다음세대 부터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지만...
결국 고부간 갈등이라기 보다 개인간 성격의 차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내가 듣는 남편 가족의 험담은 시어머니라서가 아니라
그 분의 성격이 나랑 안 맞아서 생기는 갈등이 많았다.
험담을 하면서도 '무슨 시어머니가 그래? 무슨 며느리가 그래?' 라기 보다
그 사람의 성격이 나랑은 안맞아 등의 이야기다. 친구, 지인 험담의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2. 점수를 딸 수 있을까? 무슨..! 점수가 뭐야?
나도 역시나 시아버지에게 좋은 이미지의 며느리가 되고 싶어
나름의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그 말~!! '사근 사근'~
사근 사근하게 시아버지랑 수다도 떨고 딸이 없는 집 안에 딸처럼 행동하려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남편과 어디를 가는 중에
내가 '나 시아버지한테 점수 잘 따고 있지?' 라고 물었다.
남편은, 엥? 이러더니 여기서 점수가 왜 나오며 점수를 왜 따고
감히? 자기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점수를 매기느 냐는 그런 반응이었다.
되려 억지로 무슨 점수를 따려고 어떤 행동들을 한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되려 상처가 됐는데 나중에 남편이랑 이 부분에 대해 차근히 이야기를 해 보니
남편이 말한 '점수따려고 노력안해도 돼'라고 말한 것은
'니가 싫으면 하지마'가 아니라
'점수라는 자체가 없는데 니가 무슨 노력을 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그냥 너는 너이면 되는 거'라는
의미에서 얘기한 것이라 했다.
암튼 내가 시아버지에게 잘해 드리는 건
내가 시아버지를 좋아하게 되서 그냥 그 사람에게 잘 해주는 거지
뭔가를 기대한다거나..?(일말의 칭찬이라도..?ㅎㅎ)그런 걸 기대하며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기대가 없으니 기대에 충족하려고 나를 바꾸며 노력할 필요가 없고
그냥 서로 다른 사람에게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것이 스페인의 시집살이..?
라는 것 같았다.
이 말이 좀 와 닿았던게 가끔 시골에 가면 뵙는 파블로 할머니와 그녀의 며느리들,
즉 파블로의 고모들의 행동을 보면 이해가 간다.
할머니도 누굴 특히 예뻐하시는 것 같지도 않고~~~
이 말은 누구를 특히 두둔하거나 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
고모들 성격이 달라서
그냥 말도 좀 적고 딱 필요하신 말만 하는 고모와는 딱 그 정도
수다쟁인 고모와는 같이 수다도 많이 떠시고~
그냥 사람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지셨다.
물론 사람인데 취향상 누가 더 좋을 순 있지만 '며느리로서'누가 더 낫다라고 보진 않는 것 같았다.
즉, 비교를 하지 않고 또 며느리들도 점수 따려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남편과 이야기 한 후로 나도 괜히 점수 따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나대로 살기로~ㅎㅎㅎ
열심히 노력 해서 칭찬 한마디라도 없으면 내가 되려 서운해 지기 마련이니...ㅎㅎㅎ
그래서 나도 그냥 편하게 '나'로 있기로 했다.
이런 관계에 대해 들으면 뭔가 차가운데 한편으로 '편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암튼 점수라는 게 없으니
대학 강의 처럼 패스 앤 페일(pass and fail) ㅋㅋㅋ 정도로 생각하니
(사실 fail도 있을 수가 없긴 하다.결혼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문제로 생각하는 성향이 짙으니~)
그야말로 '개꿀'인 시집살이다.
3.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다를 수 밖에...
앞서 말했듯, 나에겐 시어니가 없다.
다만 시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관계로
시아버지만 계신 시댁에서 있었기에 아무래도 그래서 시집살이에 대해서 모를 수 있다.
여성 끼리의 갈등이 더 깊을수 밖에 없으니..ㅎㅎ
이렇게 남여의 차이도 있지만 더불어
시아버지도 정말 예민하신 편은 아니다.
게다가 집안일에 무지하셔서 이 점이 나를 더 편하게 했던 것 같다.
원래 무지하면 그 분야에 대해 트집을 잡을 수가 없을 테니
집안일에는 전혀 모르는 시아버지가 나를 트집 잡으실 수가 없었다. ㅎㅎ
스페인 역시 시아버지 세대까지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했던 세대 였기에
집안일에 나보다도 잘 모르시는 시아버지 댁에서의 살이는 사실 상 눈치 보일게 없었다.
4. 시아버지댁에서의 살아보기
친구들은 시아버지댁에 살것이라 했더니 대부분 비슷한 부분에 대해 제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부분들이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고~ㅎㅎ
* 집안일은?
시아버지는 자신 세대의 남자가 해야 할 일(집안 수리, 가구 조립 등)에 자신이 있었고
그런 일은 알아서 척척! 하셨지만 싱크대 청소며 말그대로 부엌 일은 전혀 모르셨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청소 도우미를 쓰셨다.
따라서 내가 청소를 할 일은 없었는데 그럼에도 청소 도우미 언니가 해 주지 않는 부분들은
가끔 내가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전자레인지 안 청소 등~
시아버지내 시아주버님 모두 전혀 이런 곳을 청소해야 하는 지 모르시는 듯 했고 ㅎㅎ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남편한테 이야기해서 같이 했다.
남편 역시 신혼 살이 하면서 이제 이런 세세한 부분도 청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가끔 시아버지에게 되려 잔소리하는 남편의 모습이 귀여웠다(사실, 가짢았....ㅋㅋㅋ)
하지만 이 외에는 빨래도 시아버지가 까먹지 않고 하시는 편이고 해서
솔직히 남편과 둘이 살 때 보다 집안 일이 준 느낌이여 편안했다. ㅎㅎ
아침에 일어나면 청소대신 커피를 내리고
점심 거리 준비 대신 바로 컴퓨터를 켜서 일을 시작하는 하루. 엄마 집에 온 느낌~
시아버지댁 가구는 옛날 가구들이라 옛날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분위가 참 아늑했다.
콜롬비아의 1년이 가버리고 스페인의 두 세달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음식은?
친정 엄마는 요리도 서툰 내가 시댁 식구 음식을 잘 해드릴까 걱정하셨지만..
"니가 왜 음식 걱정을 해 ? 니가 손님인데...?!"라며 남편이 그 걱정을 덜어줬다.
스페인은 분명 가부장적 문화가 있었지만
남편의 말에 의하면, 지금 우리 세대부터는
바로 윗 세대와 달리 남여의 역할이 급변했다고 햇다.
이 말인 즉슨,
여전히 지금 내 세대의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은 자신들의 어머니가 하는 것을
아내가 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페인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아버지가 매일의 메뉴를 미리 미리 준비해두셨고 (다 마트에서 산 반조리 식품이지만...)ㅎㅎ
암튼 나야 음식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일단 매운 것 등 한국음식에 익숙하지 않으신
시댁 식구들이기도 해서 굳이 음식을 할 일이 생기지 않았다.
시아버지의 경우, 어릴 때 어머니, 결혼 후에는 아내,
그리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근처 시골에 사시는 파블로의 이모님들이 하루가 멀다 요리를 해 주셨다. 그래서 정말 음식은 매번 냉장, 냉동고가 꽉 차게 준비되어 있었다.
더불어 반조리 식품의 경우, 나 역시 처음엔 반조리 음식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지만
직접 먹어본 결과 가격도 그렇고 조미료 맛이 거의 안나는 느낌? 너무 괜찮아서
그렇게 시댁 식구들의 식사에 점점 익숙해 졌다.
시아버지 여자친구 분도 음식을 많이 해다 주셔서
너무 감사하게 맛있는 스페인 가정식도 잘 먹을 수 있었다.
어디서든 내가 안 움직이고 먹을 복은 있는 것 같다.
*적당한 심리적 거리감의 필요성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 할머니도 계셨고 작은 전셋방에 있는 친구들도 있었고 해서인지
사실 나는 복작복작한 집의 분위기를 훨씬 좋아했다.
남편이 없어도 멕시코, 콜롬비아와 달리
어느때나 도움을 요청할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타향에서 시댁 친정 가릴 것 없이 한 가족으로 너무 좋은 것 같다.
더불어 시아버지는 토요일 마다는 여자친구 집에 있다가 오셔서
남편과 오붓한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플러스~!!(시아버지도 오붓하게~)
또 가끔은 우리 만의 시간, 시아버지 역시 시아버지만의 시간이 필요하셨기에~ㅎㅎ
드디어 우리 집에 들어왔고 그럼에도 시댁과 너무 가까이 살고 있다.
여전히 주위에서 '괜찮겠냐~?'고 많이 물었었다.
아주 잠깐 이었지만 단기 시집에서 살아보기를 경험한 결과
아무래도시집살이 스트레스를 주는 건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부 사이도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가족 사이도 그 정도의 거리감은 필요한데,
가끔 한국은 '정'이라는 좋은 문화를 남용해 지나치게 사람을 옭아 매는 때도 있는 것 같다.
정이라고 할수 있지만 그 행동을 받는 사람이 편하지 않으면
그걸 '정'이라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가까이 살면, 무조건 모든 걸 더 가까이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우리 스스로에게 부담감을 주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한국에 살았다면 그랬을 것이고...
하지만 다행히 나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아직 언어가 서툴러 도움을 받을 일이 더 많다.
아직은 초기여서 인지 남편이 출근한 날, 가끔 외로우면
그냥 괜히 시아버지댁에 가서 케잌 하나, 맥주 하나 축 내고 온다.ㅋㅋㅋ
<시아버지와 나, 그리고 남편 >
이사한 후 서운한 티 하나 없고 연락도 없으신
시아버지에게 좀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되려 나인 것 같다.
5. 드디어 우리집 입성!
어찌 되었든 완벽히 준비되진 않았지만 우리 집에 들어왔다.
아직 손이 갈 곳도 많고 하지만 나름 하나씩 해결해 가는 재미를 찾아보며
소파에서 방구를 뿡뿡 껴도 돼서 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좋은 점은 역시 있다는 것! ㅎㅎ
그래도 아직은 다양한 간식 거리와 아늑한 집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새 정이 든 시아버지댁이 조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