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의 압축판
'스테이지 파이터'

직장인이 본 무용수들의 서바이벌

by Every river

'쇼미더머니'의 공백을 채워준 '스테이지 파이터'가 남긴 여운이 강렬하다. 귓가에 맴도는 음악은 단순히 흥얼거리게 하는 것을 넘어 온몸을 꿈틀거리게 만든다. 몸치인 게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리에서 춤을 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내가 '쇼미더머니'나 '슈퍼밴드'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료되는 이유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회사 생활에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들을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스테이지 파이터'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무용수들이 배우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학벌, 경력, 수상 이력 등 모든 계급장을 떼고 오직 실력으로만 겨루는 무대,

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이들이 모든 것을 잃고 내려올 수 있음에도 이 무대에 오르는 용기,

그리고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이들이 영감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이 있다.



노래하고 춤추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직장 생활이 떠오른다고 하면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은 그 압축된 서사 속에서 각자가 공감하는 지점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의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혼란스럽다. 개인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팀워크도 잘하는지,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과 포용력 있는 리더십 중 무엇이 더 성과가 좋은지, 즐기는 자와 절실한 자 중에 누구의 역량이 더 뛰어난지...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 의심과 증명 사이를 오가는 그 지난한 과정이 오디션 프로그램에는 응축되어 있다.


Q1. 개인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 리더십도 뛰어날까?

'무용수의 무용수'로 불리는 최호종님은 이미 기대치가 높음에도 매번 그 이상을 보여주는 괴물같은 사람이었다.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천재'를 보는 느낌. 그래서 그가 주역으로 이끄는 팀의 무대에서는 개인 기량이 뛰어난 무용수들조차 군무를 추는 무리로만 보였고, 팀원들의 개별 점수도 예상보다 낮았다.


<출처 : Mnet>


반면 김혜현님은 정반대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작은 체구 때문에 군무에서는 돋보이지 않았던 그였지만, 주연의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그의 독보적인 실력이 빛을 발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다른 무용수들과 같은 의상을 입고 춤을 춰도 관객의 눈은 자연스럽게 그의 섬세한 몸짓 하나하나를 쫓았다는 점이다. 그의 팀은 칼군무를 추는 와중에도 각자의 개성과 기량을 마음껏 펼치는 무대를 보여줬다. 자신의 디렉팅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팀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며 팀원들 또한 그의 아이디어가 구현될 수 있도록 서포트했다. 그래서 이 팀 개개인의 역량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으나 팀 퍼포먼스와 개인 성과 모두 좋은 평가를 얻었다.


Q2. 즐기는 사람 vs 절실한 사람

'절실함'이라는 감정은 실력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박진호님은 기복이 있는 무용수였는데, '절실함'이 장착되는 순간 엄청난 기량을 발휘했다. 특히 그의 'Sky캐슬' 무대는 잊을 수 없다. 테크닉 면에서는 경쟁자였던 윤혁중님이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였음에도, 관객들은 박진호님의 무대에서 더 큰 전율을 느꼈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절실함의 디테일이 만든 한 끗 차이였다.


<출처 : Mnet>


Q3. 버텨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완벽주의이면 이렇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중도 하차를 선택한 기무간님은 프로그램 초반부터 계속 물음표를 남겼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낙오자나 실패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기무간이 왜 기무간인지'를 제대로 증명해 보이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인터뷰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과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을 버텨내며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는 동안,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환경에서 과감히 자신을 구해냈다.


<출처 : Mnet>


치열한 경쟁의 무대를 포기했다고 해서 모두 패배자는 아니다. 단지 그 무대의 규칙이 나와 맞지 않았을 뿐. 그것을 깨닫는 지혜와 내려올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Q4. 인공지능 시대, 앞으로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까?

완벽한 자세와 형식을 중시하는 발레가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의외로 발레리노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테크닉이 아닌 창작과 디렉팅이었다. 주어진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던 대기업 직장인이 스타트업에 이직하거나 창업을 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닮아있다. 어떤 무용수들은 이 새로운 도전 앞에서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아냈고, 어떤 이들은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경쟁력은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적응력과 유연성에 달려있을 것이다.


'스테이지 파이터'는 내게 무용 서바이벌이 아닌, 직장 생활을 반추해 보는 거울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때론 절실하게, 때론 즐겁게, 때론 치열하게 무대를 채워가는 그들의 여정이 곧 나의 이야기였다. 개인과 팀워크 사이에서 고민하고, 완벽을 추구하다 좌절하고, 변화 앞에서 두려워하고...

그 모든 순간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오디션은 끝났지만 또다시 출발선 앞에 서있는 무용수들과 우리를 응원한다.



*방송에서 편집한 장면만 보고 개인적으로 판단한 것이라 사실과 다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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