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져 할 것, 엄마와의 단 둘만의 시간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이라고 하여 등산 좀 한다는 사람들은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트랙이며 세계에서 꼭 해봐야 할 트래킹 TOP 10에 들 정도로 유명한 트랙이다. 필자는 2015년 초에 친구들과 다녀 왔었는데, 다녀 온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주자 엄마도 하고 싶어하는 눈치라 뉴질랜드 관광도 시켜드릴 겸 일찌감치 밀포드 트랙 예약을 했다. (패키지가 아닌 개인이 할 경우 하루 50명으로 제한 되기 때문에 미리 예약 해야 한다)
예약한 2015년 5월 부터 ~ 2016년 3월 엄마가 뉴질랜드에 도착하기 까지 무려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는 잔뜩 기대에 부풀었을 것이고, 나는 생전 처음 엄마와 여행 하는 것이고 전부 다 내가 알아서 운전과 숙박 및 모든 일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기대와 함께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약간 들었던 것 같다.
총 15일 정도 되는 일정 동안 엄마와 나는 많은 것들을 같이 했는데, 초반 부터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있었다.
밀포드 트랙 가기 전 날 밤 짐을 싸는 와 중에 엄마는 쓸데 없는(내가 보기엔 쓸모 없었다) 작은 낚시 의자 등을 챙기길래 나는 "그 짐 다 못 들고 간다. 그거 엄마가 다 들고 메야 해서 최소한으로 짐을 싸도 10키로가 넘는다. 그거 빼라" 하며 엄마를 다그쳤다. 저거 빼라, 이거 필요 없다, 여기선 셀카봉 쓰기 좀 그렇다 등. 엄마는 이것저것 고려해서 가지고 온 건데 내가 다 빼라 그러니 엄마싶는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버린 것 같았다.
특히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해버린 것은 밀포드 트랙 도착하고 나서 밀포드 트랙이 쓰여져 있는 표지판에서 사진을 찍을 때였다. 엄마는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고 싶어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한 장만 찍으면 충분하다. 라고 하니 그게 못 내 서운했는지 그냥 앞장서서 훅 가버리셨다.
그렇게 첫 날을 보내고 가슴 속에만 서로 불만을 내놓지 않고 있다가 밀포드 트랙의 가장 하이라이트 - 맥캐논 패스라고 하여 산을 높게 올라갔다가 하루만에 내려오는 3일 째 일정에서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엄마는 딸 하나 믿고 사는데 여행보내준다고 엄청 기대해서 이것저것 다 챙겨와서 즐길 줄 알았는데 딸이 너무 박하게 구니 해외에서 말도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답답했다며.
미안했다. 잔뜩 기대한 엄마의 마음을 실망시켜드려서 너무 미안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속에 있는 마음에 대해 내색 잘 안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내색한 거 보면 어지간히 섭섭하셨나보다. 나는 정상 꼭대기가 다다르는 곳 즈음에서 엄마에게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도 눈물을 훔치고, 엄마도 땀인 척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눈물을 터트리고 나니 뭔가 속이 시원해졌고 우리는 그렇게 산 정상에 올랐다. 내 마음처럼 잔뜩 낀 구름 때문에 모든 걸 다 볼 수는 없었지만 조그맣게 나마 구름과 구름 사이로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에 감사했다. 그리고 나는 미안함 때문인지 엄마를 위해 사진을 엄청 찍어주었다.
여행 중간 중간 꺼내놓은 엄마의 이야기는 나에게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이 여행에 있어서 가장 값진 시간을 만든 4시간이였다. 대학교 등록금 200만원이 없을 때 돈이 없어서 친척들에게 부탁했지만 거절 당한 일,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왜 엄마가 힘들었는지 등..
나는 엄마가 밀가루 면, 파스타 종류를 안 좋아하지만 빵 종류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고 군것질을 잘 안하는 나에 비해 군것질을 밥 시간 중간에 하는 걸 (뻥튀기, 쿠키 류) 좋아한다는 것, 꽃과 열매를 참 많이 좋아 한다는 것. 여행 내내 운전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없는 나에게 오히려 그것이 엄마가 필요로 했던 진짜 시간이였음을 내가 입을 '닥치자' 깨닫게 된 사실이다. 엄마에게 항상 말하기만 했지 정작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 줄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으로 엄마를 돌려보낼때 공항 앞에서 코끝이 찡했지만 그래도 꿋꿋한 모녀답게 서로 울지 않고 담백하게 헤어졌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고 냉장고에 채워놓은 엄마의 반찬들을 보니 마음이 싸해지면서 여행동안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몹쓸 자식'이였다는 것에 눈물과 후회가 남았다.
아직도 50대 중반인 엄마가 젊은 나를 따라 이렇게 힘든 트램핑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고맙다. 이 글을 쓰다가 생각나서 전화 드렸는데 오늘은 덕유산에 등산 하러 왔단다. 하하하
밀포드 트랙에 대한 정보는 이곳을 클릭
밀포드 트랙 준비하기 - http://korean.jinhee.net/83
꾸미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밀포드 트랙 첫째날 - http://korean.jinhee.net/93
밀포드 트랙 둘째날 - Middle of pure nature - http://korean.jinhee.net/95
밀포드 트랙 셋째날 - 트랙의 클라이막스 - http://korean.jinhee.net/101
밀포드 트랙 4일째 - 마지막 날 - http://korean.jinhee.net/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