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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Feb 28. 2017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



연례행사처럼 올해도 새해를 맞이하며 여러 다짐을 했다.


얼마 후,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다짐들이 유야무야 사라지고 있었지만 우리에겐 구정이라는 또 한 번의 새해가 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1월 구정이라는 복병이 숨어있었다. 하는 수 없어 정월대보름에 달님을 보며 올해 계획을 말하고 실행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부럼을 깨 먹던 날도 이미 까마득해진 오늘, 더는 나의 다짐을 피할 길이 없어 이렇게 굳게 마음을 기록한다.


올해 그토록 피하다 결국 마음먹은 것은 바로 글쓰기이다. 


다소 김 빠지는 목표로 보일지 몰라도 나는 또다시 마감의 압박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늪에 스스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2년 전 여행을 떠나 기록했던 것을 다듬어 쓰면서 나의 첫 글쓰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끄적거린 일기를 글로 다듬고 막연한 감정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글의 참 맛을 알게 되었다. 글은 글자로 만들어진 거울이었다. 글을 통해서 슬픔에 잠겨있거나 행복에 겨운 내 모습을 보기도 하고 원망 섞인 말을 뱉어내는 내 잔인함과 그것을 삼키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기도 했다. 또 말없이 내 뒤를 지켜보고 있는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뒤늦게 읽기도 했다. 글로 만든 거울은 일종의 심리상담사와 같았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울고 웃으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중요치 않았다. 나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것에 환희를 느꼈다. 세상에 글쓰기만큼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 까.

어느샌가 나는 글쓰기 예찬론자가 되어있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지 내 진심을 마주 보려하지 않았던 지난 한 해. 이제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볼 때다

그러나 글쓰기가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쓴 글이 소개되면서 여러 곳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이때 글이 주는 무거움을 알게 되었다. 약속된 시간, 정해진 주제, 만족감을 원하는 독자, 이러한 요인을 고려하여 글을 쓰려고 하자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하얀 도화지를 쥐어짜 글자 하나 뽑아내듯 글을 써내면 진짜 내 마음이 들어가 있는지 의문이 생겨 자신감이 사라져 갔다. 이런 감정이 글쓰기 욕구를 자극하여 더 도약하면 좋았겠지만 나는 글을 자꾸 숨기고만 싶어 졌다. 그래서 작년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를 보내고 조심스레 내 글에 대한 평가에 귀 기울였다. 공감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개똥철학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감하고 같이 울고 웃고 책 모퉁이를 접어 두고 글귀를 간직하는 사람도 많았다.

불만족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침묵하는 것은 나를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었던 사람들을 무시하는 걸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든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리하여 올해는 최후의 1인이 나를 응원하는 한 자신 있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최후의 1인은 아마도 내가 될 것 같다.


결국 사람들과 나를 위한 글을 쓰는 것, 이것이 올해 나의 도전과제가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보니 원고 마감일이 나를 더 부지런하게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단 생각이 든다. 가장 지키기 힘든 약속은 나와의 약속이기에, 스스로 마감일을 정해 글을 쓴다는 것은 더 독해지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마라톤 레이스에 도착지점을 정하지 않고 그냥 막연히 뛰겠다고 발을 내딛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미 내디뎠으니 어찌하겠는가. 성공하려면 도착지점을 빨리 정하던가 아니면 어차피 혼자 하는 것 천천히 즐기면서 걷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글 쓰자, 살 빼자, 건강하자, 재미있게 딴짓 많이 하며 살자고 달을 보며 빌었던 다짐들, 이제 천천히 시작해볼 때이다. 나아가다 지치면 쉬다가 또다시 마음먹고 가면 된다. 지키기 어려운 게 나와의 약속이라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안 지켜도 나만 손해 볼 뿐이란 것.

내면에 움츠려있던 싹도 이제 꽃이 피기를.  봄이 왔으니까.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 매주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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