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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03. 2017

소생의 고통



상점 입구에 붙은 ‘입춘대길’이 눈에 뜨였다. 

봄의 문턱에 서있음을 알리는 글귀가 붙을 때면 사람들은 유독 고민이 많아진다.


이제 패딩점퍼를 입는 것은 답답해 보이려나? 전기장판을 접어 넣을까 말까? 좀 쌀쌀한데 보일러 틀어야 하나? 

이런 나의 사소한 고민은 애교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학부모인 친구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백화점에는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초등학생 가방이 없어서 난리라는 

기사가 뜨고 비싼 가방 멘다고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지만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새 학년을 준비하는 아이들도,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도 고민이 깊어진다. 단짝과 다른 반이 되면 어쩌지? 친구가 없는 학교로 배정받으면 어쩌지? 이런 고민과 함께 아이들은 새 학용품 쇼핑을 하러 나선다. 새 학기 마케팅에 노출된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괴리를 경험해야만 한다.


쇼핑몰의 직원들은 새 학기 준비로 고민이 깊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새 물건을 많이 장만해야 매출이 오를 텐데 고객의 지갑이 좀처럼 열리지 않아 방법을 모색하는데 여념이 없다. 


회사도 분주하다.올해는 현관에 붙은 입춘대길이란 말이 실현되길 간절히 바라며 새 학기 마케팅에 전력을 다한다.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들도 고민이 많다.  곧 쏟아질 채용공고를 준비하며 당당하게 조카의 입학 선물을 사주고만 싶다. 


아직 덜 녹은 땅 속 씨앗도 분주하다. 미묘한 온도 변화를 감지하고 적당한 수분을 찾아 언 땅을 뚫고 올라갈 준비를 한다. 



얼어있던 시간이 다시 살아나는 시간,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다치지말길



그렇다. 사람들도, 식물도, 동물도 다시 소생하는 계절인 봄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고 고민한다. 

사실 잘 이겨내야 하는 계절은 겨울이 아닌 바로 봄의 문턱이 아닐까? 

겨울은 찬 바람이 지나가길 웅크리며 기다리면 되었지만 봄의 문턱에선 아직도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일어서야 한다. 
그래야 따뜻한 날이 되었을 때 싹이 돋듯 다시 새 마음이 생기고 곧 꽃을 활짝 피우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잡힐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며 다가오는 얄미운 봄, 그러나 일단 다가오면 아름다운 것들을 있는 힘껏 내어주는 봄. 이토록 얄밉고도 아름다운 봄을 잘 맞이하라고 부적처럼 입춘대길이라 적어 붙여 놓나 보다.

 

새로운 날의 두려움을 싹 잊어버리게 어서 내게 봄을 가져다주오






글_ 박진희 

그림_ 김현주

 

당신과 내가 함께 사는 세상 속 일상, 매주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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