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르사 아사나 도전기 (1)

by 박진희

올해 초 요가원에 등록하기 전, 친구들과 가장 완성하고 싶은 요가 자세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벽에 걸려있던 멋들어진 모델의 사진을 가리키며 “나는 저거”라고 대답했다. 사진 속 모델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시르사 아사나(머리 서기)를 하고 있었다. 딱히 굉장히 하고 싶어서 대답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아무것도 받치지 않고 거꾸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는 게 신기해서 대답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무슨 자세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20대부터 아팠던 허리 통증이 심각한 병이라는 것을 알고 큰 수술을 받은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다. 척추에 커다란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는데 수술로 제거하고 나면 통증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수술을 하고 나서 몸은 더 아파졌다. 병원에서는 오랫동안 근육이 망가져 당연히 아플 것이고, 수술 부위도 꽤 컸기 때문에 회복도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몸은 차도를 보이지 않고 더 망가져만 갔다. 아픈 몸으로 인해 망가진 마음을 다스리느라 해보고 싶던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마음의 위로는 얻었지만 몸은 더 아파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1~2km도 걷지 못해 길에 주저앉아 엉엉 울곤 했다.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이 있어도 한 시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 보러 가길 망설였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데도 몸이 아파질까 봐 선뜻 약속을 잡지 않았다.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제약은 몸을 더욱더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집에 점점 고립되어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이게 2013년에서 2016년까지의 일상이었다.

몸조리를 위해 지리산 자락에 들어갔던 2년 동안 식생활의 개선을 했지만 허리 통증은 나아지지 않은 채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병원에서 요가를 하는 것이 좋겠단 이야기를 들어 집 앞 요가원에 무작정 찾아갔다. 한 시간 넘게 상담을 받았다. 어떤 수술을 했고, 몸의 상태가 어떠하며, 어느 정도의 통증을 느끼며 사는지 자세히 이야기하고 나의 몸에 맞게 조절하여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선생님은 내 상담내용을 까마득히 잊었고 다이어트하러 왔으니 더 높이 뛰라고 재촉을 했다. 그때는 소도구를 이용한 요가가 유행이었는지 커다란 짐볼 위에서 깡충깡충 뛰는 운동을 시키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첫 요가원에서는 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

그 후 병원에서 함께 운영하는 운동센터에서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을 위하여 함께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운동에 대한 인식을 많이 바꾸게 된 것 같다. 운동은 늘 경쟁, 다이어트로 귀결되었는데 그곳에선 내 몸에 맞게, 그리고 서로 경쟁이 아닌 격려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늘려 체력을 향상하는 것이 운동임을 알려주었다. 즐겁게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고 난 후, 1km도 못 걷던 내가 100일간 5km 걷기를 했고, 무겁던 물건들도 남편 도움 없이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체력이 향상되자 걷는 게 즐거웠고,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서자 보이지 않던 소소한 것들에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꽃도 보이고 하늘도 보이고 나의 마음도 헤아려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몸이 즉 마음의 문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며 지내다 여러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다 작년 제주로 이주했다. 제주가 큰 동네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넓고 조금만 벗어나면 시골일 줄은 몰랐다.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은커녕 슈퍼도 없어 무조건 차를 타고 나가야만 했다. 스마트폰의 건강 앱을 보니 하루에 100걸음도 걷지 않은 날이 잦았다. 작은 공간 안에서만 일을 하고 차를 타고 다니고 스트레칭조차 하지 않으니 그동안 쌓아두었던 체력은 바닥나기 시작했다.
붙잡고 있던 체력이 고갈되자 다시 또 허리 통증이 극성을 부렸다.


(2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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