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라 아사나

by 박진희

나는 많은 현대인이라면 갖고 있을 고질병인 일자목이다. 처음엔 내가 목이 그렇게 빠져 있는지도 몰랐다. 목과 어깨 통증은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통인 줄 알고 그냥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그런데 방치하니 어깨의 묵직한 통증은 점점 등줄기를 타고 내려와 이제는 등 한가운데까지 뻐근함이 느껴졌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뻣뻣해진 목과 등을 스트레칭하며 마치 내 탓이 아닌 어느 못된 것이라도 붙은 양 이렇게 말했다.
“맨날 귀신이 어깨를 밟고 있는 것 같다. 동네 터가 안 좋은 거 같아~”
몸이 아픈 게 무슨 귀신 탓이겠는가. 몸을 잘 못 쓴 내 탓이지. 그런 것도 모른 채 몇 년을 방치하다 병원에 찾아갔다. 일단 왜 등까지 아픈지 엑스레이를 찍어보자던 의사 선생님은 다시 진료실로 들어간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내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기 전, 정상적인 목 상태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이게 정상적인 목 모양입니다. 자, 이건 박진희 님의 목 사진이고요. 뭐가 이상한지 알겠지요?”
의사 선생님은 너무나 확고하게 병의 원인을 알아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내 목 사진을 본 순간 나도 푸훕하고 웃어버렸다. 목이 마치 볼펜이라도 찍은 듯 꼿꼿하게 서있었다. 고고하게 펴야 할 것이 따로 있지. 볼링공만큼의 머리 무게를 받치기 위해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우리의 목 커브가 쫙 펴있을 것은 뭐람. 얼마나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자 그제야 통증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얼마나 우매한 동물이던가.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목을 위한 어떤 노력도 없이 살았다. 그냥 일자목이라 아픈 것을 확인했다는 일종의 안도감만 갖게 된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고 살았다. 허리를 바르게 펴지 않으니 당연히 어깨도 주저앉고 목도 머리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했다. 이 몸으로 할라아사나 (쟁기자세)를 만났다.

맨 처음에는 누워서 다리를 뒤로 넘기는 게 불가능했다. 배에 힘이 너무 없어서 엉덩이를 들어 올릴 힘도 없었다. 구르기를 먼저 시도했다. 이때는 나의 뱃심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반동으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척추가 둥글게 말아지지도 않고 다리가 올라가지도 않는 나는 반동의 힘이라도 이용해야만 했다. 매일 그렇게 열 번씩 굴렀다. 어느새 반동으로 다리가 머리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의자나 벽 등을 이용하여 배 힘으로 엉덩이를 떼고 다리를 뒤로 넘기는 연습을 해야 했지만 한동안은 그저 반동으로 뒤로 넘겨 자세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사진을 찍어 보니 다리는 둥둥 떠 있고 아직도 허리가 더 몸 쪽으로 다가와야 하는 상태였다. 배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보다 목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목부터 등까지 내가 늘 귀신이 밟고 있는 것같이 무겁다고 했던 그 근육들이 쭉 늘어나는 게 느껴지면서 강한 통증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리고 턱과 목이 가까워지면서 숨구멍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할라아사나만 하면 천천히 고르게 숨을 쉬기 어려웠다. 컥컥 막하는 숨을 입으로 내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6개월을 변함이 없어 보이지만 꾸준히 수련했다. 여전히 드라마틱한 자세가 만들어지진 않았다. 그래도 반동을 이용하여 다리를 넘기기보다 배의 힘으로 다리를 넘기려 애쓰고 있고, 숨이 턱 막히는 구간에서도 천천히 고르게 숨을 쉬려 평정심을 유지한다. 아직도 할라 아사나를 하면 귀신이 밟고 있다던 그 부분이 늘어나 있는 근육통이 살짝 느껴지지만 이것을 아픔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나아진 나의 몸이라 받아들인다. 자세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욱 유연해졌다.
할라는 쟁기다. 쟁기는 논밭을 가는 도구고 땅을 갈아엎어 잡초를 없애고 작물이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드는 기반을 닦아준다. 할라 아사나 역시 그러하다. 나의 뮬라에서 위로 또 아래로 뿌리가 잘 뻗어 나갈 수 있게 토양을 골고루 갈아주는 아사나이다. 잘 갈고 닦인 토양이 되려면 갈 길이 멀지만, 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많은 잡초들이 사라진 내 몸이란 토양을 바라보니 꾸준히 갈고닦을 마음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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