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불편을 그저 마주하기

by 박진희

며칠 전 일 년마다 받는 정기검사를 받았다. 내 꼬리뼈 속에는 종양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7년째 그대로 잠잠하게 있는 것 같았다. 수술을 해서 제거하기에는 혹시 모를 위험부담이 있으니 커지거나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렇게 지내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쭉 지켜보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폭탄 같은 것을 품고 검사를 받고 돌아오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남은 일 년을 모르는 척 잊고 지냈었다. 불안과 망각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올해 정기검사를 받았는데 이제는 활성화가 되었으니 제거하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초, 아니 몇 분인지 모르겠지만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뭘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게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금세 평정심을 찾고 울지 않고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던지고 추후 일정을 잡고 나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의사 선생님의 한숨소리 나 추가 검사 하나 더 받고 오란 말에도 완전히 주저앉아 엉엉 울곤 하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곧 죽을 사람처럼, 혹은 몸의 변형을 평생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이번엔 정말 달랐다. 혹시 모를 신경 손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도 나는 운동하면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살아가는 정도로 몸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시 수술을 해도 죽지 않을 것이고 혹여 결과가 기대했던 것처럼 깨끗하게 나오지 않더라도 나답게 사는데 어떤 지장도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내가 잠시 흔들리고 두려웠던 시간은 첫마디를 들은 그 몇 분과 병원을 나서면 확실한 결심을 하기 직전의 단 몇 분뿐이었다.

이렇게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요가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다. 수련을 하면서 내 몸을 믿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게 된 것이다. 수련 도중 힘든 동작을 만나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 당장 포기하고 올라오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너무 고통스럽기만 할 뿐 이게 나를 나아지게 만드는 과정인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선 그 고통을 그저 마주하고 객관적으로 보라고 말씀하셨다. 고작 숨 대여섯 번 쉬는 그 짧은 순간,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도 잘 들여다보면 그저 몇 숨 쉬고 나면 끝나게 된다. 육체의 고통을 잘 넘기는 방법을 배우다 보면 마음의 두려움도 넘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수련 중에 들었을 때는 과연 내가 삶 속에서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을까 의심했었다. 미운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변함없이 화가 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되나 보다 하고 단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병원에서 그렇게 단단하게 마음의 균형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몸의 수련의 정말 잘 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을 마주하면 바꾸고 싶어 한다. 그것이 고통이라 생각하고 없애고 다시는 마주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게 바꾸려 애쓰면서 결국 마음에 상처를 낸다. 세상엔 나의 힘으로 도통 바꿀 수 없는 고통들이 많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바꾸고 없애겠는가. 그저 다가오는 불안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나를 다치지 않게 그것이 사라지는 때를 기다리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의 마음을 옮겨가는 것이 필요하다. 7년이나 가슴 졸였던 두려운 상황을 마주했지만 더 이상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크게 숨을 쉬고 나는 괜찮다고, 지금은 달리 믿는 수밖에 없지 않냐고 다독였다. 나는 조금 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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