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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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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19. 2020

비 오는 날의 책방

수도권에도 많은 비가 내렸고 제주에도 강풍과 함께 비가 제법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의 책방에서는 걱정 반, 행복 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우선 비가 오면 육지보다 높은 습도와 돌집이 머금고 있는 습도 때문에 책이 많이 상하게 된다. 책은 습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습도가 올라가면 제습을 해주고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작년 여름, 책방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제주의 습도가 어느 정도 높은지, 돌집이 얼마나 습한지 가늠하지 못했다. 가정용 제습기 2대면 충분히 습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제주의 여름 습도는 멀쩡한 사람도 아프게 만들 정도로 매우 높았고, 때마침 역대 최다 태풍이 몰려오면서 연신 물폭탄을 던져대고 있었다. 겨울에 제주로 입도한 우리는 등을 떠미는 매서운 돌풍이 제주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겨울의 바람은 든든한 패딩으로 막을 수가 있었다. 습도는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사람을 가라앉게 만들었고, 하루 종일 제습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 습도를 고작 10리터짜리 제습기로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제주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흔히 말하는 ‘육지 것’들의 사고방식이었다. 그해 여름,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제습기의 물을 비웠지만 졸린 눈으로 아침에 책을 확인하면 제주의 아름다운 파도처럼 꿀렁꿀렁 책이 울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편은 “책이 울면 나도 울어”라는 명언을 남기며 편히 외출도 하지 못하고 제습기의 물을 비웠다. 그래도 안되면 두 대의 에어컨의 제습기능을 돌리고 보일러를 틀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을 한 후 제습기를 더 좋은 것으로 바꾸자는 교훈을 얻었고 대형 산업용 제습기를 장만했다. 소음이 좀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산업용 제습기 등장 이후, 새벽에 깨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얻었다. 그래도 여전히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들리면 바짝 긴장을 한다. 책은 우리 책방의 생명이다. 하나하나 소중하게 골라 가져온 책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 일인데, 책이 다치게 되면 안 된다.

또 하나 긴장되는 일이 있다. 바로 시골집 마당이다. 제주는 습도가 높고 따뜻하다 보니 풀이 자라는 속도가 어마어마하다. 처음에 야심 차게 작은 정원을 가꿔보겠다고 애썼지만 다음 날 다시 쑥쑥 자라 있는 풀들을 보며 두 손 두 발 다 들어 항복했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대부분의 촌집의 마당은 시멘트를 발라 흙을 매운다. 농사짓는 분들이 많으니 수확한 것들을 널어 말리기도 좋고 풀이 안 자라니 관리도 수월하여 많은 집들이 시멘트로 마당을 덮어 놓았다. 우리 책방 마당도 그러하다. 그런데 문제는 시멘트 바를 때 경사를 옆의 밭 쪽으로 내어 빗물이 땅으로 스미게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밭의 토사들이 마당으로 다 흘러들어오게 경사를 둔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모든 물이 고이는 곳이 바로 책방 들어오는 입구였다. 비가 많이 오지 않을 때는 약간 첨벙첨벙하면서 까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손님들이 들어온다. 그러나 점점 많이 오면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온다. 심할 땐 발목까지 잠겨 운동화가 흠뻑 젖을 때도 있었다. 작년에는 큰 빗자루로 빗물을 쓸어내리며 고인 물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물폭탄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여름에는 무의미한 일이었다. 처음엔 큰 벽돌로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흔들거려 중심잡기가 어렵기도 하고 아이들이 다칠 것 같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무로 다리를 만들었다. 미장을 다시 해라, 시멘트 걷어내고 잔디를 깔아라 하는 조언을 들었지만 시골의 작은 책방에 징검다리를 건너 미닫이 문을 열며 빗물을 터는 이 경험도 의미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멋지게 마당 공사를 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의 일부분인 것처럼 조용히 스미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왔을 때 보물 같은 책들이 반겨주는 경험을 만끽하게 하고 싶었다. 여전히 비가 오면 수시로 마당을 확인하며 징검다리를 놓아야 하는지 살핀다. 어쩌면 누군가의 운동화가 젖어 불편을 줄 수 있겠지만 그 작은 수고스러움을 상쇄할 만큼 좋은 책과 책방의 맛을 전해드리고 싶다.


이렇게 비가 오면 불편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먼저 떠오르지만 행복한 일도 많다. 비가 오면 책방을 찾는 분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제주의 특성상 야외활동에 제약이 많아지면 보통 실내로 많이 찾아온다. 밖은 비바람이 몰아치지만 따스하고 안전한 책방에서 빗소리와 함께 책을 읽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니 비 오는 날이 반갑기도 하다. 요즘은 책방을 사랑해주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 비가 오는 날에는 다소 붐비기도 하다. 그래도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따스한 음악과 책을 느끼는 여유를 많이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 순간에 책방이 주는 위로가 묻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안전하고 따스한 비밀 아지트처럼 비 오는 날 책방에서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이런 아늑한 위로는 우리 책방뿐 아닌 어느 책방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 오는 날에는 따스한 차 한 잔 생각나듯, 따뜻한 동네책방이 생각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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