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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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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20. 2020

가치를 담은 이름짓기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존재하는 가치를 갖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름 짓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책방 소리소문”

지금 책방 이름은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브랜딩한 결과, 뜻밖의 발견으로 얻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우리의 브랜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름을 정하는 것은 책방을 차리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책이 있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름을 찾으려고 했다. 옛집이 주는 정취와 나무의 느낌을 담아 ‘나무 목’ 자가 들어가는 한자로, 혹은 ‘서가’가 들어가는 이름으로 정하려고 하였으나 너무 딱딱한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책방이 있는 지역은 상명리인데 이 지역의 지명은 명월리의 위쪽 마을이라는 뜻이다. 즉 밝은 달 마을의 윗마을이라는 의미였다. 달빛이 얼마나 예쁘게 스며들면 마을 이름이 명월, 상명일까. 그래서 달빛이나 별빛이 들어간 이름을 정해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우리 책방의 정체성을 대변하지는 못했다. 어떤 이름이든 공간의 정체성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책방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책방을 찾는 분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깊게 고민했다.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가치들을 적어봤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노트 메모들이 나오고 난 후, 우리는 ‘책에 집중하는 공간’, ‘작지만 알찬 공간’, ‘편안함이 느껴지는 공간’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전할 수 있는 이름을 찾아 헤맸다. 이름에 담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하나 짧고 굵게 전하는 방법은 어려운 일이다. 수 백번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던 그때, 친구가 우연히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작은 책방이니 소리소문 어때?”

듣자마자 유레카를 외쳤다. 작은 시골마을이 주는 정취와 작은 시골집, 그리고 그 안에 작지만 강한 책들, 소리 없이 퍼져나가 우리의 삶 속에 스미는 책들. 이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렇게 많은 노력 끝에 그러나 우연한 만남으로 이 기막히게 멋진 이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이름 때문이었는지 초반에 찾아주신 손님들은 좋은 책방이라며 소문을 내주겠단 말씀을 해주셨고, 그 말 씨앗이 소리소문 없이 퍼져나가 조금씩 손님들이 늘어났다. 부르는 대로 길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이름이 각인되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겨났다. 마을에 종종 오고 가는 선생님께서 책방에 자주 들러 많은 응원을 해주셨는데, 그분이 지인에게 동네에 책방이 생겼으니 꼭 가보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때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고 네 글자로 되고 끝이 문으로 끝나는 것만 기억났다고 한다. 한참을 기억해낸 후 떠올린 이름이 바로 “연개소문”이었다. 지인분은 연개소문 책방을 수없이 검색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연개소문 책방은 검색이 되지 않는다며 이상하다고 하자 마을 선생님께선 “아, 그러면 을지문덕”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연개소문이든 을지문덕이든 도저히 찾을 수 없던 친구분은 수소문 끝에 소리소문을 검색해 찾아오셨고, 어렵사리 찾아온 끝에 만난 보람을 더욱 크게 느끼셨다. 그 후로 우리는 책방 이름을 소개할 때 “연개소문 아니고 소리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한 번 웃고 나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책바에 찾아오신 분들께 한자의 의미를 설명해드린다. 제주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의 작은 책, 그러나 힘 있게 퍼져나가는 큰 책들의 의미를 방문한 분들은 금방 이해하게 된다.


책방에서 소리 없이 많은 책들이 다양한 삶 속으로 퍼져나가길 희망한다. 글이 가진 힘과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책은 소리소문 없이 뻗어나가는 작은 희망의 문자들인 것이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아닌 조용한 그러나 힘 있는 움직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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