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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22. 2020

상생하는 기획이란 (1)

책방소리소문 기획 전에 관하여

책방의 방 한 켠에는 기획 전시를 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전에 벽장으로 쓰였던 곳인데 움푹 들어가 있어 책장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곳을 책이 많이 들어가진 않지만 우리가 명확히 보여주고 싶은 주제들을 골라 큐레이션하는 기획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영화 기생충을 통해 본 사회를 책으로 깊게 읽는 기획을, 그 후로 지역 소상공인들과 상생하기 위한 공간, 2019년 올해의 책 등의 기획을 준비했다. 단순히 주제에 어울리는 책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더 폭넓게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지역 소상공인 기획에서는 그 분야에서 실제 종사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심층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현재 소상공인들의 삶을 다룬 책뿐 아니라 공간 구성, 세금, 다양한 메뉴로 성공한 카페 책 등 실제로 필요한 정보들이 담긴 책도 함께 진열했다.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기획을 만들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기획 공간. 가상의 그림 서가에서 책이 튀어나온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싶어 만들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책방을 운영하고 다양한 기획을 하다 보니 점점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분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큰 도시에서 살 때는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이 책과 많이 연결되어 있는지 잘 몰랐다. 그때는 아마 책방을 하기 전이라 깊게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책방에서 책과 연결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넘쳐났다. 사실 누구의 삶이든 책 한 권으로 만들 만큼 가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의 일의 가치와 책을 연결시키는 기획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20년부터는 지역 예술가와의 상생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획은 제주에서 우드 카빙 작품을 만들고 있는 ‘우드비앙’과 함께 협업을 하였다. 종이로 만들어진 책도 사실 나무에서 나온 것지만 책을 읽으며 나무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책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다양한 물건에 나무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 나무의 가치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사용하는 소비재로만 인식해왔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의 바탕이 되는 나무의 결과 향을 느껴보고 그 가치를 생각해보고자 우드비앙과 기획전을 준비했다. 단순히 우드 카빙 제품을 홍보하는 공간을 넘어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어떤 나무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깊이를 느껴보고 소중함을 다시 인식해보기를 권하고 싶었다. 책도 마찬가지였다. 나무에서 나온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한 권의 책 안에 담긴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한 권의 책에 담긴 나무의 숨결과,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노력은 보지 않고 쉽게 버려지는 소비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가까이에 있는 물건들을 조금 다르게 보고 그 바탕이 되는 나무의 힘을 느껴보면 책과 사물들의 소중함도 더 커질 것이고 그것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메시지를 전하고싶어 우드비앙과의 협업이 처음 시작되었다.


작은 전시 공간 안에 많은 기획의도를 담기는 어렵다. 짧고 간결하게 하되, 함축적으로 이 기획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긴 설명을 붙여놓아도 아무도 읽지 않으며 너무 여백이 많으면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짧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게 글로 보면 쉽게 풀릴만한 공식이지만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수없이 많은 자료들을 참고하며 고민한 끝에, 기획 공간의 벽에 우드 카빙 작품들 (수저, 뒤집개, 커피 스쿱 등)을 한 줄로 걸어 두고 나머지는 빈 여백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작품이 한눈에 들어와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벽 한쪽에 우드비앙이 어떤 곳인지 설명하고 이 기획은 어떤 의도로 만든 것인지 간단히 적어두었다.


우드비앙과 함께한 기획전

그리고 이 공간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공간에서 판매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책방은 박물관이 아니므로 이 기획 공간에서 그저 아름다운 것을 관람만 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드비앙의 매력적인 작품들을 직접 보고 만져보며 구매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더불어 기획에 알맞게 큐레이션 한 책을 판매하는 것이 필요했다. 전시 공간이 움푹 들어간 벽장이다 보니 골반 높이 정도에서 물건을 놓을 수 있는 바닥면이 생기는데 그 공간을 잘 활용하였다. 벽면은 작품을 전시하여 보여주고 아래 바닥면에는 판매하는 작품들과 나무 향을 맡아볼 수 있는 체험과, 큐레이션 한 책을 함께 놓아 판매했다.

처음으로 하는 지역작가와의 협업이어서 긴장이 많이 되었다. 괜히 번거로운 일만 부탁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는데 다행히도 반응이 좋았다. 전시 목적으로 걸어놓았던 작품들도 구매하고 싶다는 분들도 많았고 직접 배우고 싶다고 문의하는 분들도 있었다. 작품을 만들어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상업적인 공간을 갖고있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그래서 잘 만들어 놓고도 판매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내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자연이 주는 영감 덕분에 많은 청년 작가들이 모여있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이전에는 이 젊고 유능한 작가들이 모여 플리마켓이나 예술 행사들을 열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플리마켓이 문을 닫았고 작은 공방들도 경영난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졌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이 이런 어려움에 직면하여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제주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조그만 공간을 떼어 함께 했을 뿐인데 조금이라도 그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우리는 다양한 기획으로 단순히 책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설 수 있어 좋고, 작가들은 더 많은 작품을 알릴 수 있어 좋고. 그야말로 상생 프로젝트에 적합한 기획이었다.


그렇게 석 달간의 기획을 마무리할 무렵 다음은 무엇으로 이 프로젝트를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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