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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23. 2020

상생하는 기획이란 (2)


첫 협업을 무사히 마칠 무렵 우연히 제안이 들어왔다. 제주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문신기 작가님이었다. 어느 날 문득 책방에 오신 작가님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주로 작업하고 있는 작품과 전에 기획하여 만들었던 리커버 작품을 소개해주셨는데 얼핏 보고도 놀람을 금치 못했다. 자본력을 갖춘 대형 출판사에서 만들어내는 리커버 작품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들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소소하게 책 몇 권을 두고 싶다는 말씀에 이런 훌륭한 작품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음 기획은 문 작가님과의 협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작가님이 만든 리커버는 낡고 오래되어 가치를 잃은 중고책에 새 표지를 입혀 새 생명을 불어넣자는 취지의 작품이다. 기존의 오래되고 예스러운 표지를 벗어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표지를 보면 생명을 잃어가던 책들도 매력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중고책 수급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전시 목적이야 한 권씩만 있어도 괜찮지만 판매용으로 제작을 한다면 같은 사이즈의 책을 많이 필요한데 같은 종의 중고책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바로 새 책이지만 아주 오래된 책을 변신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원래 취지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고 한 사이즈의 표지만을 제작하여 판매도 가능했다. 그렇게 총 6종의 책을 리커버링 하였고, 한 권에 앞뒤로 두 작품을 실었다. 작품들은 리커버 표지, 엽서, 포스터로 제작되어 함께 판매했다.

문신기 작가님의 <북앤드로잉> 프로젝트

우리에게 이번 기획의 의미는 지역작가의 작품 활동을 알리고, 매력적인 리커버 표지로 잊혔던 고전 문학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자 함이었다. 이 기획 역시 처음에는 리커버 표지까지 합쳐져 가격이 비싸진 책을 과연 독자들이 살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금방 이것이 엄청난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추가 제작을 여러 번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전시 목적으로 걸어놓았던 대형 포스터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왔다.


“그저 제가 이런 활동을 하는 작가라고 조그맣게 알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작가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폭발적인 인기였다. 나도 작가님의 작품을 계속 보고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 제주 곳곳에서 작가님의 흔적이 보였다. 여러 행사 포스터에도, 제품 패키지에도, 유명 잡지에도 곳곳에 작품이 실려있었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저 힐끗 보고 넘겼을 그림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달라진 몇몇 사람들만 모이더라도 작가님의 인지도와 활동성이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작은 공간 하나 내어서 함께 썼을 뿐인데 그 후에 달라지는 것들이 엄청 많아졌다.


몇 차례 추가로 입고한 책들과 포스터를 거의 다 팔고 석 달간의 기획전이 끝났다. 그 이후에도 계속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아쉬움이 컸다. 수차례 재입고 문의가 들어오자 기획전이 아닌 상시적인 코너를 만들기로 하고 작가님께 새로운 버전의 리커버 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작가님은 흔쾌히 수락했고, 작가님의 리커버 프로젝트 <북앤드로잉 3차 프로젝트> (책방에서 기획전을 했던 것은 2차 프로젝트 작품임)를 준비하였다.


3차 프로젝트를 상시적으로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다.

수많은 책들 중 어떤 책을 구매하기로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가나 출판사를 보고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 광고를 보고 사기도 하고, 표지가 정말 매력적이어서 구매하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무언가를 보여야 하는 것은 맞다. 나온 지 아주 오래된 책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은 드물다. 아마도 그 책들은 서가 구석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채 조용히 잠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그런 책들에게 새 옷을 입혀주거나 정성껏 소개하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책방을 하며 자주 드는 생각인데, 책은 마치 생물 같다는 것이다. 무생물인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마치 살아있는 듯, 조금만 방치하면 서가 구석에서 영원히 눈에 띠지 못한 채 잠들어가게 된다. 구석에 있던 책을 끄집어 내 그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정성껏 소개하고 잘 보이는 곳에 두면 이 책을 왜 모르고 지나쳤을까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끊임없이 어루만져주고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살아있는 생명 같다. 예쁜 옷을 입고 다시금 빛을 보는 책들을 보면서 뿌듯함이 느껴진다. 하나하나 고르고 소개하는 마음이 자식을 키우는 마음에 비견할 수 없겠지만 비슷한 느낌이다. 모두 그 책을 만난 분의 삶 속에 녹아드는 책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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