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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25. 2020

책방지기의 독서법

책방에 오신 손님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여기 있는 책 다 읽으셨어요?”

나는 “이거 다 읽다가 죽을지도 몰라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그러면 어떻게 책을 골라 책방에서 소개할 수 있는지 의아해한다. 남편은 오래 일을 하며 누적된 나만의 데이터가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매우 복잡하다. 단순히 작가나 출판사를 보고 고르는 것이 아니라 더 복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주 고객층의 연령대, 취향 등을 고려하여 그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르는 것도 필요하고, 우리 책방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책들도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필요하지만, 대중이 사랑하는 작가의 책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골고루 적당한 비율을 정해 다양하게 책을 구비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일주일이 한두 번 정도 판매도서와 신간도서가 책방에 들어온다. 신간은 바로 배치하지 않고 우선 대략적으로라도 읽어보고 어느 자리로 갈지 정하게 되는데, 나는 이 대략적으로 읽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나는 책을 꽤 느리게 읽는 편이다. 밑줄도 긋고 옮겨 적기도 하고 심지어 좋은 부분은 책장을 넘기지 않고 무한 반복하여 읽기도 한다. 몇몇 소설은 끝까지 다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 다시 읽으려고 일부러 마지막 10장 정도를 남겨놓기도 했다. 그렇게 한 권을 두고두고 오래 곱씹어 읽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아는 작가가 많지는 않아도, 읽은 책의 양이 적어도, 내가 읽은 한 권의 책만큼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책방을 하게 되자 이런 독서법보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빠르게 읽는 것도 필요했다. 평소라면 손을 데지 않았을 것 같은 책들도 읽어봐야 했고, 재미있는 책도 여러 번 곱씹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빠르게 읽는 것도 필요했다. 우리가 골라 판매하고 있는 책이 어떤 책인지, 작가의 스타일은 어떠한지, 무슨 내용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을 것들은 쌓여가고 나의 독서 습관은 잘 바뀌지 않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은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책방지기가 되자 즐거움의 원천이었던 독서가 약간은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이 밀려 쌓이게 되면 업무가 가중되고 벅차듯 책을 살피고 읽는 일도 게을러지면 책방 일이 버거워진다. 여전히 책상에 높이 쌓인 읽지 못한 책들을 보며 미안함과 괴로움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읽는 것이 업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독서는 머리로 책을 읽고 마음으로 소화하는 과정인데 부족하지만 이것을 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언젠가 여유롭게 밑줄도 긋고 결말도 남겨놓는 나만의 호기로운 독서법으로 책을 읽는 여유를 갖는 날도 오리라 믿으며 부족한 책장을 넘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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