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눈처럼 마음의 눈을 뜨고

by 박진희

우리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처음 요가를 시작했을 때는 거울이 없는 것이 불편했다.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것인지 자꾸만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내 근육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한쪽 면이라도 거울이 있다면 고개를 돌려 힐끔 쳐다보기라도 할 텐데, 아예 어디에도 거울이 없었다. 골반의 수평을 맞추라고 하면 고개를 숙여 내 눈으로 확인해 보거나 그것마저 할 수 없는 동작이라면 그냥 감에 의지해 할 수밖에 없었다. 초보자인 나의 엉터리 감만 믿고 했다간 오히려 더 몸이 틀어질까 걱정도 되었다. 선생님은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초보 요린이를 얼마나 많이 봐오셨을까. 두리번거리며 자꾸만 확인하고자 하는 나에게 주변에 시선을 돌리려 하는 동안 몸이 더 틀어진다고 스스로 그 균형감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여러 번 일러주셨다. 이제는 스스로 찾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안 되는 자세를 완성하려 너무 애쓰지 않고 보다 정확한 힘을 쓰려 노력한다. 균형 감각을 갖고 나의 몸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는지 느끼려 집중한다. 여전히 골반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는지 감이 오지 않을 때가 많다. 눈을 감고 내면의 눈으로 몸의 축을 찾고 그 축을 중심으로 얼마나 틀어져있는지 살피지만 잘 보이지 않는 날이 더 많다. 선생님께서는 이 내면의 눈, 제3의 눈에 대해 많이 강조하셨다.


요가를 하다 보면 균형 감각을 깨우는 자세를 많이 만나게 된다. 그중에 가루다 아사나 (독수리 자세)가 있다. 팔과 다리가 얽힌 채 중심을 잡는 자세인데 포즈를 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이지만 제대로 유지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균형이 잘 잡히지 않으면 한 발 서기 자체가 어려운데 그 위에 다리를 꼬았으니 더 중심잡기가 어렵다. 양팔을 벌리고 서도 뒤뚱뒤뚱 할 텐데 팔 마저 서로 얽히게 꼬았으니 총체적 난국이다. 눈을 감으면 넘어질 것 같아 눈을 부릅뜨고 중심을 잡으려 버둥거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팔을 더 올려 시야를 가리라고 하셨다. 이 자세는 보이는 게 많으면 오히려 되지 않는다고 시선을 팔로 가리고 내면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두 눈 너머 존재하는 제3의 눈으로 나의 몸을 바라보며 균형을 잡는 것이다. 선생님 말씀대로 팔을 더 올리고 하체는 밑으로 더 무겁게 가라앉혔다. 앞이 가려지니 넘어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안정적이었다.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편안하고 집중적으로 자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아사나가 왜 독수리 자세인지 생각해보았다. 독수리를 떠올리면 높게 날개를 쭉 펴고 비상하는 모습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정확하게 먹이를 찾아 낚아채는 민첩함이 떠올랐다. 왠지 양팔을 벌리고 상체를 숙이는 자세를 연상시킬 것 같은데 팔과 다리를 서로 얽히게 꼰 것을 보니 비상하는 독수리를 나타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매와 정확하고 민첩함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높은 나무 위에 앉아 먼 곳을 집중하여 응시하고 있는 독수리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가루다 아사나는 아마도 집중력과 침착함을 가지고 날카롭게 바라보는 그 눈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신화에서 가루다는 세상을 수호하는 신인 비슈누가 타고 다니는 새가 된다. 세상의 조화가 위태로울 때, 가루다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비슈누를 호위한다. 가루다처럼 요기는 독수리 자세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미미한 시각적 혹은 청각적 자극만으로도 균형을 깨지기 쉽다. 시선이 흔들리기만 해도 중심을 잃을 것이다. 한 발로 서서 균형을 유지하려면 먼저 자신의 시선과 생각을 고정해야 한다. 요기는 시선을 고정하며 독수리의 예리함을 배운다. -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 중 -


내면의 균형을 꿰뚫는 제3의 눈, 그 눈을 크게 뜨고 나의 몸을 바라본다. 두 눈을 뜨고 있어도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힘은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에서 꼭 필요한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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