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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Dec 09. 2020

습관의 힘

책방 문을 열고 처음으로 긴 휴식시간을 갖고 있다. 12월 한 달을 쉬기로 했는데 중순에 수술을 하고 나면 그땐 꼼짝없이 누워서 쉬어야 하니 열흘 정도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일을 하지 않고 긴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오전에 요가원에 갔다 건강식을 만들어 먹고 그동안 바빠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틈나면 명상과 개인 요가 수련도 하고, 바다도 많이 보고, 한라산도 가보고...... 그러나 9일이 지난 지금까지 책을 한 권 제대로 읽지도 못했고, 건강식을 만들려고 준비한 재료는 냉장고 안에서 시들시들해지고 있다. 시간만 있다면 다 할 수 있을 텐데 하고 포기하고 있던 것들을 막상 시간이 넘쳐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꼴이다. 오히려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것이 더 실감 난다. 잘 쉬는 것도 쉬는 방법을 잘 알아야 가능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허비되는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요가와 글쓰기이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요가원에서 나의 몸을 돌보는데 시간을 쏟고, 오후에는 한 시간 정도 글을 쓴다. 도통 글을 쓰지 않다 오늘로 39일째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컨셉진에서 하고 있는 100일 글쓰기에 도전했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 우연히 SNS를 통해 100일 동안 글 쓰는 모임에 참여할 사람들을 구한다는 글을 보았고, 100일 도전을 완성하면 참가비로 냈던 소정의 금액을 다 환불받고 한 명 뽑아 책으로 출간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책을 내고 싶은 욕심도, 꼭 돈을 환불받겠다는 굳은 의지도 아니었다. 그저 다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참가 신청을 했다. 친구와 한참 브런치를 통해 연재 글을 올리다 돌연 글쓰기를 중단했다. 사람에게 굉장히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글을 쓰면 쓸수록 그 상처가 돋보였다. 글 속에는 나의 삶과 생각이 투영되기 마련이었고, 그래서 거울처럼 내면의 상처가 또렷이 반사되어 드러났다. 그래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멈추기로 한 게 벌써 2년이 훨씬 지났다. 글쓰기를 멈춘 지 1년이 넘어가자, 마음의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어 써도 될지,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쓰려니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쓰는 행위를 덮어두고 또 일 년 넘게 흘려보냈다. 2년이 지나자 내가 언제 글을 쓰기나 했었던가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며 한 달에 한 편이라도 꼬박꼬박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일이 바빠 모임을 운영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기회에 100일 글쓰기 도전을 보게 된 것이었다.


이 도전에서는 무슨 글이어도 좋고, 형식도, 글의 양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글을 쓰는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서로 독려하고 배려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부담이 없었던 것 같다. 글이 꼭 중요한 의미를 담지 않아도 되었고, 잘 쓰던 못쓰던 꾸준히만 하면 되었다. 부담이 없어지자 술술 써지기 시작했다. 원래는 글을 쓰고 며칠을 묵혀두며 다시 읽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할 시간도 없이 하루 써서 바로 올리게 되었다. 다음 날 다시 읽으면 엉망인 문장에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39일째 글을 썼다는 자부심이 더 컸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말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약속을 지켜낸 것이 자랑스러웠다. 웃기게도 수술하자고 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아, 그럼 글쓰기 펑크 나는 것인가?’하는 고민이 먼저 들 정도였다. 한 달이 넘어가니 이제 어느 정도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더라도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는 계속 쓰자고 다짐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고 물 한 잔 마시고 세수하는 것처럼 몸에 베인 습관이 되려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추워도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요가원으로 향하는 걸음, 약속이 있어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기 위해 책상에 앉는 그 마음. 작디작은 동작 하나이지만 이것이 꾸준히 모이면 더 달라진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긴 휴가를 받아도 시간을 알차게 쓰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습관이 된 행동들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한 식사는 하루만 먹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글을 쓰는 이런 마음가짐처럼 굳게 마음먹고 노력해야 완성되는 것이다. 생각했던 것들을 다 하지 못하더라도 습관을 만드는 첫걸음이라 생각하고 조금씩 시도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아니면 강력한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100일 글쓰기 밴드에서 매일 인증할 때 받는 메시지를 보는 그 재미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래도 두 가지 습관을 이어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시간을 완전히 허투루 쓰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꾸준함이 쌓여 단단함이 생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글을 한 편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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