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때가 되었다. 100일의 요가 기록을 끝마치고선 아, 언젠가는 마음 편히 나지막하게 써 내려간 글을 올려보고 싶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틈날 때마다 머릿속으로 구상을 해 보아도 도저히 각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제아무리 일상적인 에세이 성격의 글이라도 대략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던가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차일피일 글쓰기를 미루다가 아침 일찍부터 블라인드 사이로 포근하게 내려앉은 햇살을 보니 이젠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그 때다.
사실 글은 늘 쓰고 있다.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던 그 시절만큼의 뜨거운 글은 아니지만, 그 시간들을 지나 따땃하게 데워진 돌멩이처럼 천천히 식어가는 마음을 달래며 조금씩 뭐라도 쓰는 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마냥 차가워지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더해.
아침 해가 어쩐지 부지런해졌다 느껴지는 오늘. 일찍부터 따듯한 기운을 더한 공기가 눈으로 살갗으로 느껴진다. 봄이다. 고양이는 창가에 앉아 볕을 쬐는 행위가 늘었으며 웅크려 자는 모습이 조금은 풀어져 편안해 보인다. 목요일은 일주일 중 오전 시간이 비교적 여유가 있다. 그래서 이따금씩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산책은 좋은 글감의 행위가 되어준다. 지나다니는 사람 구경, 마주치는 길고양이와의 짧은 인사, 기분 좋은 새들의 노랫소리,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동네 나무들을 보면 자연스레 쓰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생긴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몸과 시각적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저 골몰하며 쓰는 글 보단 비교적 낙관적이게 된다. 앞으로의 목요일마다 걷고 느끼며 일어나는 일들과 생각을 편안히 써 내려가 볼까 한다. 말 그대로 편안하게 친구와 적당히 식은 커피를 마시며 느긋한 오후를 보내듯이. 물론 산책을 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몸이 안 좋거나 귀찮을 때도 있을 테니까. 생각나는 대로 나의 말들을 산책을 하듯 편안히 풀어놓고 싶다. 그저 목요일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나만의 작은 호사의 행위라고 생각해도 좋다.
아무런 계획도 구상도 없이 시작하는 글이라 너무 대책이 없는가 싶기도 하지만, 일단 시작은 오늘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은 분명하다. 그냥 한 번 또 해보는 거다. 봄을 핑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