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 유일하게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목요일. 그래서 전날은 기분 낼 겸 맥주를 한 캔 씩 마시고 잠이 들곤 한다. 기분 좋게 눈을 떴다면 좋았으련만 역시 늦은 밤의 맥주는 조금은 힘든 아침을 나게 만든다. 얼굴은 절망적인 감자처럼 부어있고 머리는 멍하며 몸은 늘어진다. 밖을 보았다. 봄이지만 아직 쌀쌀하여 패딩을 입고 나가야 하는 날씨다. 해가 적절히 나 주어 밝은 오전이지만 공기 중엔 아직 겨울의 차가움이 남아있다.
나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커피잔에 얕게 남아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쭈악 들이키고는 달그락 내려놓았다. 나가야지. 아, 나가기 전에 한 15분간 전날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정을 못 내린 온라인 스토어의 주물냄비를 잠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직 오전시간은 충분하니까. 굳이 15분인 이유는, 20분 정도가 되면 나가기로 먹은 마음의 의욕이 작아질까 봐 여서다. 사이즈와 컬러를 고민하다 결정을 내리고는 재빠르게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얇은 목티와 그 위에 후드티를 입고 경량 패딩을 걸쳤다. 추우려나. 에이. 추우면 좀 빨리 걷지 뭐.
저번에 신었던 새 운동화는 잠시 밀어 두고 비교적 편한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 사부작사부작 걸어가 보자. 아파트 1층 공동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음, 이 정도면 괜찮은 날씬데? 하고는 상가 끝 도로가에 다다른 순간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훙 불어온다. 아직 감지 않은 머리칼이 볼을 스치며 휘날리고 이내 눈이 시큼해진다. 아. 춥다.
되도록이면 빠른 걸음을 택했다. 왕복 4차로의 훵한 도로 앞 횡단보도에서는 일부러 종종이며 제자리걸음을 하고는 보행자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마치 경보를 하듯 가볍지만 바쁘게 걸어 나갔다. 여유 있는 산책은 힘들겠구먼, 하지만 이게 요맘때 날씨의 맛이지. 문득 대학교 1학년 첫 상경을 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입학을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동기들과 동대문 구경을 간 적이 있다. 나름의 멋을 내고자 했던 욕구가 충만한 나이. 나는 재킷형 경량 패딩에 베이지색 진의 나팔바지를 입고 힐을 신었다. 바지는 촌에서 상경한 나를 이리저리 이끌고 다니며 쇼핑 컨설팅 역할을 자처했던 사촌 언니가 준 것이다. 날씨는 요즘의 날씨와 비슷했다. 꽤나 봄을 시샘하던 추위. 멋쟁이는 여름엔 쪄 죽고 겨울엔 얼어 죽는다던 사촌 언니의 말이 문득 생각이 나며 나 역시 뭔가 모를 멋쟁이의 대열에 오른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추위의 시샘이 너무 강했나 보다. 쇼핑센터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당시 이모집에 얹혀살던 나는 양재동까지 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동안 얇고 하찮은 힐은 내 발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길어서 살짝 끌리던 나팔바지는 쌓인 눈에 축축이 젖어 얼음처럼 무거워졌다. 멋 부리다 얼어 죽겠네 싶었지만 차마 멋은 포기할 수 없었던, 패기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예전의 유행이 돈다. 특히나 짧아진 상의가 그렇다. 산책을 나가면 숏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예쁘다. 짧은 패딩에 낙낙한 바지 혹은 스트레이트로 뻗은 편안한 진 차림을 보면 나도 저렇게 입고 싶다. 그러나 이내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러뜨리며 몸을 떤다. 추위가 상상이 되어서다. 으. 아랫배가 시리지 않을까. 나는 못 입을 것 같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니 신체의 약점인 부분은 점점 더 도드라지는 것 같다. 수족냉증이 있고 몸이 냉한 체질인데 아직 살집이 부드럽게 더 붙지 않아서일까. 갈수록 이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 특히 겨울이 되면 아랫배까지 차가워지는 게 느껴져 겨울철엔 이따금씩 맨손을 아랫배에 냅다 갖다 대어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약간이라도 찬 기운이 느껴지면 담요나 이불을 배 쪽으로 둘둘 감싼다던가 얼른 몸을 일으켜 온열팩을 데워 배에 얹혀둔다. 요가를 하며 아랫배에 대한, 그러니까 단전에 대한 의식이 더해져서인가. 아랫배는 늘 따뜻하고 단단하고 기운이 잘 모여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여러 가지의 이유로나는 몸의 체온과 아랫배 관리에 진심이게 되었다. 이렇게 점점 유행에서 멀어지게 되는 건가. 별 수 없이 자연스럽게. 의외로 별다른 아쉬움 없이.
공원의 한 복판에 다다르니 볕 아래에 몸을 뒹구는 고양이들과 간격마다의 화단에 꽃을 심으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냉기 머금은 바람은 여전하지만 모두들 다가올 봄을 알고 있는 듯하다. 각자 나름의 가벼운 패딩 차림에 주머니에는 손을 찔러 넣고도 이곳은 어떻게 단장을 하고 저것은 어떻게 진행이 될 지에 대한 이야기들로 분주하다. 그러나 소란스럽지 않다. 공기가 제법 차서 몸을 움츠릴 법도 한데 고양이들은 볕 내린 바닥에 몸을 부비느라 정신이 없다. 곁에 든 추위가 머쓱하게 느껴진다.
봄은 늘 그런 식이다. 추울까 따뜻할까, 패딩을 입을까 재킷을 입을까,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새에 어느덧 꽃은 흐드러지게 피고. 따닷한 김처럼 올라오는 온기에 정신이 아득해지다가 이내 더위에 몸부림치게 만든다. 작년에 샀던 가죽재킷을 올해는 부지런히 입어 주리라 마음 먹지만 이내 몇 번 꺼내보지 못하고 옷장 속에서 지루한 기다림을 맞는다. 그러니 우리는 조용히 분주해지나 보다.
봄은, 이왕이면 제 때에 흠뻑 취하고 싶다. 농밀하게 느끼고 싶다. 눈치가 있다면 아마 이 추위도 멋쩍게 물러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