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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23. 2020

슬로베니아:사랑의 도시와 알프스의 눈물

방구석 드로잉 여행 9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운전을 하고 있다. 낮에 구글맵을 체크했을 때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도로가 꽉 막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벌써 5시간째다.


  잠깐 K형에게 운전을 맡기고 예약해 둔 호텔에 전화를 한다. 자기도 뉴스 봤다고. 그 지역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엄청난 교통체증이 생겼다고 한다. 9시까지 오면 자기가 체크인을 해주겠지만 그 이후에는 직접 체크인을 할 수 있도록 메모와 키를 남겨 놓을 테니 조심해서 오라고 한다.  


  숙소인 비다하우스 Vida House에 도착하니 8시 50분. 가까스로 호텔직원이 퇴근하기 전에 도착했다. 호텔 매니저인 타마라 Tamara가 밖에서 서성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다며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안아준다.


  머리를 짧게 자른 톰보이같은 스타일에 시원한 눈매를 가진 아가씨이다. 내손을 두 손으로 감싸며 제시간에 오지 못하면 어쩔까 걱정했다는 둥, 한국에서 오는 손님은 매우 드문 일인데 진짜 반갑다는 둥 속사포처럼 인사말을 쏟아낸 다음에야 비로소 체크인을 도와준다.


  취사도구와 간단한 부엌이 갖추어진 넓고 깨끗한 방에 K형은 최고라며 엄지를 들어 올린다. 대충 씻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허기가 몰려온다. 밖에 나가서 무얼 먹기도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라면이라고 끓여 먹으려고 하니 이런 인덕션 작동법을 모르겠다.

매뉴얼을 다운 받아 읽어보고 그대로 해봐도 전원은 들어오는데 물을 끓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밖에 나가서 뭐 먹을 것이 있을까 찾아보기로 한다. 류블리나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어서 그런지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자판기가 하나 보인다.


  그런데 희한하다. 상품을 팔고 있는데 우유, 계란, 야채 뭐 이런 것들이 들어있다. 게다가 우유는 그냥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병에 담겨있다. 우리끼리 추측하기를 ‘이것은 마을 사람들이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우유를 두 병 사가지고 돌아왔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아니면 진짜 맛있던걸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우유를 먹은 느낌이 들었다.


  K형은 이렇게 맛있는 우유를 먹고 나서도 후배놈이 저녁도 제대로 안 먹여준다며 투덜거리신다. ‘자꾸 그러시면 내일 아침도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서로 깔깔거리며 잠이 들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타마라가 보인다. 아침인사를 하며 어젯밤 일을 설명했더니 사용법을 설명해 주었어야 했다며 너무 미안해한다. 밤사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가 위로를 하고 있다.(이건 좀 이상하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 타마라의 환대가 고마워서 비다하우스 그림을 보내주었다. 깜짝 놀랐다며 이렇게 멋진 그림을 자기만 볼 수 없으니 출력해서 리셉션에 붙여놓겠다는 둥 예의 수다를 이메일에 늘어놓았다. 같이 있기만 해도 주변사람에게 에너지를 나누어주는 그런 타입의 사람이다. 혹시 비다하우스를 방문하시게 되면 타마라에게 안부도 전해주시고 정말로 타마라가 그림을 붙여놓았는지도 알려주시길 ······.  



  류블라냐 시내는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골목은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1990년대 초반 고르바초프의 개방과 개혁정책의 물결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에도 밀려 들어왔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유고연방을 통치하던 티토가 사망한 이후 유고연방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6개 국가로 해체되었으며 듣기에도 끔찍한 인종청소를 감행하며 악몽과도 같은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유독 슬로베니아는 내전을 겪지도 않고 종교문제로 인한 갈등도 없이 슬기롭게 힘든 시절을 헤쳐 왔다. 직접 와서 보니 불행이 왜 피해갔는지 알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악몽은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류블라냐 성을 구경하고 내려오니 ‘소고기 성애자’인 K형. 점심은 자기가 스테이크를 사겠다고 한다. 어제 저녁도 굶었으니 점심은 무조건 소고기여야 한다고. ‘뒤끝작열’이다. 골목길 구경을 하면서 강변으로 나오다 보니 스테이크 전문이라는 식당이 보인다.

  이름이 소바라(Sorbara)이다. 웨이터가 너무 잘 생겼다. K형은 아니 왜 저 얼굴에 저 몸매로 여기서 웨이터를 하냐고 오히려 자기가 더 분개하고 있다. 잘생긴 청년에게 이 식당의 이름을 보면 소를 팔 수 밖에 없는 곳이라고 했더니 왜냐고 묻는다. 한국말로 ‘소 봐라’가 무슨 의미인가 하면 'Look, there is a cow'라고 했더니 진짜냐며 재미있어 한다. Sorbara는 이태리에 있는 마을이고 그 곳 출신이라서 이름을 이렇게 만들었고 지금도 일 년에 한두번 그 곳을 다녀온다고 한다. 스테이크는 과연 최상의 맛이었고 K형도 자신의 선택에 굉장히 만족해한다.  



  류블라냐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도 좋겠지만 1시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알프스의 눈물’이라는 별명을 가진 블레드 호수가 있다. 알프스의 빙하에서 녹은 물이 모여든다고 알려진 호수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과 호수안에 있는 작은 예배당, 그리고 절벽위에 세워진 성으로 류블라냐 최고의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다. 블레드 성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 호수에서 보트를 타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조깅을 하는 멋진 몸매의 아가씨들. 오지 않았다면 땅을 치며 후회할 법한 곳이다.

  

  호수 주변과 호수 중앙에 있는 작은 섬을 오가는 배가 있다. 플레트나라고 부르는데 사람의 힘으로 노를 저어 관광객들을 작은 섬으로 데려간다. 10명이 넘는 승객들을 태우고 노를 저어 가면서도 싱글벙글 웃으며 간다.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을 붙이니 잠시 배를 세우고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물려받았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고 한다. 자신도 아들에게 이 일을 물려줄 것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슬로베니아는 대부분의 지역이 육지와 면해 있지만 한 쪽 끄트머리가 바다와 맞닿아 있다. 피란Piran이라는 곳이다. 베네치아가 아드리아 해의 맹주로 군림하던 시절 지금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지역은 달마티아Dalmatia라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강성한 베네치아는 달마티아 지방의 해안선을 따라 요새도시를 건설했으며 피란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런 이유로 베네치아 통수권자는 달마티아 공작 Duke of Dalmatia이란 칭호를 300여년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피란은 조그마한 어촌 마을처럼 보이지만 당시에는 베네치아의 상선들이 들락거리며 선원들과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던 중요한 전초기지였다.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곽으로 올라간다. 그다지 높지 않은 성벽이지만 이곳에 올라가면 피란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올라갈 수 없는 곳일 수도 있다. 호주에서 왔다고 하는 중년 부부의 경우가 그랬다. 아주머니는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저씨는 무릎이 불편한지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가신다.


  호주아주머니는 한국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부산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고 ‘어디서 왔서예~’하면서 부산 사투리 흉내를 내신다. 한국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행복한 기억이었다며 잠시 먼 수평선을 바라보신다. 마치 바다 건너에 있는 부산을 떠올려 보는 것처럼······.


  호주아지매는 좀 더 있다 가신다고 하면서 혹시 내려가다가 남편을 보면 조금 더 기다리고 있으라고 전해 달라고 하신다. 내려가는 길에 아저씨를 찾아봐도 어디로 가셨는지 알 수가 없다. 자기를 버리고 간 호주아지매가 미워져서 혼자 바닷가로 내려가셨는가 보다.


  피란의 골목은 얼핏 보면 베니스의 골목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마도 식민도시를 건설하면서 고향집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향수를 달랬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골목을 지나 잘 만들어진 해변 산책로를 따라 가다 보니 캠핑장처럼 보이는 곳에 젊은이들이 한가득 모여 있다.


  K형한테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부러운 것이 미친척하고 놀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더니, 자기는 영어를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돌아가면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다음번 여행에는 자기가 음식 주문도 하고 어쩌다가 만나는 사람이라도 생기면 그냥 여기 아무 곳이라도 주저앉아 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떤다.  



  K형은 이제 막바지로 접어든 여행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고 있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때는 하지 않을 핑계를 찾게 된다. 나 역시 그렇다. 지켜야 할 사랑도 생기고 해야 할 일도 있고 세상살이가 녹녹하지 않다. 그래도 K형 덕분에 나한테는 비타민과 같은 여행을 한 기분이다.

K형도 같은 기분이리라. 노을에 물들어 가는 바다를 보면서 여행의 끝자락에서 마시는 맥주는 아무리 마셔도 취할 것 같지 않다. 카페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어쩌다가 만나는 사람’은 오지 않고 음식을 구걸하는 갈매기만 기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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