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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23. 2020

오스트리아:짤스부르그로 가는길

방구석 드로잉 여행  8

  주차장과 들어오는 방향의 도로로는 이제 차들이 가득하다. 일찍 와서 일찍 나가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짤스부르그로 가기 전에 고사우Gosausee라는 호수를 한 군데 더 가기로 한다. 계획에는 없었는데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곳도 멋진 곳이라며 추천을 해주었다. 할슈타트에서 고사우로 가는 길은 마치 그림엽서 같은 곳이다. 창문을 열고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를 만끽하며 가는 길은 환상적이다.


  그리 크지 않은 호수 주변으로 산책길이 있고 북적이는 단체 관광객들 대신 가족여행객들이 고즈넉한 호수의 분위기를 즐기는 듯 보였다. K형과 나는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서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면서 가고 있다. K형의 아프리카 생활 이야기는 자꾸 들어도 재미있다. 담배 한 보루와 맥주를 사려면 40km를 운전하고 가야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세차를 해 놓으라고 해놓고 그만 깜박하고 그만하라고 이야기를 안 했더니 하루 종일 세차를 하고 하다못해 작은 막대기로 바퀴에 끼인 흙까지 모두 털어내고 있더란다. 웃을 수도 없고 화낼 수도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짤스부르그로 가는 길을 네비게이션이 시골길로만 안내를 한다. 횡단보도도 없는 좁은 길에 빨간색 신호등이 덩그러니 있다. 둘이 그 앞에서 이게 뭐지 하고 있다가 그냥 그 길로 들어갔더니 앞에서 오는 차가 경고등을 번쩍이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차에서 내려 미안한데 초행길이라서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신호등을 가리키며 좁은 길이어서 저 신호등대로 통행해야 된다고 알려준다. 이런 미안할 때가. 얼른 차를 뒤로 빼고 녹색불로 바뀔 때를 기다렸다가 그 길을 통과한다. 어휴 그래도 초입에서 만나서 다행이지 중간에서 만났으면 어쩔 뻔했을까. K형, 유럽에서 운전하고 다닌 게 몇 년인데 아직 이런 것도 모르냐고 타박이시다. 나도 이런 시골길은 처음이라구요. 둘이 톰과 제리처럼 툭탁거리며 여행하는 것도 이외로 재미가 있다.


  아직도 시차적응이 완전히 되지는 않지만 되도록 저녁식사 후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아침이 힘들지 않다. K형은 상당한 애주가로 알고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저녁식사하면서 가볍게 마신 맥주 한 잔 외에는 더 마시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보니 운전을 해야 하는 나를 생각해서 다음날 힘들어할까봐 맥주 한 잔 정도로 끝내는 것이란다. 이런 기특한 형님 같으니라구. 동행이 있는 여행은 이렇게 배려를 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운전을 해야 하는 후배를 위해 홍삼을 챙기고, 오후가 되면 졸음을 참고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고, 수다를 떨어주면서 여행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아침 산책을 겸해서 짤스부르그 성으로 올라가본다. 아침 일찍이라서 그런지 매표소 직원이보이지 않는다. 어쩌나 하고 성문 앞을 서성이고 있으니 조깅을 하던 사람이 그냥 들어가라고 손짓을 한다. 성 안은 인적이 없어 조용하다.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어도 아직 카페도 열지 않은 상태이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으니 드디어 첫 관광객들이 푸니쿨라를 타고 들어온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니 짤스부르그 시내 뿐 아니라 멀리 알프스 산자락도 보이고 눈이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내려갈때는 우리도 관광객 기분을 내 보려고 푸니쿨라를 타려고 하니 매표소가 보이지 않는다. 푸니쿨라 운전을 하는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그냥 태워준다고 한다. 어쩐지 오늘 횡재를 한 기분이다.          



  성에서 내려오니 살짝 비가 오는 것 같다. 짤스부르그의 골목길은 좀 희한하다. 기본적으로 가로로 길게 이어진 골목인데 건물의 1층에 구멍처럼 길을 내어 세로로 이어준다. 위에서 보면 가로 길만 보이는데 실제로 가보면 위에서 보이지 않는 세로길이 있는 지라 멀리 돌지 않아도 된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니 모차르트라는 이름의 카페가 보인다. 하얀 휘핑크림을 얹은 비엔나커피를 한잔 하며 비 내리는 창밖을 보고 있으니 여행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음악이나 들으며 조용히 있고 싶어진다. 비엔나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짤스부르그는 아기자기한 골목과 카페가 여행객의 시선을 끈다. 물론 모차르트의 생가도 있고 유명한 미라벨정원, 성당, 수녀원 등 가볼 곳이 많지만 기억에 남는 건 카페에서 바라보던 비 내리는 풍경이었다. K형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턱을 괴고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오후엔 성당구경, 정원 산책, 시내구경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K형은 어쩐지 기운이 빠진 듯이 보인다. 아무래도 긴급 처방이 필요할 듯하다. 한식을 먹을까 하다가 골목 안에 있는  중국음식점이 그럴듯해 보인다. 볶음밥과 마파두부 그리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나니 K형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생기가 나는 듯하다. 여행하면서 현지식도 좋지만 가끔은 밥도 먹어주고 매콤한 음식도 먹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식당이름은 유엔 Yuen. 볶음밥과 마파두부는 우리가 상상하는 바로 그 맛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아까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했냐고 물으니 ‘그냥’이란다. 참으로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 ‘그냥’. 비가 오고 나서 차가워진 밤공기가 폐로 들어가는 기분이 좋은 밤이다. 지나오는 길에 조그마한 카페에 들려 맥주를 한 잔 더 하기로 한다. 테라스에 앉아서 짤스부르그의 밤하늘에 담배연기를 날리며 K형 한마디 한다.     


  “흐흐, 후배 잘 두어서 내가 말년에 호강한다.”

  “에이, 그런 줄 알면 평소에 욕이나 하지 마쇼.”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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