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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22. 2020

오스트리아-비엔나와 할슈타트

방구석 드로잉 여행 7

  2019년 가을. K형과 나는 비엔나를 향해 가고 있었다. K형을 처음 만난 것이 1985년이었으니 30년이 넘은 인연이다. K형의 말 못할 사정으로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다가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하던 사업이 두 번 정도 망한 뒤에 한국이 싫어져서 훌쩍 아프리카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까닭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 K형은 나의 유럽여행을 늘 부러워했다. 어느 날 뜬금없이 전화를 하더니 적금을 하나 계약하고 나오는 길이란다.


  “그래요?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이야기 하는 거유?”


유럽여행을 갈 노잣돈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내가 떠날 때 무조건 함께 갈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여행을 함께 하면서 싸우고 헤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가족 외에 누구와 함께 해외여행을 해 본적이 없어서 조금 걱정이 되긴 하였지만 뭐 어쩌겠어. 나이가 깡패지 하는 심정으로 같이 가기로 결정을 했다. 중년의 두 남자가 신혼여행이나 갈 법한 곳으로 여행을 가다니 조금 이상하다.


  유럽여행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성당여행이라서 사전지식이 충분치 않으면 금방 지겨워 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멋진 자연을 보면서 드라이브하는 맛이 있는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가 제격일 것 같아서 조금 이상하긴 해도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로 방향을 잡았다. K형 의견을 물으니 일정은 알아서 하고 자기는 본인이 필요한 것만 준비해 갈 테니 출발일 공항에서 보자며 전화를 뚝 끊는다. 어째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행 첫째 날 아침이 되자 K형, 열심히 가방을 뒤지더니 홍삼을 찾아 건네며 힘들면 여행에 지장이 있으니 지금부터 자기가 나의 체력관리를 하겠단다. 아니 이 양반이 누가 할 소리를. 내 여행경력이 얼만데. 어쨌든 주는 것은 넙죽 받아먹는 성격이므로 홍삼 따위(?)를 마다할 리 없다. 흠흠. 시작은 비교적 괜찮다.


  과연 비엔나는 제국의 수도답게 화려하다. 오페라 극장, 왕궁, 성당과 쇼핑거리 여행객의 발걸음은 느려지기만 한다. 그 유명하다는 비엔나커피(?)도 한 잔하면서 K형은 여행이 너무 즐거운 듯하다. 슬쩍 스와로브스키 본사가 비엔나에 있다고 들었는데 거기를 가자고 하신다.


  “아니 형이 왜 거길 가? 우리가 가서 살게 뭐가 있다고.”


아는 동생이 비엔나에 간다고 하니까 아이유 목걸이를 사다 달라고 했단다.


  “아이유 목걸이는 또 뭐여.” 투덜거리며,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가게 위치를 물으니 친절하게도 마침 그 쪽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따라 오라고 한다.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냐고 해서. 그럴리가요. 우리나라 속담에 잡은 물고기에겐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했더니 깔깔거리며 웃는다. 즐거운 쇼핑되라며 손을 흔들고 가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두 중년사내는 아쉬운 듯 바라보고 있다. 목걸이 사진을 보여주니 점원이 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목걸이를 꺼내 준다. 아이유를 닮고 싶어 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왔다 갔다는 증거이리라.


  비엔나에 오면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벨데베레 궁전이다. 이곳에 가면 클림트와 에곤쉴레의 그림을 볼 수 있다. 클림트의 그림이야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있어서 원화를 본다는 것 외에는 색다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에곤쉴레의 그림은 아픔이 느껴지는 그런 그림이다. 특히 태어나지 못했던 아이와 함께 가족을 그린 그림에서는 누가 설명하지 않더라도 슬픔이 느껴지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K형도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제 에곤쉴레 그림은 알아 볼 수 있겠다고 이 곳에 오길 잘했다며 숙연한 표정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재미있는 구성도 있다. 늘 모네와 마네가 헷갈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란히 전시해 놓은 것이 아닌가. 이렇게 미술에 문외한들을 위하여 미술관에서는 배려를 했지만 나는 지금도 모네와 마네가 헷갈린다. 벨데베레 궁전은 미술관외에도 멋진 정원을 가지고 있다. 미술관에 딸린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한 잔 하고 산책을 나가 본다.


              

  저녁이 되자 K형은 밤거리 구경을 가자고 조른다. 원래 야경은 사랑하는 연인들이나 보는 거니까 나는 호텔에서 쉴 거라며 완강히 거부한다. 유치하게 가위바위보를 하잖다. 결국 밤거리로 끌려 나갔다. 예상대로 거리는 사랑하는 연인들로 넘쳐나고 왕궁은 낮과는 다른 빛깔로 곱게 화장을 한 후 파티를 기다리는 여인과 같은 모습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원더풀 투나잇’을 흥얼거리며 밤의 향기에 취해본다.


  아침이 되자 홍삼을 또 먹인다. 이쯤 되면 사육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한국에서 출발 전에 이곳을 가볼까 말까 망설였었다. 아름다운 곳이라고 명성이 자자하지만 오버투어리즘에 몸살을 앓고 있는 곳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혼자였으면 오지 않았겠지만 K형에게 내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대신 아침 일찍 가고 사람들이 많아지는 오후가 되기 전에 빠져나오기로 했다. 도시가 아직 기지개를 펴기 전인 이른 아침 출발을 한다.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이어서 그런지 어제와 달리 공기가 소슬하다. 우리는 지금 할슈타트로 가고 있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주차장이 아직은 한산하다. 어디부터 시작할까 하다가 소금광산이 있던 산 정상까지 푸니쿨라로 올라간 다음 걸어서 내려오기로 한다. 이렇게 쉽게 정상을 오를 수 있다니.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호수도 멋있지만 이곳에서 먹는 맥주는 가히 환상적이다. 소박한 감자튀김이지만 그 가격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여행하면서 소비하는 지출의 대부분은 먹고 마시는데 있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짐이 늘어가는 것도 달갑지 않다. 기가 막힌 곳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나의 정신을 살찌운다고 굳게 믿고 있고 게다가 짐이 늘어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오 헨리의 단편 중에 지금은 어느 정도 유행이 된 ‘호캉스’를 즐기는 가난한 남녀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일 년을 모아서 이렇게 써버리는 것이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이들은 가장 행복한 여행을 호텔에서 즐기고 있던 것이고 자신에 대한 보상이 또 다른 일 년을 기대하면서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한국에서 온 신혼부부를 만났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올라가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는다. K형.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둘이 올라가다가 싸우고 헤어질지도 모르니 주차장 옆에 푸니쿨라 타고 올라가라고 점잖게 충고를 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 삼아 오르는 일은 조금 더 살아본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을로 내려오니 관광버스로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온다. 마을은 작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해마다 달력그림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 할슈타트. 마을을 벗어나 좀 한가한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웨이터가 무척이나 특이하다. 키는 190cm정도 되는데 굉장히 말랐다. 표정은 뭐랄까. 어떻게 보면 슬픈 표정이고 또 다시 보면 거만한 표정이고. 걸음걸이와 행동은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 매우 천천히 메뉴판을 건네는 손을 따라 나도 모르게 매우 천천히 손을 내밀어 메뉴판을 받는다. K형은 그런 내 모습이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다. 턱하니 나를 내려다보며 따라 하지 말라며 피식 웃는다. 그러고는 또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주방으로 사라진다. 음식 맛은? 음. 오스트리아에서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식당이름은 Pizzeria Bella Milano. 아직도 느림보 웨이터가 그 곳에서 서빙을 하면서 여행객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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