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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n 15. 2022

두근두근... 출판으로 가는 길(2)

두 번째 이야기 - 프롤로그

책을 출간하기로 했으니 프롤로그를 써야 한다. 모든 책에 프롤로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기분으로 써 내려갔다. 참고로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유명 작가들은 따로 프롤로그를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 자신감이 몹시 부럽다.



살면서 귀가 얇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누가 옆에서 그럴듯하게 속삭이면 홀딱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득을 볼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으니 대충 ‘퉁’ 치면서 살아왔다. 매년 한 두 번 꼭 가야 했던 이탈리아 출장길이 막혔다. 인류역사에 스페인독감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회자될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었다. 해외 출장만 제약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 한동안은 국내 출장 또한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비대면 접촉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가능하면 만나지 않으려 했다. 공식적인 일정이 이렇게 축소되면서 갑자기 시간이 지천으로 남게 되었다.     


여행 때문에 만나게 되었던 몇 사람이 있다. 여행을 가지 못해서 살짝 안달이 난 사람들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들어 준 여유로운 시간이 없었더라면 만나지 못할 뻔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역시 나처럼 귀가 얇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가지 못하게 된 여행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주막결의’를 하였다.(이렇게 중요한 일에 술이 빠지면 되나) 작가로 활동하고 있던 분을 사부로 모시기로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글쓰기 모임을 가졌다. 글쓰기라는 바다를 향해 무모하게 나아가는 초보자들에게 항해사 역할을 부탁했다. 목표는 정해졌으니 이제 시작만 하면 된다. 그런데 무엇으로 글을 써야 하나.      


처음 몇 주간은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글감을 찾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동안 항해사는 길을 잃지 않도록 몇 가지 훈련을 시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관찰하는 법, 다르게 보는 법,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아 두는 법.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였다. 아이디어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충분한 자료와 경험이 부족하다면 쉽지 않은 항해가 될 터인지라 내가 어렵지 않게 풀어나갈 수 있는 글감이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만 쓰는 것보다는 그동안 그려두었던 이탈리아 풍경에 글을 더하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풍경에 그곳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 나니 갑자기 고치에서 실이 뽑히는 것처럼 술술 이야기가 풀려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버킷리스트’가 있었던가? 비록 리스트 목록을 작성하지는 않더라도 누구든지 마음속에 한 두 가지 하고 싶은 일을 품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25년째 아주 평범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남편으로서의 역할, 아빠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살아왔다. 영화로 치자면 ‘행인 5’쯤 되어 무심히 지나가는 배경 같은 삶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배경이 없다면 영화도 없다. 어떤 영화는 내용보다 배경이 더 인상적인 경우도 있으니 완전히 ‘망한 생’은 아니라고 위로한다.(배경을 그리는 애니메이터에게 꽃을...) 배경 같은 삶일 지라도 하고 싶었던 일은 있었다.     


 수년 전 북촌 마을에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산책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따가운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던 오월의 어느 날로 기억하는데 한옥을 빌려서 풍경화 전시를 하고 있었다. 유럽의 도시들에 대한 풍경화였는데 맑은 수채 물감으로 화사하게 그린 피렌체 풍경이 너무 좋았다. 심장이 콩닥거리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왜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 졌을까? 아마도 그림을 그리면서 단조로운 일상이 작은 균열을 주고 싶었나 보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콘크리트 더미의 작은 틈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자그마한 들꽃처럼, 나의 일상에도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새에 흙을 채워 꽃을 피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를 원했던 것 같다.       


 간단한 선 긋기로 시작된 그리기 연습은 조금씩 생활의 한 부분을 채워가기 시작했고 이제 마른땅에 아주 조그마한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라 좀 더 잘 그려보고 싶은 생각에 미술수업도 수강했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일이 신이 나서 열심히 그렸지만 직장인에게 ‘일’이외에 규칙적으로 어디를 가는 것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배워도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다분히 경제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아내의 충고(?)를 냉큼 받아들여 수강은 그만두고 방구석에 책상을 하나 들여 나만의 공간을 마련했다. 언젠가는 출장 중에 또는 여행 중에 진짜 화가처럼 현장감을 즐기면서 멋지게 그림을 그리면 좋겠지만 아직은 낯설다. 하지만 현장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나에겐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중요한 일이었고 나의 사진 또는 다른 이의 사진 속에 담겨있는 풍경을 오늘도 방구석에서 열심히 그리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풍경화에 살아가는 이야기, 여행 이야기, 음식 이야기를 더하게 되었다. 글과 그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잔잔한 풍경에 누구에게나 생길 법한 이야기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속삭이듯이 나즈막하게 들려주고 싶었다. 다리에 얽힌 이야기, 탑에 얽힌 이야기, 영화 속 풍경이야기들로 마치 평범한 만두피에 갖가지 고명으로 속을 채워 나만의 특별한 만두를 만드는 것처럼 내 풍경화를 채우고 싶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만두를 맛있게 먹고 ‘으음 잘 먹었다’ 하는 기분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출판사 대표님이 손해를 보지 않을 정도로는 팔렸으면 한다. 25년 차 직장인으로서 중소규모의 회사가 입는 손해가 소속된 직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때문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마치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나를 채워왔던 것과 완전히 다른 낯선 물질로 채우려 했기 때문이리라. 텅 빈 공간을 글과 그림으로 채우면서 느끼던 짜릿한 충만감은 나를 자극시켰다. 낯선 경험과 이런 자극이야말로 지쳐가고 있던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고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행인 5’는 새로운 길 위에 서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막 첫걸음을 떼려고 하고 있다. 글도 그림도 부끄러운 아마추어이지만 내 글과 그림이 다른 이에게도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마추어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이런 프롤로그를 편집자 양반이 좋아할까 걱정이 된다. 본문을 쓰는 것이 훨씬 쉽다. 나만 그런가. 에잇 뭐 어떻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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