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이탈리아 남부- 5
버려진 채 잊혀지고 싶어 하던 도시가 있었다. 이곳은 수 천 년 전 문자가 없던 시대에 땅에 구멍을 파고 살거나 동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주거지였다. 골짜기의 바위는 비교적 물러서 조악한 석기도구를 가지고도 쉽게 파낼 수 있었다. 땅 속에 구멍을 내고 나뭇가지와 풀로 엮은 지붕을 얹고 사는 것보다, 동굴에서의 생활은 왠지 더 안락하고 안전해 보인다. 문자 이전의 조상들도 생각이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다. 굴의 입구는 좁게 파고 내부에는 넓은 공간을 만들었고, 키우고 있던 귀한 가축과 함께 생활을 했었다.
중세시대에도 이런 생활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에도 ‘신’의 존재가 깃들면서 동굴예배당이 생기고, ‘신’의 숨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종교적인 벽화가 예배당의 동굴벽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예배당의 천장은 누군가의 바닥이 되고, 예배당의 바닥은 또 다른 누군가의 천장이 되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신이 한 곳에 공존하는 기묘한 동굴도시는 이렇게 생겨났다. 동굴이라는 곳이 원래 ‘신’보다는 좀 더 야만과 주술에 가까운 곳이라서 그랬을까. 근대로 넘어와서는 이곳에 살고 있는 목동들이 늑대와 교접을 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무지와 야만이 횡행하는 곳으로 여겨졌다.(기왕에 한다면 늑대보다는 양이 낫지 않을까 하는 변태적인 생각도 해봅니다. 늑대는 좀 무서워요)
1950년대 이곳을 배경으로 쓴 소설에 묘사되어 있던 불결함과 야만의 광경에 이탈리아 사람들과 정부는 고개를 돌렸다. ‘이탈리아의 수치’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면서 모두가 잊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었다. 1950년까지도 동굴에서 살고 있는 농민들은 전기는 물론 상수도, 하수도의 혜택 없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급진적인 사람들은 동굴을 모두 폭파시켜 버리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20여 년에 걸쳐 이곳에 사는 모든 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이곳’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이렇게 버려진 고대도시는 마약과 매춘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동굴은 온갖 더러운 쓰레기들과 주사바늘이 뒹구는 위험한 곳이 되었다. 세상일이 재미가 있는 것은 언제나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잠재적인 가치를 알아본 선구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이곳의 역사성과 희소성에 무한한 가치를 알아보고 지방정부를 설득하여 동굴을 주거지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대와 조소를 무릅쓰고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때를 회상한다.
“이곳에 살기로 결정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반대를 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곳에 정착했죠. 이곳을 정리하고 치우면서 살만한 곳으로 바꾸게 된 거죠. 얼마 전에는 동굴의 하부구조에서 수조를 발견해서 지금은 ‘영혼을 위한 스파(Spa)’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묘하고 생경한 도시는 이제 로컬음식을 파는 동굴 레스토랑, 동굴 카페, 동굴 갤러리, 동굴 공방, 디자이너 샵으로 채워졌다. 심지어 지하수영장을 찾아볼 수도 있다.(다만 운이 좋다면…수영장을 찾아 일부러 골목골목을 찾아 헤매기엔 계단이 너무 많다)
버려졌던 동굴도시, 마테라(Matera)는 이제 (만렙)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들려봐야 하는 개성 넘치는 ‘힙’한 곳이 되었다. 이곳에서 가장 번성하는 사업은 아마도 동굴주거지를 매력적인 장소로 탈바꿈시켜 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탈리아 대부분의 도시에 있는 역사지구는 마음대로 외관을 바꾸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외부의 돌벽은 그대로 두고 내부 인테리어만 바꾸어 사용하기 때문에 수년이 지난 후 다시 와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마테라의 버려진 집들을 모두 살만한 곳으로 바꾸는 작업이 어디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은 아니었을 테니, 아마도 한동안 이곳은 인테리어 업자의 금광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지구 내의 건물만 보존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경우에는 마세리아(Masseria)라는 농장형태의 가족호텔이 많다. 실제 농장의 건물들을 외부는 그대로 보존한 채 내부를 호텔처럼 꾸며 운영하고 있다. 밖에서 보면 마구간처럼 보이지만 내부는 아주 안락한 침실인 경우도 많다.
이렇게 환골탈태한 마테라는 이제 세계곳곳에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마테라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인 사씨(Sassi)로 구분된다. 동굴호텔을 경험하고 싶다면 당연히 사씨로 가야 한다. 다만 차량을 가지고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가급적이면 바퀴 달린 여행가방보다는 배낭을 추천한다. 동굴호텔에서의 하룻밤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공조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습한 느낌으로 불쾌한 기분이 들 수 있다. 이곳을 여행한 거의 모든 여행자가 동굴호텔 체험을 추천하고 있으니 한 번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신시가지의 일반적인 호텔을 선호한다.(가격이 저렴하고 쾌적하다)
사씨는 사쏘 카베오소(Sasso Caveoso)와 사쏘 바리사노(Sasso Barisano)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을까. 계단을 오르고 멋진 카페가 나오면 목을 축이고 눈앞에 펼쳐진 고대 도시를 감상하면 되는 거지. 각각의 사쏘 끝에는 성당이 있어서 골목길에서 방향감각을 잃지 않도록 해주지만, 구글맵이 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래도 사씨 전체를 조망하고 싶다면 전망대로 가야 한다. 지도상으로 확인할 때는 계곡밑의 다리를 건너면 사씨 반대편 전망대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계곡 밑으로 가는 길에 문을 만들어 두고 자물쇠를 채워 두었다. 갈 수 없고 올 수 없다.(계속 막아두는 건지,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막아둔 건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문의 높이가 ‘담치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진 않다. 그래도 멀리 이국땅에서 ‘담치기’를 하면서까지 가야 할 일은 아니다. 차가 있다면 마테라로 들어오기 전 또는 떠나기 전에 들려보면 좋을 것 같다. 차가 없다면? 그래도 꼭 보고 싶다면 전망대로 가는 소형버스를 타면 된다. 전망대에 있는 동안 관광객을 데려오는 노선버스를 보았다. 사실 사씨 계곡을 지나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상당한 체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올라오고 내려가는 길에는 나무도 없고 당연히 그늘도 없다. 걷는 걸 선천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막힌 길 때문에 갈팡질팡 하는 커플들을 여럿 보았다. 안타까운 커플들이다.
목적지를 정해 두고 찾아가는 것보다는 내키는 대로 이곳저곳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돌아보는 것이 아주 즐거웠다. 막다른 골목길을 만난 기억은 없다. 길은 어디론가로 이어져 있고 골목을 도는 순간 만나는 경이로운 풍경에 무어라 할 말을 잃었다. 싸소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지만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역사지구를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체력은 필수이다.
오늘도 당이 떨어진 느낌이다. 이럴 땐 젤라또가 제격이다. 젤라또 가게에는 역시 사람들이 많다. 내 차례를 기다리면서 안을 들여다보니 어설픈 손놀림으로 젤라또를 판매하고 있는 친구가 보인다. 주인처럼 보이는 아주머니는 쳐다보면서 너무 모양이 안 나오거나 덩어리가 떨어질까 위태해 보일 때마다 수정작업을 해주고 있다. 이제 내 차례. 어제에 이어 피스타치오 삐꼴로(작은 사이즈) 한 개. 어쩐지 초보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오늘이 첫날이라며 웃는다. ‘진짜, 모든 일에 처음이 있는 법’이라며 엄지척을 해주었다. 환하게 웃는 그녀와 인자한 눈으로 바라보는 주인아주머니 그리고 느긋하게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얼핏 어제 보았던 기차의 승무원이 지나가는 듯 보였다. 이런 우연이, 다시 보니 (나만) 반가웠다.
젤라또를 먹고 나서도 충전이 되지 않는다. 호텔로 돌아와서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다시 역사지구로 나가보았다. 3월이라 그런지 아직 날씨가 쌀쌀하다. 당연히 모기도 없고 눈도 없다(갑자기 스노타이어 대여비가 생각났다). 조명을 밝힌 마테라는 마치 짙은 화장을 하고 밤무대에 나선 배우같이 낮과 밤이 너무 다르다. 불빛에 홀려(바를레타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여서 내는 소리가 암벽뒤에서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동굴예배당이었던 곳에서 세라믹타일 전시를 하고 있었다. 암벽에 동굴을 만들고 내부를 다듬어 기둥과 아치를 만들고 프레스코화로 성화를 만들어두었던 곳이다. 마테라가 ‘이탈리아의 수치’로 기억되는 기간 동안 이곳은 쓰레기로 가득했던 공간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이렇게 전시회를 여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시되었던 세라믹타일도 근사했지만 공간 자체가 주는 경이로움이 더 컸던 곳이다.
< 과거엔 동굴 예배당- 한때는 쓰레기장-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사용되는 동굴 : Church of Madonna delle Virtu >
마테라에 가면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은 없었다. 마테라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래도 저녁은 동굴식당에서 먹고 싶었다. 어디를 가야 동굴식당을 만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법처럼 동굴 속으로 데려가는 식당들을 너무 쉽게 만날 수 있다.
‘프란체스카’라는 이름의 식당도 그랬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와’라는 탄성과 함께 동굴을 리모델링한 식당내부가 보인다. 이곳에서 서빙하는 커다란 스테이크는 육즙이 가득해서 좋았고 같이 주문한 ‘치커리’는 푹 삶아서 마늘과 매운 고추를 넣고 나물처럼 버무려서 내왔는데, 내 입맛에 맞아서 좋았다. 다른 음식들이 어떠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혹시 이곳을 방문하더라도 ‘복불복’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여행이라는 것이 ‘이외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대하더라도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이야기를 남길 것이므로 실망은 금물이다.
후식으로 티라미수가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건 없지만 ‘프란체스카’라는 후식을 추천하고 싶단다. 식당의 이름을 건 대표적인 후식이라는 생각에 기꺼이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건 이름만 달리 한 티라미수의 한 종류라고 할 만큼 티라미수와 닮았다. 좀 어이가 없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같은 음식에 지방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므로 이해하기로 했다. 역시 이탈리아는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다.
여행자에게는 중요한 일인데, 마테라에서 화장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문을 연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화장실을 좀 써도 되겠냐는 말에 흔쾌히 사용을 허락해 준다. ‘북부의 깍쟁이들과는 다르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화장실만 사용하는 것이 미안해서 커피를 한 잔 달라고 했더니, 브레이크 타임이라 커피를 서빙하지 못한다며 몹시 미안해한다. 기왕 신세를 지는 김에 야외의자에 앉아 쉬면서 전면의 풍경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 화장실이 급해서 들른 카페였는데, 화장실만 사용하고 나왔다. 삼륜차로 사쏘를 돌아볼 수 있나 보다 >
밤이 되면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본 기억이 언제였을까. 이곳이라면 별을 볼 수 있다. 호텔 마당의 돌벤치에 엉덩이를 걸치고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은 오래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