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농장과 오스투니

이번엔 이탈리아 남부- 6

by 지노그림

“조식은 일곱 시입니다”라고 들은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조식 비슷한 걸 주는 곳이 없다. 카운터 데스크는 어젯밤 문이 닫힌 채 그대로이다. 저녁 9시에 현관문을 닫아두니 그 이후의 시간부터는 비밀번호로 출입을 해달라고 했었다. 0층에 있는 식당은 캄캄한 채 그대로 복도에 불도 켜져 있지 않다. 덕분에 어제 묵었던 숙소의 곳곳을 살펴보고 있다.


참고로 유럽에서의 0층은 우리의 1층이다. 좀 더 논리적이지 않은가? 유럽에서는 1에서 0을 건너뛰고 –1로 갈 수는 없다. 예전에 이곳은 종교시설이었나 보다. 조그마한 채플도 있고 벽면은 성화들로 채워져 있다. ‘산타나 Casa per Ferie Sant’Anna’라는 이름의 숙소는 주차장도 있고, 역사지구도 도보로 갈 수 있고 게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좋긴 하지만, 기타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목적에 맞는다면(잠만 자겠다) 충분히 추천할 만하지만, 기타 호텔서비스를 기대하시는 분은 매우 실망할 것이다.


다음 숙박지인 알베로벨로로 바로 가기 전에 여행의 시발점이 되었던 곳을 가야 한다. 삼천년된 올리브나무가 있는 농장이다. 가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예약을 해두지도 않았고, 게다가 일요일이라서 그냥 갔다가 못 보게 되면 담벼락 너머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일요일 오전 구글의 주소를 따라 찾아가 보니 농장입구의 게이트가 열려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방문했다가 거절당하더라도 가볼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들어갔더니 이외로 사람들이 모여있다. 일요일은 보통 예약을 받지 않지만 특별한 손님들이라서(분위기를 보니 농장주인의 지인들처럼 보였다. 연배도 비슷하고 뭔가 친밀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딱 한 팀 예약을 받아 문을 열어두었는데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든 셈이다. 한국에서부터 왔다고 하니 ‘어쩌겠니. 그럼 받아주어야지’하듯이 아들을 불러 농장투어를 해주라고 한다. 도미니코는 아주 잘생긴 이탈리아 청년이다. 일요일 오전의 휴식시간을 망친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도미니코는 친절하게 농장구경을 시켜주었다.


< 농장 입구 >


이곳을 방문하려고 풀리아지방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가호로 이곳까지 왔고 일요일 오전(아무도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농장투어를 하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운명이라는 거창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행운이라는 정도로는 충분할 듯하다. 어떻게 삼천 년이라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주변 정황으로 이 나무는 삼천 년이 되었다고 인정을 받았고 이제 이 나무는 이탈리아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번호를 부여받았다고 한다. 삼천 년을 살면서 이 자리를 지키고 주변의 변화를 모두 지켜보았는데 이름 대신 번호를 부여받았다니 어쩐지 비인간적이다.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데 어찌 될지 결과를 알려달라 부탁해 두었다.



농장의 유물은 잔인하다. 농노들이 올리브유를 도둑질하지 못하도록 수확철이 되면 지하에 가두어둔 채 일을 시켰다고 한다. 지하공간에서 기름을 짤 수 있도록 설치된 방아, 그리고 방아를 돌릴 나귀와 함께 올리브유를 짜던 농노들의 삶이 어땠을지 상상을 해본다. 족히 3미터는 될 것 같은 높이에 설치된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서 수확된 올리브가 저장고로 투입되면, 지하의 농노들은 나귀와 함께 돌바퀴를 돌려서 올리브기름을 짜고 여과를 하고 통에 담는 일을 했다.



200여 년 전 도미니코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농장을 인수하면서 농부들은 이제 더 이상 지하에서 노예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상의 현대적인 시설(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나귀와 개량된 돌바퀴이다)에서 좀 더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도 조그마한 채플이 있다. 일요일에 근처의 오스투니로 미사를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신부님이 이곳에 오셨다고 한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올리브유의 풍미는 특별하다. 아니 이 지방에서 나오는 올리브유가 모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린올리브와 블랙올리브의 비율에 따라 다른 풍미를 가진 올리브유가 만들어진다. 신선한 그린올리브의 함량이 높을수록 목을 넘길 때 마치 겨자가 목을 톡 쏘는 듯한 맛과 그 뒤에 따라오는 독특한 풀향과 흙향이 특이하다. 너무 강한 탓에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나는 톡 쏘는 맛이 강할수록 좋았던 거 같다. 이곳에서는 50:50과 25:75로 비율로 만들고 있는 최상급 올리브뿐만 아니라, 튀김이나 볶음요리에 쓸 저렴한 올리브유도 만들고 있다.


올리브가 유명한 곳이니 당연히 풀리아에는 많은 올리브농장들이 있는데, 민박을 겸하고 있는 곳이 많다. 마세리아(Masseria)라고 부르는데, 토스카나 지방의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에 비견되는 곳이다. 토스카나에서는 주로 와인농장이지만 이곳에서는 올리브농장이 주인공이다. 내가 들렸던 브란카디 농장도 정식이름은 Masseria Brancati이다. 예약을 하면 이곳에서 숙박을 할 수도 있다. 도미니코도 아버지의 농장을 이어받게 될 것이고, 로마시대부터 전해지던 방식대로 올리브나무를 돌보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자리를 지키는 누군가가 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어쩐지 가슴이 따뜻해진다.



농가를 개조해서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곳은 풍족한 곳이다. 누가 이탈리아 남부가 못 사는 동네라고 했는지 모르지만. 이곳 사람들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풍족한 삶이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이지 않은가.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더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절대 풍족한 삶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굶어 죽은 ‘강시’가 끝없이 먹을 것을 탐하듯이 ‘좀 더 많이’란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물질적인 만족을 찾아 헤매는 ‘좀비’에 불과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백인이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원주민을 만났다. 놀고 있는 원주민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편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지 설명을 한다. 한참 듣고 있던 원주민이 ‘지금 이미 당신이 말한 편한 삶을 살고 있는데요’라면서 다시 유유자적한 삶으로 돌아간다.

오래 산 올리브나무들은 겉에서 보이는 것만큼 뿌리가 깊을 것이다. 한참 자고 있는데 옆사람(주로 아내)이 자기 다리를 내 다리 위에 스윽 올려놓으면, 처음에는 참아주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참기 어려워진다. 올리브나무도 그럴 것이다. 내 뿌리가 다른 나무의 뿌리와 엉키는 것을 막아주려고 나무 간의 거리를 많이 띄어 두었다. 동서남북으로 10미터 정도의 간격은 벌여 두어야 뿌리가 마음껏 자라고 나무는 천수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봄의 풀꽃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 나무들을 대를 이어 돌보는 도미니코의 가족들이 있다. 이들은 나무를 돌보고. 나무는 삼천 년 동안 아낌없이 열매를 주는 것으로 보답을 하고 있다. 나무는 사시사철 특유의 잿빛이 섞인 푸른색을 띠고 있다. 삼천 년을 살아온 나무에 손을 대어 볼까 하다가 혹시 외부에서 온 이방인의 손길에 나쁜 기운이 전해지면 어쩌나 싶어 주춤한다. 도미니코를 쳐다보니 웃는 얼굴로 ‘노 쁘로블렘’이라며 한가득 안아주라고 한다. 어쩐지 안아 주는 것은 너무 오버인 것 같아 손바닥으로만 슬쩍 만져주었다. 내가 이렇게 소심하다.


< 삼천 년을 살아온 올리브나무 >


대문옆에 있는 마구간에서 아까부터 말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로마시대에는 어떻게 해충으로부터 나무를 돌보았을까. 나무사이의 벌어진 공간으로 당나귀나 말을 달리게 하여 흙먼지를 일으킨다. 흙먼지는 해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한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말을 쳐다보니 마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혼자 웃음이 터져 나오고 이런 나를 보고 도미니코도 따라 웃는다. 무슨 상상을 했는지 알려주니 손사래를 치면서 그냥 재미로 키우고 있는 말이란다. 농장에서 가장 편하게 지내는 녀석이란다.

< 오스투니의 골목길 >


다음은 화이트시티라고 알려진 오스투니이다. 농장에서 5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이 이곳도 언덕 위에 만들어져 있다. 주변의 침략자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에는 높은 지대가 유리했을 것이다. 게다가 로마시대 이후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반도는 이슬람 해적들의 습격이 빈번했다. 해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도시들은 늘 해적의 위험에 대비해야 했을 것이다. 오스투니도 이런저런 이유로 주변보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를 잡게 되지 않았을까.


흰색으로 깨끗하게 칠을 한 오스투니는 흡사 그리스의 섬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의 섬에서는 주위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이겠지만, 이곳에서는 올리브 나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게다가 맑은 날에는 바다도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해적이 나타나면 대비할 시간을 어느 정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평화로운 시대. 지중해의 강한 햇살을 피하려고 하얗게 도색한 건물들 사이의 골목길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작은 카페와 식당들. 로마와 같은 대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아직은 비수기라서 그럴까.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대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하다.



이곳에서는 점심식사도 느리다. 북부의 도시들은 12시면 식당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곳은 어쩐지 문을 열어 놓았지만 손님이 들어오면 손사래를 치며 아직이란다. 아무리 빨라도 12시 반은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이 1시 내지 1시 반이 되어야 자리로 안내받을 수 있다. 아침을 생략한 채로 돌아다녀 배가 고프다. ‘삐끼’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 팔짱을 끼고 우리를 쳐다본다. 이상한 ‘삐끼’인 것이 쳐다보기만 하고 먼저 말을 걸진 않는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식사가 되느냐’고 물어보니 된다면서 따라 오란다. 2층의 식당으로 데리고 올라가니 주방장 눈이 휘둥그레진다.


‘야, 준비도 안됐는데 벌써 손님을 데려오면 어쩌란 거야’

‘아 몰라. 그건 네 사정이고 나는 손님만 데려오면 되는 거 아냐. 빨랑 시작하면 되겠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이런 분위기이다.

식당주인은 첫 손님이라서 그런지 신경을 쓰는 눈치이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Everything is OK?’를 묻는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꾸 묻고 있으니 나에게 못 먹을 음식을 주고 괜찮은지 확인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냥 남부사람들의 방식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파스타도 식사와 함께 먹는 빵도 맛이 있다. 빵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해야겠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주는 빵은 식전빵이 아니다. 이곳에는 식전빵이라는 개념이 없다. 파스타가 짭짤하기도 하고 남은 파스타 소스에 빵을 찍어 먹기도 하므로, 식중빵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을 먹을 때가 되어야 빵바구니를 치운다. 같이 나오는 빵은 당연히 식사비에 포함되어 있다. 걱정 말고 마음껏 먹어도 된다. 식사 후 계산서를 받아보면 Coperto라는 항목이 있을 것이다. 장소에 따라 3유로, 5유로 등 다양하다. 자릿세라고 보면 될 듯하다.


점심식사 후에는 성벽을 따라 걸어본다. 무거운 점심을 소화시키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성벽 끝에서 저 멀리 아드리아 해안을 볼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성벽 끝에서 해안까지 보이는 것이라곤 모두 올리브 나무뿐이다.

성벽을 둘러보다 보면 흰색으로 칠이 안 된 곳이 있다. 칠을 해야 할 주인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AD 996 Normans built medieval town around the summit of 950 feet high hill.’


기록을 보면 996년 이곳을 점령한 노르만족이 300미터 높이의 언덕 위에 도시를 건설했다 ‘고 되어 있다. 주변의 평야보다 높은 이곳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을 것이다. 내려다보면서 농노들을 감시할 수 있고,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기 때문이다. 싸움꾼으로 유명한 노르만족이 이걸 몰랐을 리 없다.


도시를 흰색으로 칠하게 된 것은 아주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주변에 석회석광산이 있어서 하얀 빛깔이 나는 석회를 아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석회로 칠을 한 벽들은 도시에 쏟아지는 햇볕을 어느 정도 반사시킬 수 있었고, 중세시대를 휩쓸던 무서운 전염병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예방효과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구제역이 돌면 도로에 생석회를 뿌리고 있다.

오스투니는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짧은 시간밖에 낼 수 없어 아쉬웠다. 많은 골목길 중 일부만 돌아보았을 뿐인데도 다정한 곳이라는 느낌이다. 만난 사람이라곤 비록 식당사람들 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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