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로벨로- 스머프는 없더군요

이번엔 이탈리아 남부- 7

by 지노그림

마테라에서의 기괴한 풍경을 보면서 받은 감동(?)을 뒤로한 채 이번엔 알베로벨로를 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두 도시는 서로 극단에 있는 도시 같기도 하다. 마테라가 한동안 버려진 도시였다면, 알베로벨로는 그 고깔모자 같은 특이한 지붕으로 인해 ‘스머프마을’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귀여움을 받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스머프마을을 만들려고 작정을 했을까.


이곳의 고깔지붕집을 부르는 말이 있다. 한 채일 때는 트룰로Trullo, 여러 채일 때는 Trulli, 그냥 단수형과 복수형에 따라 다르게 부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알베로는 이탈리아말로 나무라는 뜻인데, 벨로는 아름답다는 말인데 ‘아름다운 나무’라고 해석이 되려나. 이러면 딱 좋을 뻔했는데, 실제는 무기를 만드는 숲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꼭 정답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오답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고깔지붕을 만들게 된 이유도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다. 중세시대는 암흑의 시대였다. 건축기술이 발전하여 호화로운 성당이 곳곳에 지어지고 있었지만 농노들의 삶은 비참했다. 빛과 구원을 상징하는 '신'을 찬미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삶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농노들에게는 가혹한 세금의 의무가 부가되었다. 알베로벨로의 농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붕이 있는 집에 살고 있다면 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누군가 꾀를 내어서 벽만 세워둔 채, 지붕을 돌로 대충 쌓아두었다가 세금징수원이 오면 지붕을 걷어내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집이 트룰로라고 한다.


트룰로의 지붕을 살펴보면 말처럼 쉽게 올리고 내릴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모르지. 옛날 지붕은 지금처럼 튼튼하지 않았을지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혹한 세금으로 힘든 세월을 견뎠을 많은 농노들을 상상하게 한다.


트롤로는 알베로벨로에 가야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알베로벨로로 가는 동안 이미 트룰로들이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아담한 돌집은 농부들의 일반적인 생활공간이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되어 버려진 트룰로가 있는가 하면,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트룰로도 보인다. 최근에 지어진 것은 우리의 농막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알베로벨로를 가는 길에 꽤 많은 트룰로들을 보고 나니, 갑자기 알베로벨로가 조금 시시해졌다.


아무리 시시해졌다고 해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조그마한 마을이라 주차장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마을외곽에 있는 무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기로 했다. 외곽이라고 해봐야 워낙 작은 동네라서 숙소까지 바로 지척이다. 예약해 둔 주소대로 찾아간 곳은 숙소가 아니고 사무실이다. 주인장은 로마에서 살다가 대도시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여자친구와 이곳에 정착해서 숙박업을 한다고 했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한국이나 이탈리아에서나 모두 소모적인가 보다. 가방을 돌돌거리며 골목을 지나가니 아담한 트룰로 독채를 빌려준다.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침실과 부엌에 이층엔 별도의 공간까지 갖추고 있는 완벽한 숙소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도 살지 않는 트룰로도 몇 가구 보인다. 이곳의 주인장도 아마 이런 집을 사서 내부를 단장해서 호텔처럼 운영하고 있는가 보다. 가방은 대충 던져두고 침대에 뒹굴면서 조금 게으름을 피워본다. 그래도 마을 구경을 가야 한다. 오는 길에 많이 보았고 나만의 트룰로가 있지만, 이건 그래도 트툴리가 아니므로.

마을도 역시 지척이다. 성당을 지나자마자 마을이 눈앞에 들어온다. 오오. 달랑 한 채만 있을 때 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다. 로또라도 당첨되면 이곳에 버려진 트룰로 한 채를 사서 깔끔하게 리모델링을 하고 일 년에 딱 한 달을 이곳에서 사는 상상을 해 봤다. 나머지 11개월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비용으로 트룰로 주인장에게 위탁경영을 맡기는 거지. ㅎㅎㅎ


작은 골목들로 이어져 있는 북촌마을 같은 분위기이다. 마을 앞의 광장과 광장너머 몇 갈래 골목으로 갈라진 마을을 돌아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아 보인다. 반드시 봐야 할 역사적 장소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발길 닿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Belvedere(전망대)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 가니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아주 잘 꾸며진 놀이동산 같기도 하고, 보존이 잘 된 오래된 마을 같기도 하고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다 보니 갑자기 급피곤 해진다.



숙소에 가서 잠깐 누웠다. 봄날씨가 변덕스러워서인지 따뜻하다가도 찬바람이 ‘휘익‘ 불면 몸이 움츠러든다. 아마도 이런 날씨 때문에 몸이 적응하느라 더 힘이 들었나 보다. 아침부터 올리브농장으로 오스투니로 너무 많이 돌아다닌 것도 한 몫했겠지. 이불을 폭 덮고 잠깐이지만 잠을 청해 본다.


알람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알베로벨로의 밤풍경은 어떨까. 바를레타나 마테라처럼 할로겐 등으로 오렌지빛으로 물들었을까. 아, 이곳은 할로겐 대신 백색등이다. 흰색벽에 백색등이어서였을까. 창백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낮에 봐두었던 식당으로 가본다. 트룰로의 주인장이 추천했던 곳이기도 하다. 카사노바라는 식당인데 지하로 들어가니 마테라의 동굴식당처럼 아주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분명 지상에서는 조그마한 입구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은 지상과 지하의 주인이 다를 수도 있나 보다.


저녁은 너무 과하지 않도록 치커리 삶은 야채와 리소토 알 마레를 주문했다. '마레'는 바다라는 뜻이다. 예상대로 껍질을 벗긴 갑각류가 들어있는 쌀죽이 나왔다. 딱 기대했던 그 맛이라서 다행이다. 그래도 이탈리아인데 와인은 마셔야지. 한 병 먹기에는 부담스러워서 하우스와인으로 딱 한잔만 주문한다. 풀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사족>

정말로 돌아와서 로또를 한 장 샀다. 물론 ‘꽝’이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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