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목적지 – 폴리냐노 아 마레

이번엔 이탈리아 남부- 8

by 지노그림

알베로벨로에서의 아침. 이제 시차에 적응할 만한 법도 한데, 오늘도 변함없이 새벽이 되니 눈이 떠진다. 바를레타에 다시 돌아가서 차량을 반납할 시간이 충분해서 좀 더 게으름을 피울까 하다가 그냥 벌떡 일어났다. 누가 ‘폴리냐노 아 마레’라는 작은 동네가 ‘아주 이쁘다 ‘고 한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였다.


지도를 보니 알베로벨로에서 지척이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30여분 달리니 마을 외곽의 주차장이 보인다. 해안가 바로 근처라서 내리자마자 시원한 바다풍경이 들어온다. 절벽 위에 넓은 광장을 만들어 두었는데, 어떤 용도의 광장인지는 모르겠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절벽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데 아직은 빈손이시다. 절벽 끝에서 보는 바다가 멋지긴 한데, 바다가 다 그렇지 뭐.


절벽 끝에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니, 길은 절벽 끝에 있는 집들로 인해 막혀 버리고 골목으로 이어진다. 아니 이런 멋진 풍경을 혼자 독식하려고 이렇게 절벽 끝에 집을 지었단 말인가. 이런 이기적인 사람들 같으니라구. 라는 생각을 했다가 혹시 마땅한 곳에 집을 지을 수 없던 사람들이 여기 벼랑 끝까지 밀려 나온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본 절벽 위의 집들은 왠지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벼랑 끝에 서 있다’.



집들로 인해 절벽 끝 산책길은 막혔지만 어떤 골목의 끝은 바다와 닿아 있었다. 이곳에서도 낚시를 하는 분이 보인다. 아침거리를 낚으러 나온 건지 심심해서 재미로 낚시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동양에서 이방인을 보면서 싱긋이 웃어준다. 나도 덩달아 웃으면서 아침 인사를 건넨다.


“ 부온 조르노! 뭐 좀 잡으셨나요? “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휘젓는다. 헛손질만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폴리냐노 아 마레의 골목길은 아기자기하다. 마테라와 오스투니의 골목길이 계단과 경사로 불친절하게 느껴졌다면 이곳에서는 반대의 기분이 들 것이다. 골목의 끝에 자그마한 계단으로 올라가는 집들과 그 골목을 내려다보고 있는 창문까지 모두가 사랑스럽다.

알베로벨로에서의 하룻밤과 기꺼이 바꿀 수 있는 곳이다. 렌터카를 반납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지만 그래도 잠깐 짬을 내서 카푸치노를 한잔 마셔야겠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딱 한 곳 영업을 하고 있다. 카푸치노 한잔을 주문하고 받아 가려고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에 드는 자리에 가 있으면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아아 그렇지. 이곳은 남부였지.

햇볕이 따뜻하게 자리를 데워주고 있는 노천카페 자리에 앉아 느긋한 기분을 내어 본다. 이탈리아 카푸치노는 역시 진리이다. 너무 크지 않은 잔에 진하게 내린 커피와 고소한 크림 위에 케인슈가(황설탕가루)을 슬쩍 뿌려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다. 커피에 웬 설탕이냐고 반문하셔도 좋다. 속는 셈 치고 카푸치노의 거품 위에 슈거케인을 흩뿌려 놓고 드셔 보시라. 라 돌체 비타. 이것이야 말로 ‘달콤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한잔의 커피로 이곳에서의 아쉬움을 달래고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폴리냐노 아 마레에는 아주 핫한 식당이 있다. 절벽 속에 생긴 바위굴속에 식당을 만들어 로맨틱한 분위기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아마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지. 왠지 이곳 남부의 정서와는 걸맞지 않는 것 같다. 뭐라고 설명하긴 어려운데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이곳을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절벽 안 바위굴 식당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지 사람들이 애용할 수 없거나 가지 않는 곳이라면 무리해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 다시 바를레타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바를레타까지는 거의 일직선으로 만들어진 해안도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바를레타 도착할 때 즈음엔 구글의 힘을 빌려야 한다. 공사 중인 지하도 때문에 렌터카 사무실을 찾아가기가 만만치 않다.


오늘도 역시 렌터카 사무실은 한가하다. 마리엘라가 예의 그 환한 미소로 맞아준다. 여행은 어땠냐고, 새로운 책에 대한 영감은 얻었는지, 음식은 맛이 있었는지… 여보세요. 먼저 차량이 성한 채로 돌아왔는지부터 체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물론 마음의 소리이다). 마리엘라의 질문에 이런저런 대답을 하며 또 수다를 떨고 있다.


(성질 급한 내가 참지 못하고) “차는? 안 봐도 돼?”

“무슨 소리야? 너 풀커버 보험 들었잖어? 기름은 가득 채워 왔지? “

“응, 바로 요 앞에 있는 주유소에서 넣었지.”

“그럼 됐어. 이제 바로 로마로 돌아가나? “

“아직 기차 시간이 남아서 바를레타에서 점심을 먹고 가야 할 것 같어. 뭐 추천해 주고 싶은 식당이 있니? 직접 데려가주면 더 좋고. 점심 같이 먹을래?”


그러고 싶지만 사무실을 지켜야 한단다. 대신 두 군데 식당을 알려주었다. 역 근처에 있는 식당은 아는 곳이 없냐고 했더니 “역 근처엔 식당이 없어.” 엥, 다시 두오모 근처로 가야 한다. 그놈의 ‘지하도’ 공사만 없다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택시를 불러야 한다. 마리엘라는 택시를 불러주고, 같이 기다려주면서 여전히 수다를 떨고 있다. 택시기사가 왔는데 ‘어, 며칠 전 나를 이곳에 데려다준 기사양반이네’. 나도 웃고, 기사양반도 웃고, 마리엘라도 웃는다.


“이 친구. 두오모 앞에 데려다주세요”라고 부탁의 말도 잊지 않는다.

“안녕, 마리엘라“


두 군데 식당 중 어느 곳에서도 점심을 먹지 못했다. 남부의 점심은 1:30이 되어야 시작이다. 오스투니에서도 바를레타에서도 시간이 되어야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바를레타에서의 첫날, 미켈레가 소개해 준 식당에서의 이상한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점심은 먹고 기차를 타야 했기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종업원이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식당이 있어 “지금 점심을 먹을 수 있냐?”라고 묻자, 시계를 보더니 “오케이”란다. 1시, 드디어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내가 식당으로 들어오자 ‘헉, 문을 잠근다’. 내가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뽀르케(왜)?”하고 묻자, 역시 시계를 가리키며 아직 오픈시간 전이라서 누가 들어올까 봐 그런단다. 네가 외국인이라서 특별히 받아주었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진짜로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말을 그렇게 해주니 고마운 마음에 이곳 바를레타가 더욱 마음에 든다.


맛은? 으음. 바쁘지 않다면 조금 기다렸다가 1시 30분에 오픈하는 식당에 가는 것이 좋겠다. 남부의 평범했던 음식 중 가장 평범한 맛이라고 해두자. 못 먹을 맛은 아니지만,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좀 ‘배은망덕’ 해 보인다)


이렇게 풀리아의 일정을 끝내고 로마로, 인천으로 귀국길 밤비행기에서 저녁을 먹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웅성웅성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인천공항 도착 두 시간 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나도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잠을 잘 수 있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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