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온 그녀들

토스카나 도보여행 -2

by 지노그림

부온콘벤토 - 산 퀴리코 도르차 20km 구간


토스카나 도보여행의 시작점으로 정한 부온콘벤토로 가는 길이다. 전날 밤 비행기로 인천을 출발하여 암스테르담 공항을 경유한 후, 피렌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오전 10시경. 트램을 이용하면 피렌체 중앙역인 산타마리아노벨라까지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시에나 구시가지를 한번 둘러본 후, 부온콘벤토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기로 정했다. 시에나 구시가지를 가려면 당연히 기차보다는 버스가 좋다. 기차역은 시에나 역사지구와 꽤 떨어져 있지만, 버스는 바로 역사지구 앞에 내려주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은 피렌체 중앙역 바로 앞에 있어서 트램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만 건너가면 바로이다.

버스터미널에 오기전에 들른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오늘 오후 버스파업이 예정되어 있다며, 버스보다는 기차를 추천한다. 지금 시에나로 떠났다가 오늘 다시 돌아오지 않을거라 했더니, 그렇다면 괜찮을 것 같단다. 이탈리아에서의 파업은 그냥 생활과도 같다. 파업이라고 하면 그냥 어깨 으쓱 한번 하고는 그런가보다 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본다. 파업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노동자들을 색안경쓰고 바라보지 않는다. 파업의 주인공이 내일은 ‘내가 될 수 있기’때문이다. 아탈리아는 아직 연대(Solidarity)정신이 살아 있는 것 같다.


버스티켓은 반드시 기계에 넣고 Valid를 시켜야 무단승차가 되지 않는다. 버스티켓이 기계보다 커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찌 하나 지켜보았더니, 티켓을 긴 방향으로 반으로 접어 기계에 넣고 Valid를 시킨다. 피식 웃음이 난다. 역시 이탈리아에서는 기계의 구멍과 티켓의 크기가 달라도 문제가 되는 법이 없다.


꾸물꾸물하던 날씨는 기어코 비를 뿌린다. 다행스럽게도 차 안에 있어서 비가 오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내일부터 걸어야 할 토스카나의 언덕길이 걱정이다. 버스는 시에나 역사지구 바로 앞에서 승객들을 내려준다. 아직도 비가 오고 있어서 눈앞에 보이는 핏쩨리아로 뛰어 들어가서 점심을 핏자로 해결한다. 피칸테 살라미를 토핑으로 올린 디아블로가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핏자를 먹고 있는 동안 비가 그쳤다. 두오모와 캄포광장과 골목길을 하릴없이 걷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시 먹구름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다. 내일이면 어차피 들판에서 비를 맞게 되겠지만 오늘만큼은 비를 맞고 싶지 않아서 부온콘벤토로 가는 버스정거장이

있는 포르타 오빌레 porta ovile로 서둘러 간다. 이곳 현지사람들은 앱을 통해서 버스티켓을 구매하지만, 여행객에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앱이다. 나는 그냥 현금 내고 타는 것이 좋다.


<시에나 풍경>


버스정류장의 자그마한 지붕밑에서 이제 막 다시 흩뿌리기 시작한 비를 피하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시에나에서 부온콘벤토는 버스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예약해 두었던 호텔은 공교롭게도 비아프란치제나 순례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호텔이었다. 이곳에서 순례자여권(크레덴셜 credential)에 도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체크인하고 있는 동안에도 진흙으로 범벅이 된 신발과 우의를 입은 순례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이 정도 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할머니 두 분이 내 배낭과 신발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너무 깨끗했기 때문이겠지. “방금 이곳에 버스로 도착했고, 주말 이틀 동안 토스카나 도보여행을 할 거예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할머니 두 분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심한 악센트의 영어로 말씀을 시작하신다. 두 분의 할머니 중 그나마 한 분은 그럭저럭 알아듣겠는데 다른 한 분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호주에서 오셨다고 한다.

<부온콘벤토>


호텔방은 굉장히 현대식이고 깨끗하다. 이곳이라면 침대버그 걱정 없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 구경을 하고 스케치를 한 장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역사지구는 길이가 2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보존상태는 어떤 유명한 도시보다도 훌륭하다. 옆집의 포크와 나이프개수까지 알고 지낼 것 같은 작은 마을이니, 감히 누가 마을을 더럽힐 수 있을까.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핏쩨리아가 입구를 예쁘게 꾸며놓았다. ‘입구를 꾸미는데 이 정도 노력을 기울였다면, 음식에도 성의를 기울였겠지’하는 생각에 이곳을 저녁식사 장소를 점찍어 두었다. 리스토란테는 7시 30분 혹은 8시가 되어야 영업을 시작하지만, 핏쩨리아는 좀 더 유연하다. 이탈리아 기준으로 비교적 이른 저녁을 먹는다. 어디서나 먹어도 무난한 카프레제(토마토와 모짜렐라)와 리조또 프루티 알 마레(해산물 리조또)가 첫날 저녁식사로는 무난하다. 하우스와인도 반 주전자(250ml) 시켜서 마신다. 식사는 기대했던 바로 그 맛이고 하우스와인도 그 정도면 가성비 갑이다.

다음날 호텔의 식당은 오픈시작 전부터 순례자들이 가득하다.(그래봐야 10명 남짓이지만) 식당문을 채 열기 전부터 이렇게 서성거리는 것은 흔한 광경은 아니다. 일찍 먹고 일찍 출발하려는 생각이겠지. 아침메뉴는 훌륭하다. 프로슈토, 모르타델라, 살라미와 같은 육류, 삶은 계란, 빵과 토스트, 시리얼, 각종 과일주스 등 순례자들이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길을 떠날 수 있도록 호텔에서 신경을 제법 쓴 메뉴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아침을 먹고 도보를 시작하니 것이라서 어제 봤던 할머니들을 또 봤다.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먼저 간다는 눈인사를 하고 길을 나선다. 어제저녁식사를 했던 핏쩨리아 앞의 광장은 주말시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시장구경은 언제나 즐거운지라 도보시작은 조금 뒤로 미루어두었다.

할머니들보다 먼저 시작했지만 시장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그 사이 할머니들과 순례자들이 모두 나보다 앞서 걷기 시작했나 보다. 1시간 정도를 걷고 난 후에야 할머니들이 시야에 잡혔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 앞에서 두 분이 말씀을 나누고 계시다가 나를 보더니 왜 뒤에 오느냐고 물으신다. 당연히 당신들보다 앞에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신 거겠지. 시장구경도 좀 하고 오다가 늦어졌다 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폐가를 보면서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찌 되었을까를 상상하고 계셨다고 한다. 집에도 생명이 있어서 돌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이렇게 허물어지고 폐허가 된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하신다.


“젊은이(?), 이런 집 하나 사서 다시 살려내서 이곳에서 살아보는 것이 어때?“


손사래를 치면서 그건 어렵겠다고 하시니, 자기들은 그런 것도 해보고 싶은데 아마도 집을 다 고치지 못하고 떠날 것 같아서라며 말끝을 흐리신다.


할머니들은 이제 나를 지나쳐가지도 않으시고 그렇다고 뒤에 쳐져서 오시지도 않는다. 내가 풍경을 감상하느라 혹은 사진을 찍느라 서있으면 나를 지나쳐 가시고, 할머니들이 언덕길의 끝에서 잠시 쉬고 계시면 내가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나란히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간다.

호주에 남아 있는 남편이야기를 할때는 그에 대한 믿음이 묻어 나오는 이야기를 하신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딸을 이야기할 때는 그리움이 묻어 나온다. 남편은 티토치하의 유고슬라비아에서 탈출하여 이탈리아를 거쳐 호주로 망명을 한 후, 퍼쓰 근처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를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고 했다. 올해로서 결혼 53년차. 엔지니어였던 남편은 이것저것 만들고 고안하는 일을 아직도 좋아한다고 한다. 금속탐지기로 금을 채취하기도 하는데, 아마추어 금광업자 치고는 실력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이번에 걷기로 한 비아프란치제나 순례여행에 보태 쓰라고 금을 주었다면 깔깔 웃으신다. 남편이 고향으로 돌아 갈 수가 없어서 슬퍼했는데, 지금은 다시 갈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하신다. 팬데믹 이전에 가족여행으로 그곳에 가서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친구와 친척을 만나서 아주 행복했다고 하신다. 지금은 슬로베니아라고 불리는 곳인데 조그만 바닷가 마을이라고 하신다.


“혹시, 피란 아니에요?”

“엥, 자네가 그걸 어찌 아는가?”


슬로베니아에서 유일하게 바다로 연결된 곳이 피란과 이졸라가 있는 이스트라 반도의 한 구석이라서 알고 있기도 하고, 예전에 나도 한번 가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곳이 갔던 이유는 순전히 ‘이름’때문이라고 말씀드렸다.


“이름?” 이해를 못 하시는 눈치이시다.

‘피란’이라는 이름을 지도에서 처음 보았을 때, 한국말과 비슷해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느낌, 누군가를 피해 조용히 숨어있고 싶은 느낌 같은 것을 느꼈다고 말씀드렸다. 실제로 그곳을 방문했을 때 내가 상상하고 있던 한국말의 ‘피란’ 이미지와 너무 비슷해서 놀랐다고 말씀드렸다. 게다가 ‘피란’이라는 뜻이 한국말로 번역하면 ‘Refuge’라고 말씀드리니, “정말?”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하신다. 피란에서 탈출하여 호주로 망명한 남편이 떠오르신 거겠지.

수다인지 이야기인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때로는 묵묵히 걷다 보니 어느새 오늘 목적지인 산퀴리코도르차에 도착했다. 마을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이곳은 부온콘벤토보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예쁜 마을이었다. 게다가 오늘 묵기로 한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은 토스카나의 평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할머니들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약속을 하긴 했는데, 어디서 뭘 먹을지는 정하지 못했다.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데, 왓츠앱 메시지가 왔다. 마을 끝자락에 있는 간이식당에 있는데, 이곳에서 저녁을 대충 때우고 숙소로 돌아가려 하신단다.


“엥, 6시도 되지 않았는데 저녁을 먹는다구요?”

원래 호주에 있을 때도 가능한 한 6시 전에 저녁식사 끝내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고 하신다. 깔깔깔…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활습관은 국적을 불문하는구나 싶었다.


“계신 곳 식당이름이나 주소 알려주시면 10분 내로 갈게요”


핏자처럼 생긴 빵, 포카차와 맥주를 나누어 마시고 좀 더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다음에 퍼쓰에 꼭 놀러 오라신다. 태즈마니아 섬이라고 있는데 내가 아주 좋아할 만한 곳이라고 하신다. 크로커다일과 에뮤 고기도 먹게 해주겠단다.(귀국해서 지도를 찾아보니 두 곳의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잘 못 들었을까?)


“그냥, 닭고기 같은거 먹으면 안돼요?”

“아냐, 그건 너무 지루해서 안돼!”


이제 내일은 각자가 정한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지금이 바로 마지막이겠지라는 생각을 하시는 듯, 나를 꼭 안아주시고 두 할머니 나란히 골목길을 걸어가신다.


잠깐 서서 두 분이 골목길을 돌아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도 발길을 돌렸다.

다시 비가 오락가락하기 시작한다.

<산 퀴리코 도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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