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사람의 마음
어쩌다가 매니저란 직책을 갖고 있다 보니,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 날은 직원들을 관찰하게 된다.(감찰 아니고 관찰) 그러다 보면 ‘쌔한 느낌‘이 들게 하는 직원이 보인다. 이럴 땐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면담을 요청한다. 카페에 가서 가볍게 차 한잔 하면서 요즘 근황도 물어보고 앞으로 계획도 물어보면서 슬쩍 ‘간’을 보는 거지.
‘쌔한 느낌’은 별로 틀린 적이 없다. 이런 느낌이 들 때는 이미 전조증상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는 일에 실수가 잦아진다.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할 일을 알아서 찾아가는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일을 시키면 뭔가 탐탁지 않은 얼굴이다. 대답이 흐려진다. 변명이 길고 구차해진다. 기타 등등…
지난달에 이어 또 한 명 발견.(둘 다 MZ세대) 면담을 해보니 회사에 다니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아니 회사를 행복하게 다니는 사람이 있긴 있나. 주변에 회사를 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기억도 없다. 가장 근접한 경우라면,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가족을 부양하고 나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도였다.
행복하지 않으면 그만두어야지. 언제 그만 둘 생각인가?
회사가 싫어진 것은 아니다. 친구들에게 회사이야기를 하면 거기 자리 없냐고 물을 정도로 근무여건이 좋다.(이건 내가 호구란 소리?)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엥,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내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때까지는 계속 다니고 싶단다. 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시작한 ‘잡’이었으니, 그만두고 싶으면 당연히 그만둘 수 있지. 근데 내가 옛날사람이라서 그런가. 이런 대답은 굉장히 신선한 걸. 그래? 그럼 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마음이 떠난 사람한테 이런저런 일을 더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건 나한테는 시간낭비일 뿐일 테니깐.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깔끔하게 잘해야 한다. 만약에 일을 잘 못한다면 ‘감정이 실린’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면접 때 주고받은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일말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대놓고 ‘실수‘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을 돌려서 하지 않았다. 일부러 아주 쎈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이 정도 서로 입장정리는 했고, 그만두고 무얼 할 생각이냐 물었다. 내년 3월까지 돈을 좀 더 모아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싶단다.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지만, 도움 없이 떠날 정도로 돈은 모아두었고, 내가 해고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여유로운 돈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그때까지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
으음. 당돌하군. 이 정도로는 해고사유가 될 수 없으므로 내년 3월까지는 계속 봐야겠다. 하지만 뒷 끝이 많은 나. 내일부터 회사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리라 다짐을 했다. 내 안에 잠자는 악마를 깨웠다.
그건 그렇구, 아이구 부럽다. 나두 외국으로 워킹할러데이 가고 싶다.
밑에 그림은 맥락 없이 그린 토스카나 풍경입니다. 내 안의 악마가 나오는 것을 막는 ‘결계 혹은 진’이라고 해두지요.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은 기회가 닿는 대로 해봐야 후회가 없지 않겠습니까. 딱 한번 주어진 인생인데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아와서…후회정도는 아니지만 좀 아쉽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