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그림 Sep 19. 2023

퇴사하는 사람의 마음

보내는 사람의 마음

어쩌다가 매니저란 직책을 갖고 있다 보니,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 날은 직원들을 관찰하게 된다.(감찰 아니고 관찰) 그러다 보면 ‘쌔한 느낌‘이 들게 하는 직원이 보인다. 이럴 땐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면담을 요청한다. 카페에 가서 가볍게 차 한잔 하면서 요즘 근황도 물어보고 앞으로 계획도 물어보면서 슬쩍 ‘간’을 보는 거지.


‘쌔한 느낌’은 별로 틀린 적이 없다. 이런 느낌이 들 때는 이미 전조증상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는 일에 실수가 잦아진다. 몇 번 주의를 주었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할 일을 알아서 찾아가는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일을 시키면 뭔가 탐탁지 않은 얼굴이다. 대답이 흐려진다. 변명이 길고 구차해진다. 기타 등등…


지난달에 이어 또 한 명 발견.(둘 다 MZ세대)  면담을 해보니 회사에 다니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아니 회사를 행복하게 다니는 사람이 있긴 있나. 주변에 회사를 가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사람을 본 적도 없고 들어 본 기억도 없다. 가장 근접한 경우라면,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가족을 부양하고 나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정도였다.


행복하지 않으면 그만두어야지. 언제 그만 둘 생각인가?


회사가 싫어진 것은 아니다. 친구들에게 회사이야기를 하면 거기 자리 없냐고 물을 정도로 근무여건이 좋다.(이건 내가 호구란 소리?)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엥,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내년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때까지는 계속 다니고 싶단다. 하,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시작한 ‘잡’이었으니, 그만두고 싶으면 당연히 그만둘 수 있지. 근데 내가 옛날사람이라서 그런가. 이런 대답은 굉장히 신선한 걸. 그래? 그럼 나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마음이 떠난 사람한테 이런저런 일을 더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건 나한테는 시간낭비일 뿐일 테니깐.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깔끔하게 잘해야 한다. 만약에 일을 잘 못한다면 ‘감정이 실린’ 잔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면접 때 주고받은 이야기를 돌이켜보면 일말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대놓고 ‘실수‘를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을 돌려서 하지 않았다. 일부러 아주 쎈 직설화법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이 정도 서로 입장정리는 했고, 그만두고 무얼 할 생각이냐 물었다. 내년 3월까지 돈을 좀 더 모아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싶단다. 부모님은 허락하지 않지만, 도움 없이 떠날 정도로 돈은 모아두었고, 내가 해고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여유로운 돈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그때까지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


으음. 당돌하군. 이 정도로는 해고사유가 될 수 없으므로 내년 3월까지는 계속 봐야겠다. 하지만 뒷 끝이 많은 나. 내일부터 회사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리라 다짐을 했다. 내 안에 잠자는 악마를 깨웠다.


그건 그렇구, 아이구 부럽다. 나두 외국으로 워킹할러데이 가고 싶다.


밑에 그림은 맥락 없이 그린 토스카나 풍경입니다. 내 안의 악마가 나오는 것을 막는 ‘결계 혹은 진’이라고 해두지요.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은 기회가 닿는 대로 해봐야 후회가 없지 않겠습니까. 딱 한번 주어진 인생인데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살아와서…후회정도는 아니지만 좀 아쉽다고 해야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풍경수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