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그림 Sep 04. 2020

또 다른 여행의 시작 - 삶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방구석 드로잉 여행 25

  골프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골프를 치지 않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골프가 위안이 된다고 한다. 어떻게 위안이 된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테니까.


  나에게는 운동신경이 없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평생 딱 한번 골을 넣어 봤다. 그나마 그것도 자살골이었다. 그 후로 축구를 하지 않는다. 수년전 친구의 권유로 골프연습을 했던 적이 있다. 열심히 연습을 해서 필드에 나갔는데 좌절만 맛보고 왔다. 골프도 내 인생에서 지워졌다. 아내 따라 수영장에 갔다가는 물만 잔뜩 먹고 왔다. 평생 먹어야 할 소독약이 양이 정해져 있다면 그 때 다 먹은 것 같다.  


  운동을 취미로 하면 참 좋은데 걷고 숨 쉬는 것 말고는 나하고 궁합이 맞는 운동이 없는 것 같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걷기, 등산, 영화보기 등은 마음이 편했다. 아무리 멋진 옷이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불편한 것처럼 폼이 나는 운동을 배우는 것은 나에게 있어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딸아이도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몸을 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안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 내가 속한 회사의 경우 골프 같은 운동을 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는 곳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회사 일에는 운동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었고 새로운 업무를 배우는 일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회사일이라는 것이 몇 년 배우고 나면 일상의 반복이 되는 경향이 있다. 내용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절차와 형식은 그대로 이면서 해가 바뀔 때마다 일의 강도가 조금씩 올라갔던 것 같다. 증가된 일의 강도를 따라잡기 위하여 일중독자가 된 것처럼 일을 해야 했고 어느새 조금씩 나를 무너뜨리고 스트레스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주변사람들에게 쉽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그런 내 자신에 환멸이 들기도 하고 아마도 우울증의 초기증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극한으로 나를 내몰던 일은 마치 깨달음처럼 나에게 속삭였다. “너 아니어도 돼”


  이제 일을 조금 내려놓고 쉬엄쉬엄 하고 있다. 일이 조금 늦어져도 예전처럼 조바심내지 않는다. 예측은 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을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하는 중간에 가능하면 휴식을 끼워 넣으려 하고 있다. 출장지에서 주말을 보내게 되면 일 따위는 훌훌 털어 버리고 여행자가 되어 기꺼이 시간을 낭비하려하고 있다. 이렇게 낭비된 시간은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골목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거나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몸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취미도 찾아냈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근본없는 그림’이지만 주말 한가한 시간이 되면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웠다. 공연히 질투가 난 아내는 칭찬과 타박을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누구에게 크게 해가 되지 않는 취미생활이니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만 토요일 재활용 쓰레기를 깜박하고 버리지 않는 날은 예외이다. 아이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아이가 사춘기로 들어가면서 다시 혼자만의 시간의 되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글도 쓰기 시작했다. 같이 글을 쓰는 작은 모임도 만들어지고 매력적이고 당찬 어린 사부님께 훈계를 듣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것만 재미있는 일인 줄 알았더니 글을 쓰는 것 또한 묘한 중독성이 있다. 아직도 아내는 칭찬과 타박을 동시에 하고 있지만 가끔씩 써놓은 글을 보면서 그림보다는 글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나의 어린 사부님은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도 몇 년을 그려왔던 그림인데 이제 겨우 시작한 글쓰기보다 못하다고 하니 미술로 직업을 삼지 않았던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골프가 그런 것처럼 이제 그림그리기와 글쓰기가 나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그림과 글은 여행처럼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다 준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여행이 끝이 될는지 아니면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내 여행의 한 장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여행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 한강둔치에서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글쓰기의 재미와 고충에 대하여 이야기도 나누고 새로운 여행에 대한 꿈도 꾸었다.


  겨울에 출발한 글쓰기여행이 봄을 지나 이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글과 그림을 통하여 아주 오랜만에 마음의 휴식을 얻은 기분이다.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는 당신에게 혹은 이미 여행을 떠났을 당신에게 나의 글이 자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지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