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 Francigena 프란치지나-로마로 가는 길
한동안 무슨 유행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걷기에 대한 열풍도 있었고 마침 도보 여행을 좋아하는 여행작가 몇 분이 이곳을 다녀와서 책을 내면서 그 인기가 증폭되었던 것 같다.
삼시세끼 스핀오프 버전으로 차승원과 유해진이 이 길을 걷는 순례객을 위한 알베르게를 운영하기도 해서 익숙하기도 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꼼뽀스텔라.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6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길이다.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이 길을 걷는다. 종교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 또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이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냥 걷는 것이 좋아서 이 길을 걷기도 한다.
한때 이 길을 걸어보기를 소망한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고 그냥 세 번째 부류가 되어 보고 싶었나 보다. 원래 내 인생의 대부분 결정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스페인을 간 적이 있긴 하지만 이 길을 맛보기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너무 컸다. 시작을 위한 길을 찾아가는데만 꼬박 하루가 필요하니 출장 중 잠깐 짬을 내서 가기에는 무리였다.
이렇게 유럽에서의 도보여행은 인연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마르코라는 이탈리아 친구가 있다. 가끔 인스타그램에서 생사를 확인하곤 하는데 이번 여름에 매일 도보여행을 하는 사진을 몇 장씩 올린다. #Nevergiveup#Strongday#pilgrim#discoveringitaly#viafrancigena 등 요란스러운 해시태그도 잊지 않는다.
‘다른 건 알겠는데 viafrancigena는 뭐지?’
via는 길이고... 갑자기 그 다음이 궁금해졌다.
990년 시게릭 Sigeric the serious라 불리던 캔터베리 대주교가 바티칸으로 팔리움 Pallium 이라는 성물(?)을 받으러 간 길이라고 한다. 시게릭의 발자취를 따라 영국의 캔터베리를 출발하여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북부와 토스카나를 거쳐 바티칸까지 걷는 2000킬로미터의 도보길이란다.
전체는 불가능하겠지만 토스카나라면 해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이 길을 모두 걸어보고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서 조그마한 책자를 만들었다. 전체 구간을 삼등분으로 크게 나누어 세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한 권으로 모두 합쳐도 될 분량이지만 일단은 작고 얇게 나누었다. 장사 속인지 아니면 휴대성을 높이기 위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유용한 정보로 가득해 보인다.
세 번째 권의 시작은 루카(Lucca)이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마르코가 걸었던 것처럼 루카-산지미냐노-시에나를 일주일 동안 걷는 일정이라면 어찌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해외배송으로 구매한 책이 도착했다. 기대했던 대로 지도와 함께 각 구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깨알처럼 가득하다.(글씨마저도 깨알 같다)
예를 들면 루카에서 시작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두 번째 목적지로 가는 것을 충고하기도 한다. 이 구간의 대부분은 포장도로이고 이탈리아 운전자들의 불친절한 운전태도를 감안하면 건너뛰기가 최선의 선택이라나 뭐라나.
원래 팔랑귀라서 충고대로 첫 구간을 건너뛰게 되면 하루를 벌게 되고 만약 6일의 시간을 내지 못하더라도 산미니아또에서 시작하여 산지미냐노까지 주말을 이용해서 충분히 갈 듯 보인다. 2박 3일간 총 65킬로미터를 걸으면 된다.
산지미냐노는 어떤 곳인가?
https://brunch.co.kr/@jinho8426/26
산지미냐노는 도보여행이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처음 갔을 때는 비가 오는 관계로 성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바로 이런 풍경을 보면서 성곽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상상을 하니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다행스럽게도 6일간의 시간을 만들어 낸다면 시에나의 캄포 광장을 다시 볼 수 있을 테지. 여행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에나와 순례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에나가 다를까.
https://brunch.co.kr/@jinho8426/27
코로나로 갈 수 없는 요즈음 자꾸 상상여행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