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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Sep 26. 2021

이탈리아에도 순례길이 있습니다

Via Francigena 프란치지나-로마로 가는 길

한동안 무슨 유행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세를 탄 적이 있다. 걷기에 대한 열풍도 있었고 마침 도보 여행을 좋아하는 여행작가 몇 분이 이곳을 다녀와서 책을 내면서 그 인기가 증폭되었던 것 같다.

삼시세끼 스핀오프 버전으로 차승원과 유해진이 이 길을 걷는 순례객을 위한 알베르게를 운영하기도 해서 익숙하기도 하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꼼뽀스텔라.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6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길이다.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이 길을 걷는다. 종교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 또는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이 길을 걷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냥 걷는 것이 좋아서 이 길을 걷기도 한다.


한때 이 길을 걸어보기를 소망한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고 그냥 세 번째 부류가 되어 보고 싶었나 보다. 원래 내 인생의 대부분 결정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스페인을 간 적이 있긴 하지만 이 길을 맛보기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너무 컸다. 시작을 위한 길을 찾아가는데만 꼬박 하루가 필요하니 출장 중 잠깐 짬을 내서 가기에는 무리였다.


이렇게 유럽에서의 도보여행은 인연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마르코라는 이탈리아 친구가 있다. 가끔 인스타그램에서 생사를 확인하곤 하는데 이번 여름에 매일 도보여행을 하는 사진을 몇 장씩 올린다. #Nevergiveup#Strongday#pilgrim#discoveringitaly#viafrancigena 등 요란스러운 해시태그도 잊지 않는다.


‘다른 건 알겠는데 viafrancigena는 뭐지?’


via는 길이고... 갑자기 그 다음이 궁금해졌다.


990 시게릭 Sigeric the serious 불리던 캔터베리 대주교가 바티칸으로 팔리움 Pallium 이라는 성물(?) 받으러  길이라고 한다. 시게릭의 발자취를 따라 영국의 캔터베리를 출발하여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북부와 토스카나를 거쳐 바티칸까지 걷는 2000킬로미터의 도보길이란다.

전체는 불가능하겠지만 토스카나라면 해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이 길을 모두 걸어보고 아주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서 조그마한 책자를 만들었다. 전체 구간을 삼등분으로 크게 나누어 세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한 권으로 모두 합쳐도 될 분량이지만 일단은 작고 얇게 나누었다. 장사 속인지 아니면 휴대성을 높이기 위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유용한 정보로 가득해 보인다.


세 번째 권의 시작은 루카(Lucca)이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다. 마르코가 걸었던 것처럼 루카-산지미냐노-시에나를 일주일 동안 걷는 일정이라면 어찌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해외배송으로 구매한 책이 도착했다. 기대했던 대로 지도와 함께 각 구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깨알처럼 가득하다.(글씨마저도 깨알 같다)

예를 들면 루카에서 시작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두 번째 목적지로 가는 것을 충고하기도 한다. 이 구간의 대부분은 포장도로이고 이탈리아 운전자들의 불친절한 운전태도를 감안하면 건너뛰기가 최선의 선택이라나 뭐라나.



원래 팔랑귀라서 충고대로 첫 구간을 건너뛰게 되면 하루를 벌게 되고 만약 6일의 시간을 내지 못하더라도 산미니아또에서 시작하여 산지미냐노까지 주말을 이용해서 충분히 갈 듯 보인다. 2박 3일간 총 65킬로미터를 걸으면 된다.


산지미냐노는 어떤 곳인가?

https://brunch.co.kr/@jinho8426/26


산지미냐노는 도보여행이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처음 갔을 때는 비가 오는 관계로 성 밖으로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바로 이런 풍경을 보면서 성곽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상상을 하니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다행스럽게도 6일간의 시간을 만들어 낸다면 시에나의 캄포 광장을 다시 볼 수 있을 테지. 여행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에나와 순례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에나가 다를까.


https://brunch.co.kr/@jinho8426/27


코로나로 갈 수 없는 요즈음 자꾸 상상여행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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