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의 전성시대 (2020)
계절이 바뀌는 것은 언제나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지나가는 듯하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길고 긴 장마와 태풍으로 어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목포 여행에 대한 계획은 아주 오래전에 세워 두었지만 코로나로 또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미루고 미루다 아주 조심스레 다녀왔다. 목포로 가는 길은 이제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쉽게 갈 수 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목포에서 달꾸메란 멋진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J는 여행 때문에 알게 된 사이이다.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선 가지 못해서 짐짓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J는 원래 목포가 고향이었지만 꽤 오랫동안 외지에 살고 있다가 수년 전 다시 목포로 돌아갔다. 그 호방한 성격으로 인하여 달꾸메 말고도 도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며 폴새 이 곳의 주요인사(?)가 되어부렀다.
이런 형편인지라 공사가 늘 다망하시다. 낮동안은 부지런하게 달꾸메를 정리해 두시고 가끔(?) 밤마실을 나가신다. 도시재생을 위한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만나지만 실상은 재미나게 놀려구 만든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하하하) 달꾸메를 지키고 있는 늙은 개는 주인이 밤마실을 나간 밤, 이런 주인을 그리워하며 오늘도 꺼이꺼이 운다.(진짜로 꺼이꺼이 운다. 직접 오셔서 확인해 보시라)
달꾸메의 2층 거실에서는 커다란 TV에서 넷플릭스를 마음껏 볼 수 있다. 제 나이만큼 오래된 TV를 보다가 이것을 본 딸아이는 신세계를 만난듯하다. 첫날밤 낯선 곳이라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실컷 넷플릭스에 빠져 들었다.
목포에 다녀온다고 하니 거기에 뭐가 있냐고 물어본다.
“글쎄 어느 동네든지 뭐든 있겠지. 그러니까 모 국회의원 하던 분도 거기에 가서 집을 샀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지.”
혼자 가긴 심심해서 딸아이를 꼬드겼다. 목포에 가면 민어라는 엄청나게 큰 생선이 있는데 그게 여름에 그렇게 맛있다고 했더니 미끼를 덥석 물었다. 코로나로 민폐가 될까 걱정되어 마스크에, 손세정제를 챙겨 길을 나섰다. 고속열차를 타고 가니 금방이다. 가고 있는 동안 아이는 열심히 민어에 대해서, 목포에 대해서 벼락공부(?)를 하고 있다.
딸아이의 빵사랑은 목포에서도 끝이 없다. 코롬방 제과점이 아주 유명한 곳이라며 꼭 가보고 싶단다. J의 추천대로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저녁노을을 감상한 후 빵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저녁노을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변의 섬들은 낮 동안에는 감춰두었던 선명한 실루엣을 드러내 그 선명한 자태로 여행객을 유혹하고 있다. 아직 노을빛에 물들지 않은 바다로는 배 두 척이 한가롭게 바다에 궤적을 남기며 지나가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노을은 본 적이 없다며 아내와 딸아이는 말을 아낀다.
노을로 감동받은 촉촉해진 감성에 달콤함(?)을 더하고자 코롬방 제과점으로 두 모녀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런데 코롬방 제과점 앞에는 똑같은 빵을 팔고 있는 CLB Bakery가 있는 것이 아닌가? 서로 원조라고 우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원래 원조싸움은 너무 많이 보아왔고 ‘원조의 원조’라는 말까지 만들어내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흥미롭다. 뒷조사가 필요하다.
코롬방 제과점은 1949년 가게를 지금의 이 자리에서 시작했다. 빵집을 운영하면서 자제분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신 1대 사장님은 나이가 드시면서 조카에게 빵집의 운영을 맡기셨나 보다. 그렇게 오랫동안 빵집을 운영하면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사시던 1대 사장님의 아들이 연어가 회귀하듯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다시 빵집을 운영하시게 된 것이다.
이에 조카는 바로 앞에 CLB Bakery라는 다소 공격적인(코롬방의 이니셜이 아니던가 말이다) 이름을 가진 빵집을 열어 같은 메뉴로 정면 승부를 하고 있다. 다소 싱겁게 끝났을 것 같은 원조에 대한 경쟁은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야 한다. 코롬방 제과점이 70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빵을 팔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제과점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새우바게트는 조카 사장님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형편이니 이 동네 빵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코롬방파와 CLB파로 나뉘어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당사자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가 동화처럼 끝났으면 한다.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매료된 빵을 사랑하는 전국의 빵순이와 빵돌이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코롬방파와 CLB파로 나뉘어 자발적 서포터가 되는 것이다. 이런 빵의 전쟁(?)은 앞으로 100년이 넘도록 어느 한쪽으로 우세해지지 못하여 결론을 내지 못하게 된다. 이제 어느 쪽 빵이 이곳에서 대세로 잡게 될 것인지 분석하고 예측하는 일이 목포에서 중요한 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변수가 있다. 수문당이라는 곳이 있다. 1943년(셋 중 가장 오래되었다!) 개업을 한 이래 한 자리를 지켜온 곳이다. 심지어 바닥에 깔린 대리석은 아직도 그대로 살려두고 사용하고 있다. 개업 당시에는 빵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빵을 만드는 경쟁에서 한 발자국 비껴 나 있다. 스콘과 시폰 케이크만 만들고 있으며 간단하게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 가서 커피만 먹고 온다면 실수를 하는 것이다. 팥 셰이크를 꼭 즐겨보시길 권한다. 목포야말로 퐅죽과 퐅칼국수가 유명한 곳이 아닌가 말이다.
이제 정면 승부를 하는 두 곳의 빵집과 권토중래하려는 한 곳이 있는 형국이다. 동양에서 삼(3)이라는 숫자는 상서로운 숫자이다. 모쪼록 이 세 곳이 고루 성장하여 목포를 갔으니 방문해야 할 곳이 아니라 이 곳을 방문했으니 목포도 봐야겠다고 할 정도가 되기를 희망한다.
돌아오는 날 J와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목포에 와서 무얼 먹고 가냐고 묻길래 그동안 먹은 음식과 식당을 이야기하니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이 남았다며 다시 와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다음번에는 중깐(?)도 먹어보고 자기랑 같이 해남에서 14년째 막걸리를 빚고 있는 명인을 찾아가서 진짜 막걸리도 먹어 봐야 한다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의 눈이 반짝인다.(막걸리 이야기에 왜 눈이 반짝이는지 의아하긴 하다)
목포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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