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계를 아시나요

목포의 발견- 두번째 이야기

by 지노그림

목포에 가면 마인계터로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길이 있다. 1900년대 만인계가 열리던 터가 이 길 어딘가에 있어서 유래된 이름이다. 만인계터로여야 하지만 쉽게 발음할 수 있도록 마인계터로가 되었나 보다.


'만인계는 또 뭐야.'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계’가 많았다. 친목도모와 재테크 수단으로 많이 애용되던 아마도 우리나라에만 존재했을 것 같은 특이한 금융시스템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순기능과 역기능이 존재했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곗돈을 계주가 떼어먹고 도망간 사건이 있었는데, 방귀께나 꾸던 사회지도충의 싸모님들이 연루되어 사회문제가 되곤 했다. 이런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계’는 그 순기능으로 인하여 서민들 사이에 꽤 인기가 많았다.

계주는 계원을 모집해서 1달에 얼마씩 돈을 모으고 정해진 기간 뒤에는 계원 모두 돈을 돌려받는다. 계의 백미는 곗돈을 타는 순번을 정하는 일이다. 정해진 순번에 따라 곗돈을 받게 되는 것인데, 1번이 되면 모아진 돈 중 제일 먼저 곗돈을 받게 되고 말번을 제일 나중에 곗돈을 받는다. 1번이 되면 먼저 돈을 땡길수(?) 있다는 엄청난 특혜가 있다. 만약에 계주가 도망을 간다는 가정을 하면 1번은 이미 돈을 받았으므로 안전, 말번은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늘 불안하다. 이런 형편이니 계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이 시스템이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머니 세대에게 물어보시라)


잠깐 상상을 해보자. 개똥이네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쳐서 당분간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계를 꾸리면서 무슨 수작(?)을 부려서 개똥이네를 1번에 두고 곗돈을 제일 먼저 준다. 어찌 살까 몹시 힘들어하던 개똥이네는 이것으로 한시름 놓고 곗돈을 조금씩 갚아가면서 어찌 되었든 살길을 찾아볼 수 있다.


계라고는 했지만 만인계는 이것과는 좀 다른 듯하다. 만인계를 복원하고 계신 달꾸메(게스트하우스) 제갈 사장님께 물어보니 복권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정 금액을 내고 만인계에 참여한 후 만인계터에 모여 추첨을 해서 당첨 상금을 주는 것이다. 당첨금을 제외한 수익은 초등학교도 만드는데 기부하는 등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북교초등학교 건립비용에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북교 초등학교라니, 다리가 있었나? 목포에는 북교동, 남교동, 죽교동 등 예전에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지명이 남아있다. 달꾸메 사장님 말로는 간척을 해서 육지가 되기 전에 여러 섬들을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간척을 하지 않고 그냥 두었으면 베니스처럼 멋진 풍경으로 남아 있을 뻔했는데 라며 둘이서 몹시 아쉬워했다.


이곳은 바다였다. 충무공께서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신 후 작전상 후퇴(300여 척과 어마어마한 전투를 치른 13척을 끝까지 보전해야 했다) 목포에 진을 세우셨다. 커다란 바위산에 볏짚을 덮어 호시탐탐 복수를 노리던 왜구들에게 넉넉하게 군량미를 확보했다고 속이셨다. 이런 연유로 바위산은 노적봉이라 이름 붙여졌고 지금은 예술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금은 간척으로 메워져 땅이 되었지만 오래전에는 바닷길이었던 것이다.


- 구도심에는 이런 풍경들이 그득하다 -



복원된 만인계는 이제 마을기업으로 운영되면서 수익사업과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시민과 함께 하면서 목포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아마도 모여서 먹고 마시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일 것이다. 사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만인계의 계주 및 계원들이 어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치고 재미없는 사람들은 없다. 목포에 가면 슬쩍 만인살롱에 들려서 차도 얻어 마시고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얼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나 염탐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목포 구도심을 살리려는 만인계원들이 있다면 여기에 또 다른 요상한 그룹이 있다. 대도시의 각박함과 경쟁에 지친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목포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이 그룹도 구도심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카페를 열고,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식당을 열어 조그마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만인계원들과는 약간 다른 결을 가지고 목포를 살리고 있는 셈이다. 이 곳의 목표도 거창하기 이를 데 없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표라니, 이거야말로 자유인이라면 추구해야 할 진정한 평화로운 삶이 아니던가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지친 젊은 영혼들이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누군가는 장소도 제공해야 하고, 때가 되면 밥도 먹여주어야 하고, 잠도 재우면서 고갈된 영혼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하여 모인 젊은이들은 호스트가 되고 지친 영혼들은 게스트가 되어 구도심 여기저기서 조그만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일들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모여 아무 가치도 없는 일을 하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원래 젊은이들은 그래야 하는 거지. 재미있는 일은 의미가 없어야 한다.


나는 살면서 어떤 일이 재미있었을까. 지금이 재미있다. 별로 의미도 없고 누가 봐주지도 않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일이 재미가 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은 보람은 있지만 재미가 없다. 젊은이들은 이렇게 모여서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일을 하면서 영혼을 살찌우고 (물론 이곳에선 육체도 충분하게 살찌울 수 있다!) 과부하가 걸려 삐걱거리는 마음을 정리한 후 다시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왜 목포일까. 목포에 오면(목포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시간이 멈추어버린 곳이란 느낌이 든다.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간판과 이름들(xx양장점과 xx라사를 만날 수 있다!), 나지막한 건물들, 느슨한 거리, 웬만한 곳을 걸어 다닐 수 있는 휴먼 사이즈의 나른한 도시. 아직도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오래되었지만 활력이 넘치는 노점시장. 역설적이지만 이런 오래된 것들이 지친 젊은 영혼들을 끌어당겨 늙어가는 도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만인계와 요상한 젊은 그룹. 만인계의 오래된 영혼들은 젊은이처럼 일을 하고, 요상한 그룹의 젊은 영혼들은 반대로 행동한다.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두 그룹 모두 목포를 사랑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가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도깨비 시장: 노점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



목포에 가서 낙지탕탕이와 민어회를 먹고 케이블카를 타는 것으로 여행을 끝마치지 않았으면 한다. 구도심 여기저기 숨어 있는 자그마한 카페에 들리셔서 차도 마시고 카페 사장님의 정감 어린 사투리도 들어보고, 뚜벅뚜벅 걸어서 발자국을 기억 속에 남겨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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