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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Nov 16. 2021

뼈들의 전쟁

라벤나,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동쪽 해안, 아드리아해에 인접한 라벤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여름 휴양지로 각광받는 곳이지만 관광객에게는 모자이크로 유명한 곳이다. 산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를 보기 위해 매년 유럽 각지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온다. 그렇긴 한데 우리에겐 어쩐지 새벽잠을 설쳐가며 일부러 이곳만을 찾아오기엔 본전이 생각나게 만든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게으름과 이탈리아 소도시를 여행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실망하지 않고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니 오후에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산책 삼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근사한 곳에서 느긋하게 저녁시간을 보내면 만족감이 배로 증폭된다.


이곳에 올 때면 이탈리아 친구들과 가는 식당이 있다. 시 외곽에 있는 트라또리아 ‘라 마디아’라는 곳인데 해산물로 만드는 여러 가지 요리가 입맛에 딱 맞는다. 특히 프루티 알 마레라고 불리는 파스타는 어마어마한 양에 한번 놀라고 그 맛에 두 번 놀란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지만 택시라는 수단도 있으니 라벤나 현지인들은 어떤 식당을 애용하는지 가서 직접 먹어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여행의 재미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식당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다르게 부르고 있다. 리스토란테(Ristorante), 우리가 생각하는 레스토랑이다. 제법 격식을 갖추고 다양한 음식과 와인 리스트를 구비하고 있다. 트라또리아(Trattoria)와 오스테리아(Osteria)가 있는데 트라또리아는 보통 그 동네 토박이가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는 로컬식당이다. 오스테리아는 와인을 주로 팔면서 간단한 식사도 함께 제공한다. 메뉴도 없이 그날 제일 괜찮은 식재료로 코스메뉴를 만들어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사이는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그냥 로컬식당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피쩨리아(Pizzeria)와 에노테카(Enoteca)가 있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피쩨리아에 가야 피자를 먹을 수 있다. 에노테카는 별도의 음식을 제공하지 않는 와인바이다.      


 식당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는 도중에 아까 지나쳐온 단테의 무덤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겼다.      


  “단테는 피렌체 사람이고 피렌체 사람들의 자부심인데, 어째서 이곳에 무덤이 있는 거지?”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 베니스에서 한동안 살았더란다. 베니스는 이탈리아 반도에 있었지만 형식적으로는 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의 보호 하에 있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왜 형식적이냐 하면 바다 건너 비잔티움이 베니스를 어쩌기엔 이미 늙고 힘이 빠진 상태였지만 무역으로 번창하고 있던 베니스는 그야말로 날개 달린 사자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로마 교황과 껄끄러워졌던 많은 사람들에게 베니스는 최적의 망명지라고 여겨진다.


단테도 그중의 하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베니스와 라벤나에서 지내는 데 불편을 없었을 것이다. 이미 단테는 이탈리아에서 유력한 인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르네상스 시대의 라이벌 피렌체에서 추방당했다면 베니스에서 환영받을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단테는 라벤나에서 말라리아에 걸려서 그만 병사를 하고 만다.


단테 사후 이백여 년이 지난 후 피렌체는 교황까지 동원하여 단테의 뼈를 돌려받고 싶어 한다. 일이 성사되어 고향으로의 귀환을 위하여 단테의 석관을 열어보니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무덤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무덤 사이의 벽에 구멍을 뚫어 뼈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다시 이백여 년의 시간이 흘러 나폴레옹이 베니스를 정복하면서 수도회는 한 번 더 안전한 곳에 뼈를 감추게 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관을 숨기고 그 존재를 잊어버리게 된다. 아마도 비밀리에 일을 수행하느라 몇몇 사람만 알고 있다가 비밀을 간직한 채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된 것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18세기 중반 프란체스코 성당의 보수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석관이 발견되었다. 당시의 유명한 뼈 박사들이 모여서 석관에서 발견된 뼈를 검사하게 되는데 6백 년이 지나온 동안에도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뼈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서 판단하기 어렵지만 석관 안에서는 보통의 경우보다 부패의 진행이 늦어지는 것일까.


 단테가 여기서 그만 안식을 취했으면 좋았겠지만 2차 대전 폭격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또다시 옮겨졌다가 전쟁이 끝나고 다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다. 기구한 운명을 가진 뼈들은 이제 안식을 취할 수 있을까?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피렌체는 7백 년이 넘는 동안 계속해서 단테의 뼈를 그의 고향으로 데리고 오고 싶어 했다. 아직도 피렌체는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아직도 무덤을 밝히는 기름을 매년 보내고 있다.(로맨틱하다). 피렌체 사람들의 소망이 이루어져 단테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끝이 날 수 있을까.



  단테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긴 하지만 라벤나의 진짜 볼거리는 역시 산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모자이크를 보기 위하여 매년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자랑을 한다. 그런데 정작 가보면 다른 유명한 관광지에 비해 그다지 붐비는 곳은 아니었다. 마치 수 만 명이 방문한다고 자랑을 하는 지방축제에 갔더니 어쩐지 썰렁한 기분이 드는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그 썰렁한 느낌은 금세 소름으로 변할 수 있다.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벽돌 건물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화려한 대리석과 섬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모자이크를 보면 나지막한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것만으로도 라벤나를 방문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산비탈레 성당 말고도 몇 개의 성당에 더 있지만 보면 볼수록 산비탈레의 존재만 키우게 된다. 성당 구경을 했으면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포폴로 광장으로 가서 주변의 건물들 구경을 하면 된다. 베니스의 영향 하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광장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 시청사 건물이 볼거리이다. 소도시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 빨리 끝난다. 그럴 때면 이렇게 광장으로 나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한잔 하면서 광장 주변을 스케치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한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면 호텔보다는 산비탈레 성당 근처의 오래된 민박집에서 지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듯하다. 삐걱거리는 계단과 침대, 노출되어 있어 멋스러운 기둥과 서까래,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면서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주인장, 피식피식 웃음을 나오게 만드는 조잡한 장식물들. 소도시 여행에서 불편함은 오히려 미덕이다.


라벤나에서 가장 분위기가 있는 식당으로는 카데벤(Ca de Ven)이 있다. Ven이 와인을 뜻하는 이곳 사투리였다고 하니 아마 와인 창고였던 곳이었나 보다. 어두운 탁자를 밝히고 있는 작은 촛불, 향기로운 와인, 맛있는 저녁식사와 로맨틱한 분위기로 눈앞의 그녀의 발간 볼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가로등에 물든 거리는 이제 인적이 거의 없다. 어디선가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열쇠를 세 개나 열어야 하는 민박집의 현관 앞에서 킥킥거리며 열쇠를 이리저리 돌려보지만 어쩐 일인지 낮에 사용법을 배울 때는 제대로 되었는데 지금은 잘 되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달그락거리며 간신히 현관문을 열고 조심조심 들어간다. 아무리 조심해도 삐걱거리는 마룻바닥과 계단은 어쩔 도리가 없다. 다행히 방문은 한 번에 열었다. 그녀는 내 등을 뒤에서 꼭 껴안은 채 종종걸음으로 아기처럼 붙어서 따라온다. 덕분에 삐걱거리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침대에 마주 보고 앉은 그녀는 일부러 침대를 삐걱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다. 규칙적으로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를 듣고 있는 민박집주인 내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하니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소도시에서의 하룻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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