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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재 Jun 06. 2023

교육이라는 실천과 교육철학의 관계

I. 들어가며


언젠가부터 교육철학은 교육 현장의 교사나 행정가, 학부모들로부터 외면을 받아왔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학문이 더는 현장의 실천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생각해 실용적인 지식을 더 선호하게 된 시대적인 흐름을 탓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어쩌면 교육철학 자체의 과오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더 유익한 진단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앞의 이유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원인이기 때문에 교육철학이 자체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뒤의 이유는 교육철학의 내부자들이 노력한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철학자 곽덕주, 나병현, 유재봉(2009)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영국의 교육철학자 Wilfred Carr(1943~)의 견해를 소개하며, 그의 견해가 한국의 교육철학에 주는 함의를 정리하고 있다. Carr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육철학의 지위가 축소되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여러 서구 국가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현장의 교육자들에게 기존의 교육철학 연구는 교육철학자들 간에만 소통되는 학문적 활동으로서, 정책의 형성이나 교육실천의 개선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현실의 교육 정책이나 실천은 교육철학자들의 합리적 정당화나 원칙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편의나 권력자의 이해관계, 그리고 비합리적인 영향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Carr, 2005: 35, 곽덕주 외, 2009: 28 에서 재인용).


  Carr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육과 철학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Carr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교육철학에서 중점이 되어야 할 것은 “교육”이지 “철학”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철학이 그동안 다져온 풍토, 즉 근대의 분석철학적 전통 아래서 학문적인 철학(순수철학)의 특성에 토대를 두고 교육철학을 정립해온 것이 실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Carr는 교육철학을 “실천철학”으로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Carr의 주장을 곽덕주 외(2009)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Carr는 여기서 학문적 수월성과 엄격성만을 찾는 교육철학도 아니고, 교육현실과의 관련성 및 문제해결에 집착하는 교육철학도 아닌, 제3의 새로운 교육철학하기의 자리를 찾기 위해 교육과 철학의 관계를 새롭게 보는 접근 방법을 추구한다(곽덕주 외, 2009: 33).


II. 실천으로서의 교육


Carr가 주장하는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실천으로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교육이란 말을 쓸 때 주로 실천적인 의미가 아니라 제도적인 의미에서 사용해왔다. 교육이 제도(체제)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그 목적이 제도적인 효율성에 있기 때문에, 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학교 교육의 제도적 효율성에 공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학교 교육은 다시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되고 관리되며 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제도적인 의미에서 교육이란 외부의 목적을 위한 도구적인 기능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했으며, 그런 교육에 대한 교육학의 논의는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지식의 체계가 지배하게 되었다.


Carr(2005: 41-42)에 따르면, 이제까지 우리의 교육 현실을 지배해 온 교육의 개념은 ‘하나의 실천(a practice)’으로서의 교육이 아니라 근대적 제도 혹은 ‘하나의 체제(a system)’로서의 교육이며, 여기에서 교육실천가들인 교사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재생산 되는 이러한 ‘체제로서의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에 공헌하도록 요구되어 왔다. 즉, 교육은 20세기 초 근대화 과정과 함께 공립학교의 급속한 팽창에 따른 제도화과정을 거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교육은 하나의 전통을 가진 ‘실천’으로 여겨지기보다는 근대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되고 관리되며 통제되어야 하는 ‘체제’로 인식되었다. … 그 결과, ‘실천’으로서의 교육이나 교육의 개념은 공적인 논의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과학적으로 증명가능한 지식의 체계가 교육을 지배하고 실증주의에 기초한 과학적 연구방법이 교육연구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지식과 교육의 도구적 기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곽덕주 외, 2009: 30).


  Carr의 이런 지적은 교육에 접근할 때 필요한 것이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실천적인 접근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이때, Carr의 주장에서 바탕이 되는 이론과 실천의 구분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을 따르고 있는데, 그의 구분에서 이론과 실천은 각각이 다루어야 할 문제적인 상황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 모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이론적인 문제와 실천적인 문제는 모두 이론과 실천(혹은 현상) 사이에 괴리가 생길 때 발생한다. 하지만, 이론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이론과 현상 사이의 괴리는 기존의 이론으로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더이상 적절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즉, 여기서 기준은 현상이며 이론은 그런 현상에 맞춰 개선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연과학에서는 뉴턴의 물리학으로는 더이상 설명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 관측되기 시작하면서 아인슈타인과 같은 학자들에 의해 더 발전된 이론이 고안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실천적 문제에서 발생하는 실천과 이론 사이의 괴리는 어떤 활동이나 실천이 그것의 바람직한 목적(이론)에 부적절할 때 발생한다. 즉, 여기서 기준은 이론(혹은 바람직한 목적)이며 실천이나 활동이 그 이론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것은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어떤 교육적 실천이 아무리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더라도 그것이 교육 본연의 '교육적 목적(가치)'에 부합하지 않다면 그 실천은 부적절한 것이다.

  따라서, 그런 이론적 문제와 실천적 문제 각각을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사고와 실천적 사고 역시 상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론적 문제는 당연하게도 그 기준이 되는 현상이 불변하고 필연적인 특성이 있는 것이어야만 성립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적 사고 역시 필연적이고 불변하는 대상(주로 진리 혹은 자연)이나 선험적인 지식과 관련이 있으며, 주로 순수한 관조나 추론적인 능력을 통해 해당 문제에 접근한다.

  반면, 실천적 사고는 이론적 기준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해낼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문제에 관여하기 때문에 각 상황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맥락에 기초하고 있다. 또한 이것은 도덕처럼 마땅히 따라야 할 가치와 주로 관련이 있으며, 도덕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위해 숙고와 판단을 주로 활용한다.

  결론적으로 교육을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교육의 문제적 상황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적 문제가 아니라 특수하고 맥락적인 실천적 문제로 간주한다는 것, 그리고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을 이론적 사고가 아닌 실천적 사고로 간주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교육을 그렇게 간주할 수 있다면, 교육이란 활동의 주요한 관심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실천적 사고를 어떻게 함양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III.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


Carr는 교육을 실천으로서의 교육으로 새롭게 규정할 수 있다면, 교육철학의 모델 역시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이라고 새롭게 규정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천을 언급할 때 직접적으로 교육을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실천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는 윤리학이나 정치학을 실천철학으로 규정한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Carr는 그런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분을 계승하여 교육철학을 실천철학의 하나로 구분하려 시도한 것이다.

  실천철학에서는 그것의 일차적 관심이 ‘실천’ 혹은 ‘실천적 사고’에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Carr는 교육철학의 작업 역시 고정된 현상이나 효과를 목적으로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천가들의 특수하고 맥락적인 실천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론적 틀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Carr의 제안이 교육철학의 새로운 모델로서 인정될 수 있다면, 그 새로운 모델을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으로 규정하는 것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Carr(2005: 39)는 이러한 형태의 교육철학의 원형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빌려와 ‘이론적 사고(theoretical reasoning)’에 대비되는 ‘실천적 사고(phronesis, practical reasoning)’에서 찾는다. 이론적 사고가 필연적이고 불변하는 진리로서의 선험적 지식을 순수하 게 관조하는 형태의 추론적 능력과 관련된다면, 실천적 사고는 상황과 맥락에 기초하여 도덕적으로 적절히 행동하는 방식에 대하여 숙고하고 판단하는 사고에 관여한다. 교육철학은 기본적으로 후자에 관심이 있으며 이것에 기초한 학문이다. 그리하여 Carr(2005: 40)는 실천에 일차적 관심이 있는 윤리학이나 정치학을 ‘실천철학(practical philosophy)’이라 부른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라 교육철학(교육학)을 ‘실천철학’으로 규정한다(곽덕주 외, 2009: 33).


  그렇다면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은 교육의 실천가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줄까? 무엇보다도 교육철학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왔던 “실천으로서의 교육”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이때, 전통과 그것의 권위를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스스로 그것을 "의심"하도록 만들며, 나아가 그런 전통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즉, 교육의 실천가들이 교육철학의 반성적 사고를 통해 반성하는 것은 실천적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선험적인 지식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실천하는 중에 얻은 지식에 대한 직접적인 반성이다. 결론적으로, 교육철학은 교육실천가들의 실천을 “더 잘”하도록 도와 그들의 실천이 개선되는 것을 통해 교육이라는 실천의 전통 역시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진보할 수 있도록 돕는 이론적 활동인 것이다.


교육실천가들은 교육철학자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Carr(2005: 40)에 따르면,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은 교육실천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실천이 뿌리내리고 있는 역사적 전통이 지니는 권위적 성격 때문에 이 전통이 제공하는 실천적 지식을 기계적이거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신의 선입견을 의심하도록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 전통으로부터 물려받은 반성 이전의 실천적 지식을 반성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은 각 세대의 교육실천가들로 하여금 실천을 더 잘, 혹은 더 뛰어나게 하도록 하여 그들의 실천을 구성하는 전통이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진보할 수 있도록 돕는 반성적 철학의 전통을 잇는다고 말할 수 있다(곽덕주 외, 2009: 34).




이 글을 쓸 때 다음의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 곽덕주, 나병현, 유재봉(2009). ‘실천철학’으로서의 교육철학하기: Wilfred Carr의 견해를 중심으로. ⟪교육철학, 45, 27-5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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