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눈물과 누군가의 환희가 교차하는 순간으로 가득하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행복한 유토피아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생명은 죽음의 자리를 채우며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지워내고,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삶은 그런 순간의 연속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그런 인간의 삶을 덤덤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클레오가 사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희노애락은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넘나들며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2019년에 개봉한 영화라고 하기에 <로마>의 이미지는 다소 투박하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를 흑백으로 만들었고, 카메라의 무빙이나 앵글 그리고 컷의 구성을 고전적인 방식으로 찍어냈다. 흑백의 긴 호흡으로 구성된 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소 지루하다고 느끼도록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높이는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블록버스터에 맞춰져 있으니까. 그러나 감독은 1970년대의 삶을 아니 우리의 실제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호흡을 줄이기 위한 편집이나 클로즈업 컷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영상에서 배우의 디테일한 눈매나 손짓 혹은 극적인 연출을 통한 감정의 전달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 우리의 현실과 오히려 다른 경험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저 적당한 시야의 적당한 주의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그렇게 교감한다. <로마>의 감독은 그런 우리의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화면 크기와 속도를 꾸준하게 연출함으로써 우리가 관조하는 삶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클레오의 연기에는 표정이 거의 없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참아내기 어려운 슬픈 사건, 충격적인 사건 등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도 클레오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영화는 클레오를 통해 끊임없이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도록 관객에게 요구한다. 문득 우리는 삶에서 어떤 표정으로 살아갈지 궁금해진다. 나는 어떤 표정으로 내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과 사건을 마주하고 있을까?
<로마>에서 드러나는 비극의 중심에는 언제나 여성이 존재한다. 바람난 남편을 보내고 가족을 보호하는 어머니, 도망간 남자친구 없이도 배 속의 아이를 지켜내는 임산부. 그러나 여자는, 어머니는 그런 삶을 끝까지 지켜낸다. 비록 혼자일지라도. 영화 <로마>는 그런 여성의 강함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렇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가족에 대한 물음이 던져진다. 클레오가 소피를 구한 것은 어떤 마음일까?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 진부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와 ‘타인’의 경계를 확정하지 못한채 애매한 그곳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물론 이 경계가 확정될 수 없다는 것이 참이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고민은 여전히 그 선에 머물러있다.
그렇게 영화 <로마>는 우리에게 삶에 대한 통찰을 던진다. 모든 삶의 순간 우리에게 슬픔과 행복은 겹쳐있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