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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Sep 16.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아프리카편 12

마푸토시내로

11/03/2015(화)


  마푸토 시내로


마푸토시내 전경

아침에 거리로 나와보니 이민국 직원이 데려다 준 호텔 근처 풍경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잘 차려 입지도 않은 검은 얼굴의 남녀들이 비쩍 마른 날씬한 몸매로 분주하게 거리를 거닌다. 시멘트 블록이 여기 저기 깨어진 채로 도로를 볼상스럽게 만들고 그런 지저분한 거리에는 행상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들로 어찌보면 삶에 찌들린 그런 군상같기도 하다. 일단 얼굴색이 검은 색이 아니고 채도가 빠진 검정색으로 때론 회색과 검정의 중간톤같기도 하다. 어찌보면 대한민국 국민이 서울로 몰려 살듯이 모잠비크 국민들도 마푸토로 다 몰려드는 것 같다. 신발 고치는 신기로 장사, 땅콩을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행상, 신발을 보도 위에 진열해 놓고 앉은 먼지를 털어내며 손님을 기다리는 신발장사, 애기를 등에 업고 숫불풍로에서 옥수수를 구워파는 아지매, 비슷한 숫불풍로에서 닭꼬치를 구워 파는 행상, 사과나 망고같은 과일을 좌판에 올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행상 등등....,마치 서로 서로가 장사를 하며 서로에게 팔아먹고 살아 가는 곳 같다.



마푸토 시내에서 좌판을 벌린 행상들


마푸토 시내에서 장사하는 노점상들




    아프리카에서 제일 비싼 비자 수수료


아침에 10시에 오라고 했는데 11시에 갔다. 짐은 호텔에 있어 몸이 가벼우니 배낭 여행자답게 버스를 찾아보았다. 힘이 드는게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고 순전히 포르투칼어로 나오니까 정보를 캐낼 수가 없다. 포르투칼어와 스페니쉬가 약 50% 정도는 상호 소통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작년 남미 배낭에서 터득한 짧은 스페니쉬를 구사해 봐도 신통찮다. "부스 빠라 에어로뽀르토, 아끼?" 그대로 말하면 "공항가는 버스, 여기?" 인데 "공항가는 버스 여기섭니까" 라고 그렇게 짧게 물어 보는건데 남미에서는 100% 통했는데 여기서는 안되는기 'bus'가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몇 번 물어면 그 중에 영어 쪼매하는 작자가 나와서 바로 가는 차는 없고 '쁠라사'에서 내려 갈아 타야한다고 한다. 호텔 앞에서 일단 '쁠라사'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여기는 아래 사진처럼 한국의 봉고차보다도 조금 작은 것 같다. 1회 요금은 8 MT로 미화 1불이 40MT 니까 미화 약 20센트다. 어제 저녁 이민국 직원이 태워주면서 기름값 달라고 해서 500MT 주었는데 이게 관광객에게 받는 협정 택시요금이다. 쁠라사에서 내려서 공항가는 버스알아보니 없다고 하는데 누군가가 저쪽으로 가면 있다고 하는 것 같아 열심히 걸어가도 버스 STOP이 안 보여 또 사람을 잡고 물어보니 저 코너만 돌면 공항이라 해서 아까 그 사람은 버스 정류소를 말한게 아니고 공항가는 길을 가르쳐 준것 같았다. 쁠라사에서 걸어서 10분이면 족하다. 그래서 어제 500MT로 공항에서 호텔로 왔는데 오늘은 8 MT로 호텔에서 공항으로 간 셈이다. 500 대 8 로 오늘은 내가 이겼다. 결국 가서 미화 98불 비자 수수료내고 30일 짜리 비자 도장받아 왔다. 아프리카에서는 제일 비싼 수수료이지만 남미에 비해서는 그래도 싼 편이다. 미국 여권으로 남미 들어 갈때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요 세 나라만 받는데 각각 미화 150불씩 받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여권은 전부 그대로 통과해 준다.



마푸토 시내에서 운행되는 미니버스. 거의 폐차 직전의 차들로 손님을 차곡차곡 꾸게 넣는데 최고 20명까지 가능하다.




    벽화 사진으로 경찰과 언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 최근에 개방정책으로 전환한 국가들의 공통점이 도시 곳곳에 선동적인 이미지를 그린 벽화가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여기도 그렇다. 쁠라사에 내려서 공항가는 길을 찾는데 멋진 벽화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어 그런걸 놓칠 내가 아니니 예외없이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몇 장을 찍었는데 비쩍 마른 경찰 녀석이 와서 왜 찍냐고 묻길래 그림이 좋아서 찍었다 왜 찍으면 안되냐고 되물었더니 잠깐 나를 보고 같이 가자고 한다. 벽화가 그려진 담 뒤로 돌아 들어가니 경찰 초소가 있어 그 곳에서 여권을 보여달라기에 주었더니 옆에 있던 다른 녀석이 "아메리카"하면서 놀랜듯  소리치더라고. 마치 "미국 첩자를 잡았네" 그런 뉘앙스를 물씬 풍기면서 말이야. 처음에 나를 제지한 경찰이 사진을 지워야 한다고 하길래 그래 지워줄께 하면서 카매라 Replay 다이얼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몇 장 지우고 담에는 다이얼을 오른쪽으로 급하게 돌려버렸다. 그러면 화면이 첫번째 사진이 나오게 되어있어 보니 나미비아 호텔 직원들 사진이 나오니까 그때서야 됐다면서 가도 좋다하길래 호텔가서 보니 딱 한장이 남았는데 그게 아래 사진이다



안 지우고 남은 유일한 벽화 사진

쿠바 아바나에서도 많이 찍었고, 월남 호치민시에서도 찍었고, 불가리아 소피아에서도 많이 찍었는데 그런 벽화보면 찍어도 별 시비거는 놈이 없었는데 마푸토에서 처음으로 제지당했다. 그런 혁명 구호가 담긴 벽화가 더 이상 인민들을 한 곳으로 몰고 가기에는 이제 이 세상이 너무 개방되어 있어 그런 벽화가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항상 내가 그런 벽화 찍으면서 진짜로 한번 찍어보고 싶은 벽화는 바로 평양에 있는 붉은 벽화다.



공항가는 길 벽에 그려진 벽화로 멀리서 찍었다

여권 찾아 호텔로 돌아갈 때 멀리서 벽화를  또 찍었다. 가까이 가서 찍지는 못하고 이번에는 새가슴 쪼매 쫄리면서 벽화를 찍었다.





  마푸토의 카텐비 아일랜드


하라레 공항에서 6시간 기다리면서 모잠비크 현지인에게 물어봤다. 마푸토에서 관광객이 볼만한 곳 두 곳만 알려달라고 했더니 몇몇이 저그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더니 알려준다. 발음 그대로 한글로 적었다. 카텐비 아일랜드와 마카니타 비치. 그래도 98불 내고 모잠비크에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고 배낭 여행기 독자에게도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카텐비 섬으로 향했다.  지도를 가지고 일단 걸었다. 걸어야 중간 중간 볼만한 것도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시내 관광은 통상 걸어서 하는 것이 좋다.





     내가 오늘 98불 비자 수수료를 낸 이유


우리말로 큰길인 대로는 영어로 Avenue인데 야들의 글로는 Avenida로 쓰지만 약자는 영어와 똑같이 Ave.로 쓴다. 그 Ave. 이름에 모택동대로, 호치민대로, 칼막스 대로, 레닌대로 등 세계 사회/공산주의 이론에 박식한 인물들이 총망라되어있다.(다행히 일성대로와 정일대로는 없더라) 모잠비크가 한 때 사회주의 노선을 걸은 이유가 내전때문이었다.  1848년 포르투칼 항해인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항로 개척시 발을 디딘 그 이후로 1975년 모잠비크가 독립할 때 까지 상아, 금 그리고 노예무역으로 단물을 쪽쪽 빨아 먹고도 포르투칼이 이 땅에 해 놓은건 하나도 없다. 내전은 독립되기 전 10년전부터 조짐을 보였는데 당시 백인정권에 의해 통치되던 남아공과 로데시아(지금의 짐바브웨) 두 정권이 모잠비크 독립투쟁을 하는 흑인세력의 영향이 자기들에게도 불똥이 튈까봐 반군을 결성하여 뒤에서 지지함으로 모잠비크의 독립을 저지하려고 하였는데 이 반군 지지 세력이 포르투칼, 남아공, 로데시아 그리고 미국의 우익세력이었다. 그 때 미국이 모잠비크에 잘못보여 지금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어 내가 오늘 98불내고 들어 오게 된 이유이다. 이 내전은 1975년 독립후 17년간 이어져 오다가 겨우 1992년에야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쫑이 났는데 현재는 개방정책과 더불어 다당제 민주주의를 시행하고 있다.





  가난한대로 배고픈대로 사는 착한 인민들


일단 길거리 행상들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좌판에 벌린 상품이 고작 땅콩, 알도 오리알보다 작은 사과, 사탕과자, 깨엿, 아보가도, 구식 셀폰 케이스 등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가난의 모습이 온 몸 전체에서 퍼져 나온다. 날이 더워서 대개 슬리퍼를 착용하는데 발이 코끼리 가죽처럼 질기면서도 온통 금이 가있다.


카텐비 섬으로 가는 페리보트를 타러 걸어가는데 어느 현지인이 말을 걸어 오길래 우선 반가웠다. 일단 영어로 겨우 대화가 되니까 말을 걸어 온다. 이름이 Jhon이라고 얼굴이랑 몸매가 잘 생겼다. 몸매가 잘 빠진 민족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쿠바사람들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먹을게 부족하니 적게 먹어서 몸매가 진짜로 슬림하다. 여기 인민들도 그와 매우 흡사하다.


어디가냐고 묻기에 카텐비 섬에 간다고 했더니 자기 집이 그곳이라고 자기도 페리보트 타러 가는 중이라고 하길래 같이 가기로 하였다. 그 때가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으로 배가 고파 Jhon에게 같이 밥먹고 가자고하니 얼씨구 좋아한다. 페리보트 타러 가는 길은 해안도로 맨 밑에 위치하는데 그 한쪽으로 허름한 밥집이 쭉 이어져있어 사람들로 복작거린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잔에게 메뉴를 물어보니 치킨과 밥하고 다른 것은 콩삶은거 하고 다른 것이 있길래 치킨과 밥을 시켰다. 밥 위에 구운 닭고기와 야채 채소와 토마토 슬라이스  몇 개 얹어준다. 밥값은 80MT, 콜라는 20MT로 내가 목이 말라 콜라를 두 병이나 마셔 220MT로 미화 5불 50전이다. 나에겐 싸지만 없는 사람에게 매일 사 먹을 그런 음식값도 아닌 것 같다.



마푸토 해안도로가의 허름한 밥집.


내가 시킨 치킨과 밥. 시장이 반찬이다.




    카텐비행 페리보트 위에서


페리보트에서 바라본 카텐비 해변

카텐비는 섬이 아니다. 섬같이 보여서 그냥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섬이 아닌 이유는 바다에서 들어온 만이 일자로 쭉 뻗어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있어 마푸토 다운타운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려면 이 쪽 해안도로를 한참 내려가서 돌아서 또 한참 올라와야 하기에 양쪽 해안을 잇는 두 지점에 차도 실어나르는 페리보트가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니다. 바다에서 불러오는 바람이 어찌나 센지 바람이 만들어내는 흰파도가 수시로 춤을 춘다. 보트 운임은 인당 5MT로 내가 생각한 그런 유람 페리보트가 아니고 서민들이 이용하는 서민버스하고 똑같다.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이 타는지....아마 출퇴근 시간인 것 같다. 학생들도 많고 마푸토 거리에서 보았던 일반 시민들도 많고, 주로 짐을 적재칸에 높이 쌓아올린 소형 화물차들도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카텐비가 갑자기 나에게 비밀의 섬으로 다가온다. 카텐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쟌도 모른다. 그냥 많은 사람이 산다고만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모두들 똑 같이 입고, 똑같이 몸이 여위고, 똑같이 머리통이 동그랗고,똑같이 영어를 못하는지 획일적인 사회주의가 가져다주는 결과물같이 너가 나보다 나은게 없고 내가 너 보다 더 가진게 없는 완전한 사회주의 체제에 젖어 있는 온순한 양같은 인민들인 것 같다. 마치 그들 모두가 똑같이 못 먹고 똑같이 못 입고 똑같이 가난하게 산다면 더 이상 큰 불만없이 하루 하루를 연명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이 그들 스스로에게 증명이라도 해보이듯이 말이야.  


카텐비만을 가로지르는데는 페리보트로 15분이면 족하다. 쟌과 헤어지고 카텐비 해변을 조금 걷다가 다시 배를 타고 돌아왔다. 다시 마푸토로 돌아가는 배에도 똑같이 사람들이 모여 들고 화물을 적재한 소형 트럭들이 배를 타기에 바쁘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마푸토의 다운타운은 바벨탑처럼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들이 솟아 있어 다른 어느 나라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기에는 근사하게 보인다. 다만 다른 것은 마푸토 시내를 걸어 다니는 인민들이 똑같이 옷을 입고 비쩍 마른 몸매로 똑같이 머리통이 보기좋게 둥글하고 똑같이 옛날부터 저그 할배 할매들이 그랬듯이 포르투칼말밖에 할 줄 모르면서 똑같이 배가 고프면서도 불평불만이 없는 평등한 인민으로 살아 가고 있을 뿐이다.



거센 흰파도를 헤쳐나가는 배


물빠진 카텐비섬 해변에 새들이 모여든다


카텐비 해변. 새들이 밀려오는 파도에 그 작은 발을 담그고                           오늘의 마지막 모이쪼기에 열심이다.


페리보트에서 바라본 마푸토 다운타운 1


페리보트에서 바라본 마푸토 다운타운 2


마푸토 시내에 있는 주공(?) 아파트. 재개발이나 되는지?


CFM 이라고 하는 기차역 터미널


무슨 동상인지는 몰라도 혁명과업과 관련있는 부조가 양쪽으로 새겨져 있다. 서 있는 처자도 눈매가 무서워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다.


페리보트 타는 길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로 입구에 경비가 기관총을 들고 지키고 있다.


옛날 포르투칼인들이 해안 방어책으로 쌓은 요새 터


페리보트 운영하는 선주와 그의 딸로 우연히 배를 타고 들어갈 때 사진을 찍어 주었는데 나올 때도 우연히 만나 일가족까지 찍어 주고 조타실 특실에서 앉아 왔다.


왼쪽부터 고메즈, 그레이스, 씨샤. 두 여자애는 사촌이고 고메즈는 애들의 엉클


미국 영화배우 율부린너같이 머리통이 잘 생긴 초딩 학생들. 희안하게 머리통들이 둥근 수박처럼 통통하게 잘 영글었다.


하교길에 만난 단체 초딩사진. 제각기 포즈잡기에 열심이다.


가난이란 괴물이 새롭게 창조하는 New Fashion


돌아오는 길에 만난 젊은 연인들. 이두(20)와 이리나(25)의 다정한 포즈. 여기도 요즘 한국처럼 연상커플이 유행하는모양이다. 근데 이리나 이 젊은 처자는 애가 둘이나 있는 미혼모라고 자랑하길래 이두와는 어떤 관계인지 물어보니 그냥 친구사이란다. 밴드에서 만난 밴친인가?


이동통신사 MCEL 의 광고. 영어로 번역하면 There is a smile that connects you. 정도인데 어느 곳에서도 항상 당신에게 (가족들의) 웃음을 전해주는 MCEL 이통사를 이용하라는 광고문.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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