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잠비크 북부 뻼바(Pemba)
11/4-5/2015(수,목) 맑음
오늘이 벌써 11/4일 수요일이다. 오늘부터는 무조건 북진을 해야한다. 어제 비자받으러 간 김에 공항에서 모잠비크 국내선이 갈 수 있는 제일 북쪽 도시
Pemba가는 뱅기표를 예약했었다. 마치 맞선도 못보고 신랑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성품은 온화한지 술은 말술을 퍼마시는지 돈은 잘 벌어 올건지 나를 끔찍히 아껴줄련지 이런 것도 모르고 시집가는 순진무구한 신부처럼 도시 Pemba 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단지 모잠비크의 제일 북쪽에 위치하고 탄자니아 국경에 제일 가깝다는 이유로 오늘 그곳으로 가는 뱅기표를 어제 예약했다.
인도양 바닷가에 위치한 조그마한 모잠비크의 시골 마을이다. 아침 10시 반에 좌석의 반도 못채우고 마푸토 비행장을 이륙한 뱅기는 기수를 북으로 돌려 금방 구름 위로 올라선다. 자리가 넉넉하니 아무데나 앉고 싶은데 앉으라는 승무원의 말에 따라 사진찍기 좋은 창가 좌석을 차지했지만 구름이 아래 세상을 마치 눈이 내려 대지를 덮듯이 하얗게 덮어 버렸다. 항공사진도 못 찍고 그렇게 Pemba까지 두 시간 반 정도를 날아가서 큰 호수를 끼고 있는 비행장에 오후 1시가 지난 후에 내려 앉았다. 내리자마자 공항안에 있는 예매소로 달려가서 탄자니아행 비행기가 연결되냐고 물었더니 내가 예상한대로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떠났고 다음 편은 6일 금요일에 있다고 한다. 일단 호텔이나 들어가서 짐을 놔두고 탄자니아로 연결되는 장거리 버스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일단 여기서는 별 구경할게 없으니까 휴식Mode로 해서 인도양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배낭여행자에겐 쪼매 어울리지 않는) 최고의 호텔인 Raphaels 호텔에 짐을 풀었다. 3층인데 큰 창문을 열면 인도양 망망 대해가 한 눈에 들어오고 24시간 실시간으로 파도가 밀려와서 바위나 모래를 때리면서 해변의 협주곡을 들려준다. 이틀동안 실컷 들었다. 바람이 파도를 부르고, 그 파도가 물결을 일으키고, 그 물결이 해변으로 밀려 들면서 바위나 자갈이나 모래탑을 간지러주면 그것들이 자지러지게 내지르는 소리들이 쉬지않고 나의 창을 통해 들려온다.
해가 지는 오후에는 먼 바다로 고기잡이하러 나갔던 배들이 하나 둘 씩 들어오고, 동네 꼬마 녀석들이 말라 비틀어진 검은 해초가 뒤덮인 해변가를 요리조리 뛰어 다니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이런 조용한 시간이 되면 내가 그동안 뛰어다니며 힘들었던 기억이나 장거리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꾸개지면서 이동했던 모든 불편함들이 양지바른 텃밭에 쌓인 봄눈이 햇볕에 녹듯 사르르 사그러져 버린다. 내가 지금 할 일이라곤 사진을 몇 장 작업해서 개발새발 몇 자 소식으로 친구들한테 날려보내는 그것뿐이다. 그런 기행문을 쓰다가 지겨우면 넓다란 침대 위에 대자로 퍼져 나른한 오수를 즐겨도 된다.
일단 시내로 나가 탄자니아로 넘어가는 뱅기표를 알아 보았다. 혹시 바로 가는 장거리 버스가 있는지 알아보니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여기서 3번 갈아 타고 국경까지 가서 국경을 넘어가야 탄자니아 버스를 탈 수 있단다. 조금 난해하고 도전적인 코스같아 이번에는 접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이 말을 듣고 바로 뱅기표를 예약했다. 여행사 직원들은 업무상 그래도 영어를 잘한다. 예매후 내일 아침에 돌핀보러가는 크루즈가 있는데 조인할련지 물어봐서 내일 할 일도 없는데 잘 되었다 싶어 하기로 하였다. 오늘 오후 시간 죽이게 이 근방 어디에 경치좋은데 없냐고 물었더니 Wimbi Beach 를 추천해서 시간이나 죽이러 달려갔다.
합승버스가 있다고 해서 8 MT 주고 윔비 비치로 갔다. 버스 종점이 비치로 들어가는 입구라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니 좌우로 확 트인 하얀모래가 양탄자처럼 깔린 해변이 눈 앞에 나타난다. 역시 바닷가에 인접한 마을에는 이런 멋진 해변이 꼭 있기 마련이다. 해변가를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이나 몇장 훔치고 해변가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현지인은 없고 관광객 전용으로 만든 깨끗한 식당으로 먼저 와서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노는 백인 4명말고는 손님이 없다. 바다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야외에 테이블을 만들어 놓아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폼나게 깔라마리 (오징어) with 베지터블을 시켰더니 오징어에 칼집을 내어 그릴에 구워서 나오는데 요 근래에 오늘 저녁식사가 제일 나은 듯하다. 후닥닥 해치우니 마파람에 게눈 감춘다는 비유를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소낙비가 쏟아졌다. 잠깐동안. 간만에 비를 봐서 기분도 UP된다. 내가 우산장사의 아들은 아니지만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빗물을 쫘악 빨아 들이는 대지가 차분해지듯 그냥 나도 같이 깔아 앉는다. 그렇게 기분이 좋다보니 어떤 비라도 항상 나에게서 환영을 받는다. <비의 나그네>란 노랫말도 이런 분위기에서는 멜랑꼬리하게 허한 가슴을 쪼매 후벼판다.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밤비 따라 왔다가 밤비 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주룩 끝없이 내려라
호텔은 해변가에 근사하게 지어서 관광객들이나 출장 온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 근데 호텔을 나서면 모잠비크의 시골 풍경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호텔 앞까지 오는 버스가 없어 마지막 날 한번 걸어서 시내에 나가 보았다(크루즈가 갑자기 취소되었다). 어떤 마을에는 아이들이 신발도 없이 그냥 맨발로 뛰어 놀고 있었고, 입은 옷들은 언제 빨아 입혔는지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손발도 그냥 흙색깔로 까만 피부색에 회색을 추가하는 것 같았다. 마푸토에서 조금 감은 잡았지만 이렇게 극빈 속에 살아가는지 실제로 눈으로 보니까 한국방송에서 배우 안성기가 읽어주는 UNICEF 후원모금 광고에 나오는 다른 아프리카애들보다 더 못한 것 같았다.
‘아프리카 방랑기'를 저술한 미국 작가 폴뒤르는 이렇게 주장한다. 아프리카를 점점 망하게 하는 것은 서방세계의 각종 원조 프로그램이라고. 세계각지에서 모여드는 원조금과 구호물품은 애당초 이런 오지 극빈자에게 가지도 못하고 정부 관리자들의 배만 채워주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꼬집는다. 저런 모습으로도 서로 웃고 장난치고 해맑은 미소로 살아가는 것은 아직 애들이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도 신발이 없어도 옷이 허름해도 삶의 무게를 아직은 모르니까 저렇게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만 점점 자라나서 머리가 커지고 삶이 무엇인지 조금 알만한 나이에는 그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금 조그만 저런 애들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어른이 될 때는 모잠비크도 잠자는 경제를 일으켜서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가난의 대물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마음 속으로 빌어 보았다.
호텔 앞 광장에서 1차로 선발된 마을 아이들. 이 때는 성도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내가 바빠서 2장만 프린트해서 주었는데 다음날 다시 3장 더 프린트해서 주려고 광장에 나갔는데 만나지 못했다.
호텔 앞 광장에서 찍은 2차 뻼바 아이들. 이번에는 이름이나 적어놓자싶어 이름을 물어봤다. 나이는 10-11살 그 또래들로 프린트 6 장이 한 방에 날라갔다. 앞줄 왼쪽부터 유아니뚜, 아바가리, 따구모뜨, 뒷줄 왼쪽부터 자이메, 씨리우, 바우루. 독특한 이름들이다.
애들이 어디사는지 궁금해서 한번 따라 가 보았더니 이상한데로 자꾸 올라 가길래 중간에서 접었다. 영어나 되면 사진찍어준 댓가로 부모들에게 인터뷰나 요청하겠지만 말이 안되어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을텐데 싶어서 접었다.
호텔 벽에 있는 그림으로 보는 순간 고구려 무용총에서 발견된 수렵도가 머리에 떠 오른다.
시내에서 행상하는 애(십대 소년)의 맨발. 맨발의 청춘으로 사는 애들이 많다.
시내 전신줄에 걸린 작년 크리스마스 장식등. 이런 가난한 모잠비크 마을에는 산타할배가 더 자주 와야 하는데......,
시내에 있는 어린이 공원
Wimbi 비치를 흑백으로 잡아보고
Pemba 패션
시내 노점상
시내에 새로 짓고 있는 현대식 고급 아파트. 이런 수요가 있어서 건축하는 것일까?
시내에서 좀 떨어진 동네 전경
Pemba에서 발견한 중국집. 짜장면은 없어도 미국에 있는 중국집 맛하고 똑같다. 마지막 날 남은 모잠비크 통화를 탈탈 털어 배터지게 시켜먹었다.
선전 벽화를 끝까지 찍어 버렸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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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편 14 - 탄자니아 국경을 하늘로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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