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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May 12.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아프리카편 23

킬리만자로 여신에게 비나리

11/15/2015(일) 맑음


모시 거리를 배낭을 맨 외국인이 혼자 걸어가면 찍새들이 방앗간에서 나온 참새떼처럼 달라붙는다. 킬리만자로 가이드 등반부터 모시 투어, 마랑구 폭포 투어들 모시에서 시작되는 모든 관광투어를 팔려고 열을 올린다. 한 명을 겨우 물리치고 나면 멀치서 보고있던  다른 참새들이 또 달라든다. 세렝게티에서 잠깐 만난 가이드하고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그래도 가이드 직업의 수입이 나은 편으로 너도나도 되려고 하는데 적어도 1-2년 학교를 이수해서 가이드 자격증을 따야만 하고, 반드시 외국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영어를 선택하고 특수하게 일어나 중국어를 선택하기도 한단다. 아시아 삼국 중국, 일본, 한국 중 관광객이 많이 오는 순서를 물어 보았더니 중일한 순서란다.


모쉬 거리와 이슬람 사원



   조용필의 히트곡 "킬리만자로의 표범"


많은 한국사람들은 조용필 노래듣고 킬리만자로 정상에 얼어죽은 표범의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아는데 사실은 조용필 노랫말이 있기 전에 미국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193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 그렇게 묘사되어있다.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정상에는 메마르고 얼어붙은 표범의 시체가 있다. 그 표범이 그 정상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소설 서두에서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의 내용은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을 온 작가지망생이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죽음을 앞두고 굴곡많은 인생의 회한과 사랑에 대한 전반적인 회상을 그리고 있다. 훼밍웨이의 여러 단편소설중 압권에 해당하는 수작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산악인의 꿈 킬리만자로 등정


등산을 좋아하는 일반 산악인들이 대개 꿈꾸는 해외 원정 코스가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네팔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이를 보통 ABC라고 부른다. Annapurna Base Camp의 약자로)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모쉬에서 출발하는 킬리만자로등정이다.


산에 오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는 높은 산에는 별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최대한 가까이 근접해서 산사진을 찍는 것은 좋아한다. 어제 저녁을 호텔 옆 로칼 식당에 가서 먹었는데 옆 좌석의 수염이 텁수룩한 백인 한 명이 내 카메라보고 군침을 흘리기에 서로 이야기를 해보니 호주에서 온 산악인으로 내일 킬리 올라간다고 한다. 가격이 궁금해서 얼마하냐고 물어보니 인당 미화 1200불이란다. 내가 알기로는 인당 천불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200불이 비싼 것은 보통 4박 5일 코스가 아니고 5박 6일 코스이기 때문이다. 킬리에 오르는 코스가 5 개 있는데 어린이들도 올라 갈 수 있는 제일 완만한 코스가 마랑구코스로 오늘 내가 사진찍으러 갔다 온 곳이다. 이 호주 친구는 험한 마차메코스를 택해 하루비용이 더 드는 것이다.



킬리만자로 등정 루트

마랑구코스는 완만한 북쪽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고 마차메코스는 서쪽의 조금 험한 코스를 통해 정상으로 올라간다. 그외 롱가이, 움보에, 로모쇼 코스가 있는데 사람들이 별로 이용하지 않는 코스이다. 안나푸르나 산사진은 2013년 봄에 네팔 중국 배낭여행시 안나푸르나가 빤히 보이는 사랑곶이란 곳에서 5일 죽치면서 찍어 왔고 오늘 킬리 사진을 찍으러 마랑구로 달려갔다.



왼쪽 봉우리가 안나푸르나 주봉(8091m)이고 오른쪽 뾰족하게 솟은봉이 마차푸차레(6993m)로 더 높아 보이는 이유는 훨씬 가까이 있어서 그렇다



해뜨는 안나푸르나 주봉(8091m) 2013년 4월 27일 촬영




   마랑구행 버스에 몸을 싣고


새벽에 일찍 눈을 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는 아침 5시만 되어도 날이 훤했는데 여기는 그곳하고는 좀 틀린 모양이다. 아침을 7시에 챙겨먹고 간만에 샤워도 한번하고, 머리도 샴푸로 한번 빨아주고 해서 모처럼 산뜻한 기분으로 호텔을 나서서 마랑구가는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하였다. 모시도 여기와서 보니까 모시적삼의 그 모시가 아니고 Moshi로 모쉬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모쉬 시외버스 터미널

모쉬가 교통의 요지인지 시외버스 터미널이 완전 북쇄통을 이루고 있었다. 각 행선지별로 호객을 하는 버스 차장들의 고함소리로 난리법석이다. 내가 들어서자 사방에서 몰려 온 사람들이 다레스살람, 아루사, 도도마, 캉카등 인접 도시 이름을 부르며 호객을 한다. 마랑구라고 한마디 했더니 그 옆 다른 터미널로 가란다. 그 옆 터미널은 모쉬 근방의 마을로 가는 시외버스 터미널이고 처음에 간 곳은 장거리 시외버스 터미널이다. 마랑구가는 버스는 달라달라라고 부르는 미니버스로 사람들이 꾸개져야 탈 수 있는 그런 조그마한 승합차 버스이다. 이방인이 이 버스를 이용하니까 전부들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한국의 마을버스보다 작은 합승버스에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버스에 앉아 있으니 또 젊은 가이드 한 명이 창가로 다가와 수작을 건다. 한국서 왔다고 하니 지 보스가 한국 사람이란다. 웬 소린가 싶어 꼬치꼬치 캐어 물어보니 모쉬에 한국인이 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38살먹은 미스터 박이란 친구가 주인인데 그 친구가 자기 보스로 지한테 한국말도 몇마디 가르쳐주었다고 하길래 너가 배운 한국말을 나한테 구사해 보라고 했더니 "살아있네" "방가 방가" 등등 몇 마디하였다. 그러면서 마랑구에 가면 폭포등 여러가지 볼거리가 있는데 자기가 가이드할테니 오만실링(미화 25불)달라고 한다. 킬리 사진찍으러 가는데 폭포 구경이 눈에 차나 싶어 거절하고 혼자 버스를 타고 마랑구로 갔다. 로칼버스로 모든 정류소에서 손님이 타고 내리니 별로 먼 거리는 아닌데도 1시간 이상 걸렸다.



1988년 미국 지미 대통령이 킬리 등정와서 묵었다는 KIBO 호텔




   최고의 전망대 응강구밀리바(Ngangu)


모쉬에서 마랑구가는 버스는 마랑구또니까지만 간다. 또니는 현지어로 작은 개천을 말한다. 킬리 산에서 내려온 물이 개천을 이루어 마랑구로 흘러 내리기 때문에 그런 지명이 되었다. 킬리로 오르는 마랑구게이트로 가려면 마랑구또니에서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그러나 모쉬에서 사파리여행사를 통해서 킬리로 오르는 사람들은 모쉬에서 여행사들이 여기까지 실어다 주기 때문에 이런 미니버스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미니버스 속에서 라이센스없이 알바로 가이드하는 친구를 만나 새로운 전망대를 발견하고 쾌재를 속으로 불렀는데 킬리 여신이 허락하지 않아 발가벗은 나체 사진을 못찍고 젖가슴에서부터 허리 춤에 옷을  걸친 답답한 사진밖에 찍을 수 없었다. 근처 국민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시간나면 마랑구또니로 와서 운좋으면 한두 건수를 올려 살림에 보탬을 하는 것 같다. 이 친구도 처음에는 폭포구경을 말하기에 그런건 필요없고 카메라 보여주며 킬리산을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삼십 중반의 친구로 말수가 적고 매우 조용하게 생긴 친구로 전문 가이드하고는 많이 틀리지만 쓸데없이 수다떠는 가이드 보다는 좋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


파초잎과 아보가도 나무로 우거진 시골길


바나나 트리의 열매


커피나무의 커피 열매


바나나 나무의 꽃. 동물사료로 사용한다

바나나 트리와 커피나무와 아보가도 나무로 눈이 시릴 정도로 녹음이 짙은 숲이 우거진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응강구라고 부르는 산으로 올라갔다. 미니버스로 산속으로 한참 올라 왔기 때문에 벌써 어느 정도 킬리산속으로 들어 온 셈이다. 커다란 잎사귀가 파초 잎처럼 바람에 출렁거리는 시골길을 요리 조리 돌아서 조그마한 산으로 올라갔다. 조금 가파른 길로 거친 숨을 몰아치면서도 킬리산을 멋지게 찍어보겠다는 직업 정신에 충실한 지노는 흐르는 땀을 참으면서 응강구라는 산을 올랐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


전망대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전망대 꼭대기에 세운 기독교 기념탑

현지어로 밀리바가 산을 뜻한다. 한참을 올라가니 산 정상이 나오는데 그 곳에 서니 사방 360도가 훤하게 틔여있어 킬리가 바로 지척에 떡 버티고 앉아 있다. 책에서 본대로 킬리가 좌우로 평평하게 걸쳐 완만하게 능선이 산아래로 내려온다. 처음으로 오른 시간이 정오가 조금 지났는데 아래 사진처럼 완전히 구름 속에 묻혀 있었다.



구름 속에 파묻힌 킬리만자로 정상

북쪽으로 바라보니 저 멀리 지평선이 아른하게 보이는데 가이드가 케냐 땅이라고 한다. 킬리산이 지도를 보면 케냐와 국경에 있는데 걸쳐있는 것이 아니고 조금 탄자니아쪽으로 들어와 있다. 저 멀리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곳이 모쉬라고 한다. 그 옆에 높은 산들이 연이어 줄지어 있는데 바레산이라고 한다. 모쉬에서 이틀짜리 트레킹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응강구전망대에서 한 시간이상을 기다려도 구름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일단 점심먹으러 마랑구또니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모쉬


아득한 북쪽이 케냐땅이다


모쉬에서 이틀짜리 트레킹 투어가 있다는 바레산




Chagga족들의 생활터전인 킬리만자로 기슭


탄자니아에는 무려 127개의 부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중 마사이족이 3-4 백만정도로 전체 탄자니아 인구 45백만명중 9%로 1위이고, 두번째로 소쿠마족이 3백만 정도, 세번째로 차가족이 2-3백만정도로 이 세부족이 제일 많고 나머지는 소소한 부족이라고 한다. 마사이족은 유목민(Nomad)으로 소나 염소를 방목하면서 이곳 저곳으로 초지를 찾아 이동하였으나, 차가족은 원래 킬리만자로산 언저리에 생활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농경부족으로 심한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한 마사이족들이 때로 식량을 얻기 위하여 차가족들을 공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차가족들이 호전적인 마사이족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지하로 숨어들었는데 그 옛날 지하 주거 동굴이 여기에 있다고 해서 폭포보다는 나을 것 같아 차가족 지하 주거지를 구경하러 갔다.



챠가족들의 지하 동굴 주거지

들어가는데 입장료로 안받고 그냥 주인양반인듯한 말빨좋은 가이드가 나혼자만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진짜로 땅굴처럼 이리저리로 연결하여 무려 14km나 연결되어 있단다. 식수를 얻기 위하여 강으로 연결하고 환기를 위하여 지상으로 구멍을내어 통풍을 하였다고 한다. 지하 주거지를 다 보고 나와서 관람료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지하 땅굴보는데 5불, 다른 생활 유적보는데 5불이라해서 더 이상 안보고 5불만 주고 나왔다. 개인이 운영하면서 인당 10불씩 챙긴다는건 이곳 주민들 수입에 비하면 거의 착취에 가깝다. 물론 관광객들을 물어오는 찍새에게 얼마씩 구전을 주겠지만 10불은 엄청난 금액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시 응강구 전망대로


무거운 카메라매고 다시 언덕 길을 올라 전망대로 올라 가니 오후 4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구름은 여전히 정상을 가리고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단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그동안 얌전한 가이드 생활상이나 들어 보기로 했다. 7살 4살 딸아들을 가진 가장은 국민학교 영어 선생이지만 정규 교사가 아니고 시간제 교사로 하루에 2-3시간씩 근무하여 한 달에 받는 봉급이 세금 제하고 35천 실링이니 미화  18불정도이다. 아내도 일 안하고 집에서 애들만 키우는데 그 돈으로 어떻게 생활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씩 웃고 고개만 숙였다. 그 다음 이야기가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기 때문에 주거비용은 없지만 큰 애 일년 학비를 25천실링 내는데 큰 부담이란다. 옛날 우리 국민학교 다닐 때 기성회비하고 비슷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 때도 한국은 무상교육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여기 아프리카로 올라 오면서 물어보니 여기도 아직도 무상교육이 안되어 자녀들의 몇푼 안되는 교육비로 서민들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나도 무척이나 갑갑했다. 구름도 무심하게 봉우리 위에 걸텨 앉아있고 가이드 친구는 암울한 이야기로 내 가슴만 쓸어 내리게 하고.....


5시 18분경 킬리 주봉 우후루 근처의 구름이 조금 걷혔다. 주봉 근처에는 아직도 눈덩어리가 하얗게 남아있다. 가이드말로 겨울에는 봉우리 전체가 하얗게 눈에 덮여 있다고 한다. 잠깐 봉우리 정상을 보여 주더니 금방 다른 구름이 몰려와 정상을 덮여 버렸다. 내일 나이로비행 비행기가 오후인데 내일 아침에 마랑구또니로 한번 더 올라와야 할지, 또 온다해도 정상에 구름이 걷힐지 그것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깐 주봉 우후루의 정상에 구름이 걷혔다


잠깐 주봉 모습만 보여주고 다시 구름에 덮였다

안나푸르나도 항상 정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높은 산일수록 구름에 잠기는 횟수가 높다. 한 시간 더 기다려도 정상은 커녕 구름이 산 아래쪽으로 번져 내려온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착한 가이드도 내게 해맑은 킬리 정상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마치 가난하게 사는게 가이드 잘못이 아닌 것처럼 구름없는 정상을 못보여 주는 것도 가이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이드 얼굴 표정에는 미안해 하는 것이 역력하게 보였다.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올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 나도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려 버렸다. 킬리만자로 산사진을 못 찍는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없다. 단지 조금 서운할 뿐이다.



구름에 쌓인 킬리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가이드

예전에 서울대 수석 입학한 매우 가난한 집안의 수재가 이런 명언을 신문 인터뷰에서 남겼다."가난은 결코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단지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할 뿐이다." 어둑한 전망대에서 내려 오면서 갑자기 이 말이 생각이 나서 이 가난하고 착한 가이드에게 멋지게 말해 주고 싶었으나 이런 말을 씨잘데없이 해줌으로써 가이드를 더욱 더 쪽팔리게 하는 것 같아 집어치우고 오늘 일당으로 가이드 한 달 학교봉급에다 오천 실링 더 얹어 주고 잘가라고 손을 놓고 어둠 속으로 돌아서 가는 가이드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 통털어 제일 많이 버껴진 주봉 우후루(5895m) 모습.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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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편 24 - 한 편의 연극은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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