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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May 13.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아프리카편 24

한 편의 연극은 끝나고

2015년 11월16일(월) 아침 흐리고 오후 맑음


아침 5시에 눈을 떴다. 밤새 불을 켜놓고 잤더니 아침에 침대에서 누운 채로 눈을 뜨니 어제 저녁에 잠자리에 든 그때처럼 시간이 그대로 정지된 것 같았다. 오늘이 11/16일로 저녁에 케냐 나이로비에서 런던행 뱅기를 타야 런던에서 필라델피아로 가고, 또 다시 노폭으로 가는 뱅기로 갈아타야 겨우 17일 오후에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다. 먼 길을 돌아 가야한다.




   마랑구또니로 다시 갈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니 하늘이 온통 잿빛이다. 다시 전망대로 가려면 아침 6시 첫버스를 타야한다. 해가 나오면 가보고 날이 흐리면 가보았자 소용없으니 접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6시가 넘어서도 아침해가 구름 속에 파묻혀 하늘이 온통 흐리멍텅하다. 혹시나 싶어 옆 호텔 옥상으로 올라 가 보았더니 킬리가 역시 구름 속에 파묻혀 있다.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옥상에서 내려왔다. 카운터에서 일하던 현지인이 오늘 비온다고 좋아한다. 내가 물어보았다 비 오면 좋냐고 그랬더니 남의 속도 모르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비가 오면 시원해서 좋지요 하길래 맞다 니 말이 맨날 더운데 하루쯤 비가 오면 좋겠지 그런데 하필 오늘 비가 올게 뭐람.




   킬리만자로 국제 공항으로


사파리 전초기지인 Arusa에서 킬리 등정의 전초 기지인 Moshi 까지 약 80km 떨어져 있다. 그 중간쯤 되는 곳에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이 있어 인근 국가로 가는 비행기가 운행한다. 여기서 오후 5시에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 모쉬에서 아루사가는 큰 버스를 타고 국제 공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내렸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버스에서 내린 바로 그 앞에 음료수파는 가게가 있어 무거운 배낭과 끝낭을 야외 탁자에 올려놓고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시고 시간이나 죽이려고 어제 기행문을 몇 자 두드리고 있었다. 그 때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몸집이 푸짐한 현지인 여자가 내가 앉은 테이블에 의자를 댕겨 바로 내 앞에 앉으면서 내 손을 다정스레 잡으면서 어눌한 영어로 Tell me.... Tell me 하면서 아는체 하길래 내가 다시 영어로 되물었다. 무슨 이바구 해달라고 그러는데 그렇게 되물어 보니까 그냥 내가 누군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나그네인지 그런 애기를 해달라는 것이다.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인지 감을 못잡고 있는데 이번에는 키가 작딸막하고 몸집이 다소 있어뵈는 현지인 여자가 "잠보"하면서 내 옆에 앉는다. "잠보"는 여기 현지어인 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다. "맘보"라는 말은 영어의 "How are you"로 둘 다 ‘보'자로 끝나는 인사말이다. 이 여자는 영어가 제법 능숙하다. 간단하게 신고식을 했다. 미국에서 휴가차 4주동안 아프리카로 와서 몇군데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 가는 중이라고 그렇게  이실직고했다.



킬리 국제공항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버스 정류장


마을을 돌아 다니는 마사이족들의 당나귀. 이 당나귀로 짐을 나르고 물병도 싣어 나르고 해서 놀리는 말로 당나귀를 "마사이의 랜드로버"라 한다.




   사연도 많은 탄자니아 민초들의 사연들


영어가 능숙한 그녀의 이름은 키넷세르로 방년 35세이고 내 손을 꼭잡고 무슨 이야기든 해달라고 조른 그녀는 글로리아로 역시 35살이다. 키넷세르는 케냐에서 출생하여 국적이 케냐인데 탄자니아로 이주해서 여기 국적도 취득하여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부터 여기에 Hair Salon을 오픈하여 현재는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데, 자기는 주인은 아니고 친구의 돈많은 남자친구가 투자하여 가게를 연 것이라고 한다.



그녀의 미용실 가게

케냐에서 결혼하였으나 남자가 성실치 못해 헤어지고 이리로 온 것이라고 한다. 미장원 가게 월세를 물어봤더니 십만실링(미화 50불)이고 서비스 수수료는 보통 머리 Cut 하는데는 이천실링(미화 1불)이고 염색이나 비드머리(머리를 몇가닥씩 꼬아 끝에 비드를 다는 흑인머리) 같은 손길이 많이 가는 것은 좀 더 받는다고 한다. 너도 동업하는 너그 친구처럼 돈많은 남친은 없냐고 했더니 빙긋이 웃어면서 지 팔자에 그런 행운은 별로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미용사 하기 전에는 호텔에서 일을 하여 수입이 괜찮았는데 자기 보스가 잠자리를 요구하길래 거절했더니 짤렸다고 하면서, 일은 일이고 사랑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어떻게 그런걸 요구할 수 있냐면서 상당히 분개하였다. 그래도 그런 정당하지 못한 상관의 요구에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NO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에 속으로 찬사를 보내면서 그냥 한마디만 거들었다.

“니 억수로 쎄네. "



글로리아(왼쪽)와 미용사 키넷세르로




   아프리카의 미혼모들


어제 킬리만자로 사진을 찍기위해 응강구 전망대에 올랐더니 벤치에 현지인 여자애와 남자애가 있어 킬리도 구름에 싸여 사진도 찍기 어려워 그냥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하였다. 여자는 22살로 딕나라 하고 남자애는 동생으로 임마누엘이라고 15살이다. 딕나의 영어 수준은 초보로 몇 마디는 하지만 완전하게 의사 전달은 안된다. 옆에 가이드가 있으니까 그런 부분은 가이드가 통역을 해 주었다. 전에는 병원에서 간호 보조로 일을 했는데 지금은 임신 8개월로 배가 남산만 하여 출산만 기다리고 있다. 애 아빠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냥 배시시 웃기만 하였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조금은 알아듣는다. 조그만 더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구해야지 하니까 가이드말에 의하면 영어학원이 있는데 수강료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려면 책이라도 사서 혼자 독학이라도 영어공부를 하면되지하니까 농담인지 진담이지 통역(가이드)이 말하기로 책사서 공부하게 책값 좀 보태달라고 하길래 내가 마랑구또니 애들 전부 영어공부하게 집집마다 영어책 사줄만한 형편은 안된다고 하였다. 아마 딕나의 말을 가이드가 통역해 준 것 같았다. 점심먹으러 가이드와 같이 내려와서 마을 가게에서 딕나와 동생에게 콜라 한 병씩 사주고 헤어졌다.



딕나와 임마누엘

모잠비크 Pemba에서 마지막 날이었다. 돌핀투어가 갑자기 취소되어 할 일이 없어지자 카메라만 매고 걸어서 시내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어느 마을 어귀에 아이스박스를 두 개 놓아두고 장사를 하는 십대 애들이 서너명 있어 무얼파는지 궁금해서 다가갔다. 박스를 열어 속을 보니 조그마한 비닐 봉지에 하얀 우유빛 액체가 얼음과 함께 들어 있어 매우 시원하게 보여 서너개 마셨는데 집에서 만든 야구르트였다. 동네 애들 서너명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들 십대들로 어려보였다. 그 중 몸이 좀 통통한 여자애가 애기를 앞으로 안고 있었다. 애기는 배가 고픈지 찡찡대며 엄마 가슴을 손으로 헤치자 엄마가 가슴을 풀어 커다란 젖을 꺼내 애기에게 젖을 물리자 애기가 조용해졌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애가 없어 그냥 십대 엄마의 나이를 물었더니 저그끼리 수근거리더니 내 질문을 이해하였던 모양이었다. 애기 엄마는 이제 열일곱살이라고 하였다.



Pemba 시골 마을

킬리만자로 국제공항 근처 마을이름이 키아라고 하였다. 별로 큰 마을은 아니고 고만고만한 마을들이 군데군데 있는 모양이다. 변화가 없는 너무나 뻔한 일상에서 나하고 '농담따묵기' 수준의 대화가 재미가 있었는지 그럭저럭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사진이라도 한 장 뽑아줄려고 사진찍자 했더니 누구를 손짓하며 부른다. 조그마한 애기를 안고 키가 큰 젊은 새댁이 사진찍자하니까 온 것이다. 애기는 이제 6개월이라는데 몸집과 다리통이 돌을 넘긴 애들보다 더 크고 튼튼하였다. 이름은 크리스티안이고 애엄마는 23살 프레디리즈로 그냥 면티 한 장 걸치고도 눈에 띄는 그런 키가 훤칠한 미인이다. Baba(현지어로 애아빠)는 뭐 하는데 하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애엄마가 무슨 동정녀 마리아도 아니고 혼자서 무슨 재주로 애를 놓는다는 이야기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 때 크리스티안이 배가 고픈지 칭얼거리니까 아 글쎄 글로리아가 내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큰 젖가슴을 한쪽 꺼집어 내더니 젖을 물리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당황하는 쪽은 내 쪽으로 순간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난감했었다. 심봉사가 청이 어렸을 때 젖동냥하러 이집 저집으로 다녔듯이 크리스티안 애엄마도 그러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애가 귀여우니까 글로리아가 그냥 젖을 물린 것 같았다.



크리스티안과 프레디리즈

이렇게 몇군데 다니면서 이런 어린 나이의 미혼모들을 볼 수 있는데 그래도 한가지 마음에 드는 것은 젖무덤이 크던 작던간에 애엄마가 애기에게 본인의 젖을 물린다는 것이다. 즉, 어떤 사유로 미혼모가 되었던간에 소위 말하는 "지새끼"는 본인이 끼고 살아 가는 데가 지지리도 못사는 여기 아프리카 미혼모들이다. 그래서 수잔 브링크나 김현옥같은 입양아들이 이런 나라에서는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OECD에 가입하여 어깨에 힘좀 줄려고 하는 대한민국이 영아 수출에서는 여전히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는데 하루 빨리 이런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벗어 버리기를 기대한다.





   에필로그


또 한 편의 연극은 끝났다. 무대에 불이 꺼지고 내려가야 한다. 인생이 이렇듯 잘 짜여진 연극과 흡사하다. 모두 각자가 자기 연극을 연기하는 주인공이다. 혹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주인공이 될 수 있고, 혹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알려진 주인공이던 그대로 불이 꺼지는 연극의 주인공이던 모두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연기하며 살아 가는 것은 똑같다. 인생이란 이렇게 각각 주어진 시간의 길이는 다를지라도 언젠가는 무대에 불이 꺼지고 쓸쓸하게 퇴장하도록 되어 있다.


이제 4주짜리 연극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간다. 연출이 부족해서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본인의 능력 부족이다. 이국의 멋진 풍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특히 사진도) 항상 되씹어보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책에서나 다큐에서 보았던 그런 새로운 곳에 가서 보면 사람들이 복작거리며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세계 여행의 출발은 수려한 경치나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 떠나는 것보다 그곳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보아야 진정한 여행의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그렇게 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지만 항상 만족한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간편한 프린트덕분에 현지인들에게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모잠비크 Pemba의 시골 아이들에게 조그마한 명함판 사진 한 장씩 쥐어줄 때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는 것이, 그리고 그런 꾸지지한 차림의 아이들과 인증샷 찍는 것이 어쩌면 이름난 유네스코 지정 유적지가서 밋밋한 인증샷 남기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Pemba 시골의 동네 아이들


잔지바르섬에서 만난 "아프리카의 미소"




   배낭여행을 떠나자


여행이 항상 재미만 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지치고 현지의 열악한 환경에 적응못하고, 초원의 하이에나처럼 이방인을 노리는 집단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게 싫고 무서우면 여행사 팩키지 상품을 이용하면 된다. 현지에 도착하면 예약된 관광회사에서 버스나 택시로 호텔에 데려다 주고 일정대로 관광버스 타고 가서 구경하고 식당에 데려가서 밥먹여주고 인증샷 찍고 돌아오면 된다. 자기 좋은 방식대로 여행을 즐기면 된다. 그러나, 배낭 여행은 그런 것들을 멀리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고 힘은 들더라도 본인이 여행에서 느끼는 희열은 배가 된다. 그래서 아직까지 배낭여행을 시도하지 못한 사람들은 겁먹지 말고 천천히 한발 한발 나가다 보면 재미도 느끼고 언젠가는 무림 강호의 고수처럼 배낭여행의 고수가 되어 우리들에게 아주 무궁무진한 여행 정보를 날려보내 줄 것을 기대해본다.

배낭 여행중의 졸렬한 여행기에 끊임없는 댓글로 용기를 준 여러 친구들과 새로운 밴드 멤버들의 따뜻한 한마디가 항상 힘이 되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 연극의 시나리오를 시간나는대로 각색하여 언제 떠날지는 몰라도 잘 준비하려고 한다. 내 마음은 항상 저 멀고 험한 세계의 길 위에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걸어 가고 있다. (끝) -JH-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상). 나이로비행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킬리 여신의 마지막 모습. 그렇게 비나리를 외쳐도 외면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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