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아프리카로
<오늘부터 조금 따끈한 여행기를 올리고자 한다. 2015년 10/21일부터 11/17일까지 약 4주간 아프리카 남동부를 배낭여행한 여행기다. 남의 여행기가 뭐 그리 썩 재미가 있겠냐마는도 혹 이곳으로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이나 정보가 필요하신 분에게는 길라잡이로 되었으면 좋겠다. 개발새발로 쓴 여행기록과 그곳의 풍광을 담은 사진들이 여러분에게 아프리카 이국의 정취를 불러일으켜 잠시나마 일상의 따분함을 잊게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0/21/2015(수) 맑음
드디어 동물의 낙원 아프리카로 떠나는 날이다. 미국 버지니아 노폭 공항에서 오후 6시 25분 American Airline으로 필라델피아로로 가서 British Airline 국제선으로 갈아 타서 London으로 가고, 런던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가서 다시 South African Airline으로 갈아타고 목적지인 Cape Town에 도착하게 된다. 이번 배낭여행이 지금까지의 배낭여행중 아마도 거리상으로 제일 멀리 가는 것 같다.
길을 떠날 때 마다 새삼스레이 느끼는 것이지만 현업에서 일을 하면서 시간 짬을 내어 배낭여행을 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남들 보기에는 내가 쉽게 쉽게 어디로 갔다 오는 것 같이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회계사로서 제일 한가한 철을 골라 가지만 가만 있다가도 무슨 머피의 법칙처럼 어디 갈려고 하면 무슨 일이 빵빵 터지곤 한다. 그런 급한 일들을 다 해놓고 가야 하기 때문에 배낭 꾸리는 시간은 항상 마지막 당일 날 저녁이나 새벽에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니, 배낭매고 공항에 가면 출발 전부터 기진맥진해진다. 그러니까,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은 완전히 현업에서 손을 떼고 은퇴하여 완전 백수로서 마음편하게 배낭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것도 아주 길게 멀리 돌아올 기약도 없이 가는 걸로 말이야.
비행기타러 갈 때 마다 제일 성가신게 Security Check 통과하는 일이다. 여러 군데를 다녀보니까 세계적으로 통일된 Security System이 없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떤 공항에서는 신발을 벗게 하고, 또 어떤 공항에서는 신발은 벗기지 않지만 혁대를 풀어야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노트북을 별도로 검사하기도 해서 체크하는 방식이 나라마다 각양각색이다. 이렇게 성가신 보안검사를 끝내고 벗은 신발끈을 다시 조여매고 혁대풀어 흘러내린 바지춤을 올리고 빼놓은 노트북을 다시 챙겨 넣으면서도 Check point를 통과하면 그래도 기분은 산뜻해진다. 마치 내가 아무 죄도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서 다시 부활하는 그런 새로운 인간이 되는 것 같다. 실상은 그게 아닌데도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지은 죄를 말할 것 같은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각 백리나 되는 그런 입방체에 죄목 하나하나를 겨자씨 하나에 적어 넣어도 꽉 찰 정도로 죄가 많을텐데 고작 보안검사대를 통과한다해서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난 언제든지 배낭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하게 오후 6시 25분에 노폭을 이륙해서 필라에는 1시간 뒤인 7시 27분에 도착했다. 잠시 그냥 조불다가 깨다가 하다보니 비행기는 필라에 내려 앉았다. 시간표를 보니 London 행 비행기는 British Airline으로 저녁 10시에 출발한다. 국내선 터미날에서 버스로 국제선 터미날로 이동해서 BA 게이트를 찾아 가는데 바로 찾지 못하고 한번 헤매다가 겨우 찾았는데 여기는 국제선 전용터미날이 아니고 국내선도 있어 헤깔려서 물어물어 찾아 갔다.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카매라 두대를 가방에 넣어 들고 다녔는데 카매라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이렇게 들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공항 매점에서 조그만 배낭 겸용되는 끌낭을 하나 사서 카매라를 넣어 끌고 다니니까 엄청 몸이 가뿐해진다.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서 돌아오는 스케줄을 보려고 프린트해놓은 카피를 찾아보니 집에 놓아두고 그냥 온 것 같았다. 이매일을 체크해보니 프린트하고 난 뒤에 지워버린 것 같다. 다른 방도가 없어 공항 안내로 가서 이름을 대고 나의 비행 세부 예약 스케줄을 찾아 달라고 했더니 공항 컴퓨터 시스템에서 세끼줄에 꿰놓은 굴비 다발처럼 줄줄이 달려나온다. 아마도 범죄자들이 비행기로 세계 어디로 도망치더라도 추적이 가능한 모양이다. 그래서 또 한번 돌아오는 비행기 스케줄로 가슴졸였던 근심이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두루뭉실하게 날아가버렸다.
원래 10시에 출발하게 되어있던 비행기가 약 22분 연착해서 런던으로 향하였다. 자리를 꽉채우지 못하고 군데군데 빈 자리가 눈에 띄는 걸로 봐서 지금은 성수기는 아닌 모양이다. 이륙하자마자 곧 기내식을 주길래 오늘의 늦은 저녁으로 Chicken With Rice를 맛있게 먹고나서 히드로공항을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로부터 하루도 틀리지 않는 꼭 6년전인 2009년 10월 21일에 그 때는 미국 디트로이트를 출발해서 런던 히드로공항에 내린 일이 생각난다. 그 때는 장기 배낭여행으로 그해 12월 10일에 돌아왔으니 약 47일간을 유럽 전역을 렌트한 필마로 돌아 다닌 셈이다. 그런데 그 첫번째 입국 장소가 바로 런던 히드로공항으로 이민국 통과하는데 약 20분(줄서고 기다리는 대기시간은 제외하고 순전히 인터뷰 시간만 쳐서)이 걸렸던 악몽같은 추억이 있던 장소이다. 당시만해도 유럽은 EU로 통합되어 입국심사가 없이 유럽 국경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때였지만 유독 영국은 입국심사를 엄격하게 하고 있었다. 당시 공사중으로 지붕이 내려 앉은 히드로공항 입국 심사장에서 검은 머리칼을 길게 길러 어깨춤까지 늘어뜨린 조금은 띵띵한 인도 처자가 나를 잡고 매몰차게 질문을 날렸다. 입국심사장은 항상 사람들로 만원으로 심사를 기다리는 줄이 마치 뱀 뙤아리처럼 이리저리 구비쳐 줄을 이루고 있었는데도 이 인도 처자는 그런건 아랑곳 하지않고 내가 장기 배낭하는게 배가 아픈지 나를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당시의 처절한 입국심사 받는 장면을 기억을 더듬어 어설픈 소설체로 다시 써 내려가면 다음과 같다.
런던 히드로공항에서(2009.10.21)
입국 심사장으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각국에서 히드로공항에 내려앉은 비행기로부터 승객들이 모여드니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유럽이 통합되어 나라들 왕래가 자유롭다고 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심사관들을 한 명 씩 관찰해보니 전부 인도인이다. 내 차례가 되어 심사관 앞으로 갔더니 검은 머리를 길게 어깨까지 늘어뜨린 인도 처자이다. 조금은 똥실하게 살이 올라 약간은 띵띵하게 보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심사관이 특유의 인도발음으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한다. 여권을 쥐고 나를 한번 힐끈 쳐다 보면서 물었다.
“미국서 직업이 뭐예요?”
“회계사로 밥먹고 살아요.” 별로 발음이 좋지도 않은 경상도 억양의 미국식 영어로 대답해주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짜가 언제지요?”
“12월 10일” 오래 논다고 폼잡으면서 니는 이렇게 오래 못 놀제하고 말해주는 그런 기분으로 거들먹거리면서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랬더니 인도 처자가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든다.
“회사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장기간으로 여행하는게 가능합니까?” 그렇구나, 내가 회계사무소 운영한다고 니한테 말을 아직 해주지 않았구나.
“그건 내가 사무실 운영하니까 내 없어도 직원들이 잘 하니까 별 문제없어야.”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른 질문으로 나를 코너로 슬슬 몰아가기 시작하였다.
“47일동안 어디어디 구경할거예요?” 점점 나도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구경이나 내 맘 꼴리는대로 아무데나 보고가면되지 니한테 미주알고주알 일러주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약간은 투명스럽게 되받았다.
“런던만 며칠 보고나서 지중해따라 가면서 이곳 저곳 구경할끼다.”
“그래요. 여행경비로 얼마나 갖고 오셨지요?” 이 질문에 내가 조금은 당황해진다. 현찰은 몇 천불 들고 왔지만 그걸로 부족하다고 돌려 보낼려고 그러는지 이 처자의 속내가 갈수록 궁금해진다.
“현금 좀 들고 왔어. 부족하면 크레딧 카드있으니 경비는 별 문제없어야.” 자꾸 질문이 길어지니까 뒤를 돌아다보니 내 뒤로 나래비(줄) 서있던 사람들이 그녀와 나의 일문일답에 귀를 쫑끗 세우며 집중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내 자존심이 누런 메주에 푸른 곰팡이 쓸듯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쪽이 팔리는 기분이 서서이 들기 시작하였다. 내 뒤로 길게 늘어진 줄에 서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전부 나의 뒷꼭지만 바라보면서 저 누런 동양인때문에 줄이 줄지 않는다고 무언의 항의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나의 기분도 이제는 상할대로 상해 뜨거운 한증막의 수중기처럼 끊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인도 처자는 다행히 들고 온 현찰보자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 넓은 지중해 지역을 어떻게 구경하실려우?” 이번에는 여행의 방법에 대해서 논하는 모양이다. 나의 얼굴 표정도 이제는 곱지도 않고 말투도 아주 시건방지게 그런 톤으로 변해 갔다.
“걱정마. 차를 렌트 예약해 놓았어.” 빚독촉하러 온 년에게 대하듯 아주 쌀쌀맞게 맞받아쳤다.
“렌트 예약한 서류 좀 보여 주세요.” 이제는 하나 하나 확인해 보겠다는 심사인 모양이다. 나래비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배낭을 열어 렌트 예약 서류를 보여 주었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뱅기표까지 보여 달라고 한다. 나도 서류만 보여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만 짜증나는게 아니겠지. 내 뒤에서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도 긴 한숨을 쉬고 있겠지만 그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냥 한 동양인 녀석때문에 자기들이 피해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다르게는 상상할 수도 없을거다. 심사관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면서 입국 도장을 찍어 여권을 돌려준다.
“47일동안에는 관광이나 여행만 하시지 취업이나 아르바이트같은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여권을 낚아채면서 그녀 질문에 한다 안한다 말도 하지 않고 배낭을 둘쳐매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바로 차를 렌트해서 런던 어느 곳에도 들러지 않고 도버 해저터널을 통과하는 기차에 차를 싣고 런던을 떠나버렸다. 그 후 다시는 런던에 가지 않을거라고 다짐을 했는데 오늘 6년만에 다시 히드로 공항에 내린다. 오늘은 연결편으로 빠지니까 입국 심사장으로 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6년전의 일이 머리속에 떠오르는게 히드로 공항의 추억은 그 어느 다른 추억보다 조금 씁쓰럼하다. 곧 공항에 착륙한다고 기내 방송이 알려준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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