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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May 27.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네팔 중국편 2

카트만두 시내관광

카트만두 시내 관광(1)


2013년 4월 22일( 월) 맑음


타멜거리로 여행자가 모이는 곳이다

카트만두 시내에 "타멜거리"라는 곳이 있는데 여행자 특히 배낭족들의 집결 장소다. 그러다 보니 게스트하우스가 여기에 다 모여있고 한집 건너 트레킹가이드, 번지점프, 정글코끼리 사파리등을 알선하는 여행사들이 영업하고 있다. 어제밤 하루 저녁은 예약한 호텔에서 자고 둘째 날은 예약 취소하고 따뜻한 밥집이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방을 옮겼다. 당분간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면서 티벳 그룹투어 합류할 곳을 찾아 봐야 한다. 나의 네팔 경유는 티벳을 가기위한 전초기지로 카트만두에서 그런 그룹을 찾아서 합류하려고 한 것이었다.



새로 옮긴 카트만두 게스트하우스




  네팔의 역사


네팔의 민족은 아시아의 몽고족과 인도의 원주민 아리아인 사이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중국과 인도의 교역로 역활을 하였다. 히말라야 산맥 경계로 인도에 근접하여 언어나

종교들이 인도의 영향을 크게 받아 국민의 85% 이상이 힌두교도들이다. 예전에는 고대 북인도 왕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서기 1200부터 550년간 네팔의 말라왕조가 찬란한 네팔 문화를 꽃피웠다. 이 시기가 네팔 전통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핀 시기로 많은 문화 유적지도 이 시기에 남겨진 것이었다. 말라왕조 말기에는 왕국이 세 개로 분열되었는데 카트만두, 박타푸르, 파탄 이렇게 소왕국으로 갈라져 우리의 삼국시대 비슷한 그런 형태로 유지되면서 각자의 예술과 문화를 서로 경쟁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3국의 소왕국이 18세기 중반에 강력한 고르카 왕국에 의하여 재통일되어 현재의 영토에 이른다. [세계에서 제일 용감무쌍한 용병이 바로 이 왕국 출신인 "쿠르카 용병"으로 현재 각지에서 용병으로 활약한다.] 이 무렵 인도에서는 영국의 식민 정책이 진행되어 불가피하게 영국과 네팔이

1815-1816년 전쟁을 하여 네팔이 지게되자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지만 인도와는 달리 1923년 영국과 맺은 우호협정으로 독자적인 왕정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새 왕조인 Rana 왕조가 근 250년간 유지되다가 2007년이 되어서야 왕정이 없어지고 선거로 현재의 민주 공화국으로 나아갔다.





  옛 왕궁거리로


카트만두 Durbar 광장에 있는 사원들

일단 시내관광부터 하기로 하고  아침을 먹고 DURBAR   (뜻이 왕궁) 광장으로 가이드 한 명을 데리고 나갔다. 옛날 왕정시대 건물이 모여 있는 곳으로 타멜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일단 엄치 복작거린다. 관광객에다 현지인들까지 같이 몰리다 보니 번잡스러운데 게다가 동물들까지 끼여드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네팔의 흰두교 사원


전부 흰두교 사원이다. 뭘 외우기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기독교가 제일이다. 왜냐하면 흰두교나 불교는 주신이나 수호신들이 너무 많아 암기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 가 보지 못한 인도 풍경을 여기 네팔에서 보는 것 같다. 네팔 국민의 85%가 흰두교인이라고 하니 여기가 인도와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비둘기 수가 사람 수를 훨씬 능가하는 것 같다.


비둘기 먹이를 보시하는 현지인


소들은 사원앞에 여기저기에 들누워있고 비둘기 먹이 보시는 얼마나 하는지 통통하게 살찐 비둘기 수가 사람 머리수보다 많다. 가축과 새들과 사람들이 다정하게 공존하는 곳으로 처음으로 접하는 광경에 상당히 의아해 하였다.


공양에 열심인 현지인


거리에 마련된 제단에서 무엇인가 빌고있다

힌두교도들의 숭배 의식은 거의 광신적이다. 제단이 이곳 저곳 어디에나 있고 그냥 길을 오다 가다 사원만 보면 절하고 간다. 종교 의식이 일상 생활 속에서 그대로 살아 있는 것 같다. 하루에 5번 기도하는 무슬렘교인도 여기에 비하면 별거 아닌 것 같다. 생활 속의 종교가 바로 힌두교같이 눈에 비친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대우를 받고있는 우공.


차도로를 배회하는 소떼들


소들은 버젓이 도로 한 가운데를 걸어 다니는데 보행자나 운전자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 눈에는 비싼 소고기 고깃덩어리가 걍  할일없이 길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소나 송아지 임자도 없고 누구 하나 길에서 쫓아 내는 사람도 없다. 그야말로 소들의 천국이다. 그러나, 가이드가 알려주는데 비힌두교인들이 저렇게 돌아 다니는 가축을 몰래 도축하여 식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힌두교인이 쇠고기를 안 먹는 이유


Shiva 가족들

힌두교 주삼신중 제일 끝발이  Shiva신이 두번째 파슈파티와 아들 가네쉬와 포즈를 취한다. 아들 가네쉬 머리가 코끼리인 사유는 이렇다. 엄마 파슈파티가 목욕을 하려고 아들에게 일렀다.  밖에서 지키고 있다 아무도 들여 보내지마라고 엄명을 주었다. 천진난만한 아들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길을 떠났던 아부지 쉬바가 마침   돌아와서 집으로 들어 가려고 하니 아부지를  알아본 아들이(아마 기러기 가족처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아저씨, 들어 가면 안되요하고 문을 막아 섰다. 그러자 성질급한 쉬바가 내가 누군데  집에 못들어가 하면서 단칼에 아들 머리를 쳤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파슈파티가 목짤린 아들을 보고 남편에게 아들 살려내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자 황당했던 쉬바가 마침 지나가는 코끼리 목을 따서 아들 머리에 붙여 아들을 살려 내게 되었다고 한다. 가네쉬는 재물 복을 갖다 주는 신으로 힌두교인의 사랑을 받는다.



쉬바의 전용 자가용 황소 Nandi

Nandi라는 황소는 Shiva가 타고 다니는 자가용이다. 단지 그런 이유로 힌두교인들은 소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고 황소를 신성시한다. 그러나, 암소나 거세된 숫소는 농경민족이다보니 밭갈이등 농삿일에는 부려 먹는다고 한다.



주로 색색으로 엮은 꽃들을 Shiva 에게 바치는데 벌건 핏자국 비슷한 색소가 신상에 남아 있고 힌두교인들은 그걸 이마에 바르고 다닌다. 이를 빈디(Bindi)라고 하는데 이렇게 남녀가 양미간 중앙에 찍어 바르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힌두교에서 "차크라"라고 해서 양미간의 중심이 "에너지"를 모으는 곳으로 원래는 신에게 올린 동물을 죽여 그 피를 이마에 발랐는데 이는 신이 내린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다른 설에는 여자들이 이마 중앙에 Bindi를 하는 이유는 결혼했슴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남자들도 전부 Bindi를 하는거 보면 "신이 내린 축복"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것 같다.



왕궁광장의 오래된 사원

사원들이 절하고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흰두교와 불교의 어느정도 절충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수많은 비둘기는 여기 저기 사원 지붕까지 차지 하고 있다

.


왕궁 사원의 지붕 처마밑에는 통통한 비둘기로 만원이다

이 거리에 이런 옛날 유적이 남아있는 이유가 여기가 카트만두 왕국의 도읍지인 까닭으로 이런 건물들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네팔로 통일되기 전까지는 카트만두, 박타푸르, 파탄 세개의 소왕국으로 형성되어 각자의 지역에서 번성하였다고 한다.



창문의 정교한 문양으로 전부 나무로 조각한 것이다. 나무를 다루는 빼어난 그들의 솜씨가 돋보이는 유적이다. 위에 있는 사진들도 역시 나무에 조각한 문양들로 돌에 조각하는 것보다는 쉽게지만 자세히보면 매우 정교하다.



이런 사원이나 왕궁 건물을 자세히 보면 창문틀이나 사찰 현판등은 전부 목재로 되어 있는데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조각된 것들은 아주 섬세하여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인지 이 카트만두의 특산물이 나무 조각 공예품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위사진과 같은 나무 탈을 파는 상점들이 줄줄이 있다.



왼쪽의 하얀 건물은 옛 왕정시대에 세워진 현대식 건물로 주로 영국 식민지 통치하에 있던 시절에 받아들인 유럽식 건물이다.





  어린 꾸마리 여신


꾸마리 여신이 거주하는 꾸마리 사원

위 사진 꾸마리사원이란 곳에는 살아있는 여신 꾸마리가 거주한다. 상징적인 여신인데 예언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는데 놀랍게도 어린 여자아이란다. 연령 5-8세 사이에 여러가지 엄격한 기준을 거쳐 선발되어 이곳에서 거주하며 하루 오후 4시경에 관람객을 위하여 얼굴을 보여 주는데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단다.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지내는데 초경을 하여 피를 보게되면 꾸마리 자격을 상실하여 속세로 다시 돌아 와야 하는데 대부분 그런 꾸마리들의 노후가 불행하다고 한다. 이유가 그런 꾸마리는 타고난 사주 팔자가 사나워서 그녀와 결혼한 남자의 명이 짧아진다나.  이와 비슷한 이바구를 책에서 봤는데 여성 차별의 시발이 유대교와 기독교로부터 출발되었다는데 그 이유가 여자들의 월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피를 보는 것이 부정하다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한다. Kumari 뜻이 "살아있는 여신"을

말하는 모양이다.



꾸마리 사원 내부 모습


꾸마리사진 중 가운데가 현재의 꾸마리란다.


꾸마리사원을 지나 만나는 광장

꾸마리 사원을 한번 둘러보고 왼쪽으로 돌아 나오면 넓은 광장이 나온다. 여기도 예전에는 왕궁의 일부분 이었는데 지금은 시민들의 자유광장이 되었다. 아까 본 비둘기와 소들과 사람들로 번잡스러웠던 곳보다는 조용하다. 대개 여기까지가 카트만두 왕국의 옛 왕궁거리 관광 코스이다.



나무로 지은 삼층 사원


나무로 축조된 사원


왕궁광장에 세워진 탑으로 기도하는 왕모습이 여러 비둘기와 섞여있다


기도하는 왕


다른 탑으로  얼굴 형상이 뭉게져 날아갔다


쉬바 전용 자가용에도 꽃다발 증정

종일토록 보고 사진찍어 보지만 우찌보면 전부 비슷한거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것이 흰두교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그런것같다. 아는 것이 힘인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진 찍으려 하니 힘이 든다.

더 힘든 사실은 티벳 그룹여행인데 얼마전부터 중국 당국이 요건을 바꾸는 바람에 이것도 힘들다. 예전에는 그룹으로 2명 이상이면 국적에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동일 국적으로 2명이상 신청해야 된다고 하니 미국놈 그룹에 들어 가야 신청할 수 있는데 아직 그런 그룹을 찾지 못했다. 티벳여행에 서서히 먹구름이 끼이는 것 같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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