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빨래, 오페라 가르니에, 그랑드 아르슈
2010년 12월 8일(수) 맑음
그랑빨래(Grand Palaise)
1900년 빠리 만국 박람회 목적으로 건축한 박물관 및 전시장으로 전체 지붕을 전부 유리와 철제로 만든 것이 유명하다. 여기에 소요된 유리 무게가 에펠탑 전체 철근 무게보다 500톤이 많은 8500톤이라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 건물의 지하를 빠리 경찰서 본부가 임차하고 있다고 한다.
말이 끄는 마차상 조각이 건물 4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 한 달간 Bvlgari에서 보석 전시를 하는 모양이다. 파리의 여자들이 다 몰려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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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옆으로 하도 길어서 광각렌즈로도 한 폭에 담을 수가 없어 좌우 중앙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담았다
이게 건물 왼편 부분이고
이게 건물의 중앙 부분
이게 건물의 오른쪽 전경이다.
그랑빨래 내부 모습
쁘띠빨래(Peti Palais)
여자들의 작은 옷 사이즈를 프티라고 하는데 불어에서 온 말이다. 그래서 그랑빨래(Grand Palais)나 쁘띠빨래(Peti Palais)를 구태여 조선말로 옮긴다면 대궁 또는 소궁 정도 될 것 같다.
그랑 빨래 한 블락 길 건너편에 있는, 역시 1900년 만국 박람회 전시장으로 건축한 건물이다. 현재도 주얼리, 시계, 회화 및 조각품 등을 전시하는데 17, 18, 19세기 별로 구분해서 전시하고 있다.
쁘띠빨래 출입구
정문 옆에 놓인 두 조각상을 확대해서 보면
정면 출입구 양쪽으로 나체 조각상 두 점이 빌딩을 지키고 있다. 벌거벗은 나체로 조각상틀 만들어야 우아해 보이는 것일까?
건물 옆에 영국 처어칠 수상의 동상이 서 있었다. 왜 그가 여기 쁘띠빨래에 서 있는지?
오페라 가르니에(Opera National de Paris Garnier)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은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 프랑스 빠리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Opéra Garnier)를 말하는데 이 극장들은 역사적 가치, 예술적 명성, 건축미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혹 보는 관점에 따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을 꼽기도 하는데 이 둘까지 포함시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으로 부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빠리 오페라 거리 북쪽에 위치한 2,200 석 규모의 오페라 극장이다. 부르는 명칭도 다양하다. 그냥 <오페라 가르니에>라 하기도 하고 <파리 오페라 극장>이라고도 한다. 1861년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가 고전양식부터 바로크 건축 양식을 가미하여 나폴레옹 3세를 위하여 건설에 착공하였으나 국내외 여러 환경으로 지연되다가 1871년 1월 완공되었으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파리 공성전으로 인해 식량 창고와 병원으로 사용되다 전쟁 후인 1875년에 정식 개관하였다.
극장의 외관 모습이 독특하게 보이는 이유가 건축 재료가 돌, 대리석 그리고 청동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사용되었고, 건축 양식 스타일도 고전양식에서 바로크 양식까지 극장에 맞는 적절한 양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및 원작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자 모델이 된 극장이 바로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Palais Garnier)라고 한다. 소설 속 유령이 거주하는 지하 호수와 화려한 샹들리에가 극의 모티프가 되는데 이 극장 지하에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
1858년 1월 14일 이탈리아 혁명가 펠리체 오르시니(Felice Orsini)가 오페라를 관람하러 온 프랑스 나폴레옹 3세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이 암살 미수 사건으로 Garnier는 동쪽 사이드에 새로운 건물을 증축하여 귀빈들이 Royal Box로 안전하게 입장할 수 있게 새로운 Ramp를 만들어 Security를 확보하였다고 한다. 근래에는 오페라 공연의 대부분은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바스티유 옛 감옥소 터에 1989년 7월 14일에 개관한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Opera National
de Paris Bastille)에서 공연된다고 하는데 발레 작품만은 여전히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공연된다고 한다.
입구에 전시된 Charles Garnier 흉상
연회장 GRAND FOYER(휴게실 로비)로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다. 길이만 무려 154미터, 폭이 13미터, 높이가 18미터인 매우 웅장하고 화려한 공간으로 관람하러 온 상류층들이 서로 어울리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다. 사람들이 종종 여기를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과 비교하는 모양인데 어느 곳이 더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지를 가늠해보는 모양이다.
내부 공연장 모습
관람석으로 올라가는 로비 계단이라는데 엄청 화려하다
인터넷에서 발췌한 것으로 화려한 극장 내부의 장식을 한눈에 보여준다. 천장에 그려진 그림은 색채의 마술사로 이름난 마크 샤갈( Marc Chagal)의 1964년도 작품으로 제목은 <꿈의 꽃다발>이다.
샤갈의 천정화에 대한 일화로 프랑스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유명 작가 앙드레 말로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를 샤갈에게 부탁하였다. 그러자 샤갈은 프랑스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이 작업을 무보수로 맡아 천장화를 완성하였다. 국가의 기념적인 천장화 작품을 고작 러시아계 유대인에게 맡긴 것에 약간의 비난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 오페라 가르니에를 방문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오페라 극장은 2,200 좌석을 가진 오페라 하우스로 일층 벽면에 유명 음악가의 흉상을 걸어놓고 그 밑에 이름을 적어 놓았다.
도메니코 치마로사(Domenico Chimarosa)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이다.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것을 프랑스 로시니에게 전승한 공적은 높이 평가된다.
* 오페라 부파(opera buffa)는 희곡 오페라의 한 양식으로, 음악 안에 코미디 또는 음악을 위한 코미디를 뜻한다. 이 장르는 18세기 초기 나폴리에서 발전하였고, 그곳에서부터 그 인기가 로마와 북이탈리아 지역까지 번져나갔다.
오른쪽 흉상 Percolese는 철자가 틀리는지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어 포기했다.
왼쪽 사진은 Vestal Virgins으로 고대 로마에서 화로와 가정의 여신 베스타(Vesta)를 섬기며, 30년간 정절을 지키며 베스타 신전의 성스러운 불꽃을 꺼지지 않게 관리하던 6명의 여사제(베스타 처녀)를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기둥을 확대해서 올렸다.
빠리 가르니에의 야경
신도심 라데팡스
1962년 파리 시에서는 도시 전체 Renovation Program을 추진해 나가다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취임하자 그의 Grand Travaux(gteat Work) Program과 연결하여 여러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주요한 것으로는
라데팡스 지역에 그랑 아르슈(Grand Arche) 신 개선문을 세워 여기를 신도심으로 육성하였고, 오르세이 미술관(Musee d’Orsay) renovation, 그리고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옛 바스티유 감옥소 터에 바스티유 국립 오페라 하우스(the Opera National de Paris Basille)를 세운 것들이다.
오르세이 미술관(Musee d’Orsay)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이면 이런 거다.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 미술관을 찾아갔다. 그 건물의 역사를 알고 봐서 그런지 첫인상이 기차역 같았다. 1900년 만국박람회에 맞추어 오픈한 철도역이자 호텔이었다. 1939년 철도 영업이 중단된 뒤 방치되어 오다가 1970년대에는 철거당할 뻔하였다. 그 뒤 미술관으로 용도 변경되어 1986년에 개관하여 주로 19세기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루브르 및 퐁피두 센터와 더불어 빠리의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렇게도 유명세를 타는지 눈이 펑펑 내리는데도 우산을 받쳐 들고 입장권을 사려고 줄 서있는 모습을 보고 내가 먼저 돌아서 버렸다. 다음을 기약하며 ••••
그랑드 아르슈(Grand Arche)
루브르 박물관의 카루젤 개선문, 드골 광장의 에투알 개선문, 라데팡스의 신 개선문으로 이어지는 8km의 일직선 길을 <역사적 중심축>으로 말하는데 이 길을 살린 도시설계가 매우 돋보인다.
그랑드 아르슈(Grand Arche)는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라데팡스 지역에 새로 건설된 개선문이다. 신 개선문이라고도 한다. 높이 11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개선문이다.
에투알 개선문과 일직선상에 위치한다. 원근감을 이용해 두 개선문이 비슷한 크기로 보이게 찍은 사진을 자주 볼 수 있다. 새로 건설된 개선문 때문에 라데팡스 지역이 신도심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하철로 라데팡스 역에 내리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인파가 몰린 곳을 찾아가 보니 <노엘의 시장>이란 배너를 달고 크리스마스 시즌을 포함하여 연말 축제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나도 오래간만에 많은 인파에 휩쓸려 들뜬 연말 기분을 함께 느꼈다.
일본 음식도 취급한다
제일 붐비고 개수가 많은 점포가 먹거리 파는 곳으로 점심시간이 다가와서 그런지 점포마다 나래비(줄)가 엄청나다.
각종 소시지 제품 파는 가게
각종 장신구 제품 파는 가게
복장이나 연주하는 음악 스타일이 남미 계통이다. 특히
나무 피리(케나)나 갈대나 대나무를 엮어 만든 팬파이프 연주가 음률을 리드한다.
피리와 팬파이프 연주자
나무피리 케나(Quena): 남미 안데스 지역의 나무 피리
시쿠(Siku) 또는 삼포냐(스페인어로 Zampoña)는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산맥 지역 전통의 팬파이프를 말한다.
성탄절 트리도 파는 모양이다.
프랑스혁명의 발생지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 상상도
1789년 7월 14일, 빠리 시민과 민병대가 압제와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여 점령한 사건으로 화약 확보와 루이 16세의 군대 탄압에 대한 저항이 목적이었으며, 이 사건은 프랑스혁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 후 200년 이곳이 어떻게 변모했을까?
200년 후 불타는 바스티유 감옥소가 현대적인 오페라 극장으로 탄생했다. 혁명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1989년 7월 14일 개관하였다. 한국의 정명훈 지휘자가 36세 나이로 이 극장의 초대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였다.
혁명의 성지에 또 다른 혁명의 기념탑을 세워 놓았다.
1830년 7월 프랑스혁명(영광의 3일)은 샤를 10세의 전제 정치와 언론 탄압에 반발하여 파리 시민들이 주도한 봉기이다. 이 혁명의 결과로 부르봉 왕가가 축출되고 루이 필리프가 시민의 왕으로 추대되어 입헌군주제가 시행되면서 유럽 내 자유주의 운동을 자극했다고 한다.
1830년 7월 혁명을 기념하여 세운 탑으로 영광의 3일 동안 희생된 504명의 이름이 탑 아래에 새겨져 있다. 탑의 높이는 51.5m이다.
맨 위의 금빛 조각상을 <Genius of Liberty>라고 하는데 조선말로 하면 <자유의 수호신> 정도가 되겠다. genius에 수호신이란 뜻도 있다.
1830년 7월 혁명의 거사일인 27, 28, 29을 영광의 3일이라 하여 트루아 글로리외즈(Trois Glorieuses)라고 부른다.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당파와 이에 반대하는 공화당 파간의 대립으로 무장봉기한 혁명군이 3일 만에 왕당파를 누르고 새로운 7월 왕정을 수립할 수 있었다.
시몬 볼리바르(1783 - 1830)는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운동가로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로 라틴 아메리카 각 나라의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어디서 촬영했는지 기억은 없으나 그랑빨래 사진에 연이어 나오는 걸 보니 그 근처 어디에서 찍은 것 같다.
빠리 시청사(Hotel de Ville)
17세기에 건축된 빠리시청사로 1871년 화재로 전소되어 그 후에 재건하였다. 건물 외벽 곳곳에 장식된 조각상이나 치장물이 빼어나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하다. 옛날에는 청사 앞 광장에서는 사형수를 공개 처형하였고, 마녀 사냥 같은 화형식도 이곳에서 행하여졌다고 한다. 시장들의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곳이며 동시에 거주지로 여기서 살았다고 하는데 현 시장은 여기에 살지 않고 다른 곳에서 살면서 출퇴근하는 모양이다.
시청사 지붕 중앙에 세워놓은 탑으로 조형미가 엿보인다. 19세기에 화재로 전소되어 재건축되었다 하더라도 근 150년을 꿋꿋하게 지켜내고 있다.
시청사 건물 문양 디자인
생 쟈크 탑(Tour St-Jacques)
16세기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탑으로 1797년 파괴된 교회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순례자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복음 전도사의 상징으로 탑 꼭대기 네 코너에 사람, 사자, 황소와 독수리상을 각각 설치해 놓았다.
이 탑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는 17세기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이고 철학자인 파스칼이 이 탑에서 물리 실험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 그것은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이태리 피사의 탑에서 낙하운동 실험을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복음 전도사의 상징을 탑 꼭대기에서 찾아보았는데 사람과 사자 상은 찾았는데 독수리와 황소 상은 찾지 못했다. 아마 다른 쪽에 있는 모양이다. - J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