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 3세 다리와 호텔 앵발리드
2010년 12월 9일(목) 흐림
알렉산드로 3세 다리(Pont Alexandre III)
다리는 1896년~1900년에 지어진 것으로서 당시로는 최신식의 등과 천사 등을 형상화한 조각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리의 명칭은 프랑스-러시아의 공조를 1892년 성사시킨 러시아의 알렉산드로 3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다리의 초석을 내린 사람은 그의 아들이었던 니콜라이 2세였다.(그는 제정 러시아를 마감한 마지막 짜르다) 다리의 건설은 19세기 기술이 결집된 것으로서 6미터의 높이로 지어져 있다. 철제 다리로서 아치 형으로 뻗어 있으며 실은 다리가 샹젤리제와 앵발리드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건축이 고려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 3세 다리 입구
1917년 레닌이 이끄는 볼세비키파가 혁명에 성공하여 러시아 제정시대가 막을 내리고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가족들과 함께 총살에 처해진다. 니콜라이 2세의 아버지가 바로 이 다리가 이름을 얻은 알렉산드로(알렉상드로) 3세로 1896년에 시공하여 1900년 프랑스 만국 박람회에 맞추어 완공한 빠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힌다. 왜 그의 이름이 다리에 명명되었느냐 하면, 당시 유럽 정세가 러시아-독일-프랑스가 서로의 실리에 의해 동맹을 맺어 대항하였는데 프랑스와 러시아가 동맹국으로 독일에 대항하였기에 프랑스에서 보답으로 러시아 황제의 이름을 다리에 부여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알렉산드로 3세 치하에서 레닌의 맏형이 알렉산드로 3세의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처형당했지만,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레닌은 니콜라이 2세 가족을 처형하였으니 형의 복수를 그 아비의 아들에게 한 셈이 되었다.
다리 네 모퉁이에 금빛 찬란한 조각상을 각각 높이 올려놓아 아름다운 형상미를 추구한다.
다리 장식이 요란스럽기도 하지만 진짜 우아하다
앵발리드로 연결되는 다리
다리 위에서 바라본 센강과 유람선
앵발리드 호텔(Hotel des Invalides)
앵발리드는 루이 14세가 전쟁에서 다친 부상병과 퇴역 군인들의 요양소로 건설된 건축물로 1671-1676년에 완공되었다. 그 안에는 반짝이는 황금으로 덮인 돔지붕을 이고 있는 Dome Church는 나폴레옹 1세가 마지막으로 영면에 들어간 장소가 되었다. 앵발리드 동쪽을 통과하는 도로 앵발리드 블루바드 건너편에는 조각가 로댕(Rodin) 미술관이 있다. 오늘날에도 호텔 일부는 퇴역 군인들의 요양소로 이용되고 있고, 바로 옆에는 군사 박물관이 있다.
알렉산드로 3세 다리 위에서 희미하게 윤곽이 잡히는 앵발리드와 Dome Church
앵발리드와 돔교회
앵발리드 정면 입구
앙발리드 정면 출입구
앙발리드 다른 출입구로 Dome Church를 먼저
만나게 되어 있다
앙발리드 입구 파사드
나폴레옹 1세 유해가 안치된 Dome Church
이 교회 안에 나폴레옹과 그의 왕비 조세핀 유해가 잠자고 있다. 1821년 두 번째 유배지인 세인트 핼레나 섬에서 영면한 나폴레옹의 유해가 1840년에 여기 Dome Church로 이장되었다. Dome Church는 앵발리드가 완공된 뒤에 부속건물로 설계되어 주로 왕실 가족의 무덤으로 이용되었다.
Dome Church의 내부 모습(인터넷 사진)
이 글을 포스팅하다가 새로 알게 된 것은 여기에 나폴레옹 1세와 그의 반쪽 조세핀만 안치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나폴레옹 1세의 유일한 아들 나폴레옹 2세도 안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세핀이 후사를 두지 못해 이혼하고 오스트리아 황제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란츠2세의 장녀 Marie-Louise에게 새 장가를 든 나폴레옹 1세는 그의 나이 42세에 늦둥이 아들을 얻을 수 있었지만 유배를 가는 바람에 생이별하게 되자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외가인 오스트리아로 돌아 가 그 후 다시 상봉할 수 없게 되었다. 나폴레옹 2세는 21세가 되던 1832년 지병인 폐렴과 결핵으로 요절하였다. 나폴레옹 2세의 유해는 오스트리아 빈 합스부르크 왕가 묘지에 있다가 1940년 12월 15일,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로 파리 앵발리드 Dome Church에 있는 아버지 나폴레옹 1세의 무덤 옆으로 이장되었다. 당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히틀러는 이 조치를 통해 나폴레옹의 영광을 기리는 제스처를 취해 프랑스 국민의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려 보려고 한 것 같았다.
마리아 루이스(1791-1847)
엄마와 함께한 아들 나폴레옹 2세(1811-1832)
나폴레옹 1세가 1814년 엘바섬으로 유배길에 올랐으니
아들이 3살 때 생이별 한 셈이다. 나폴레옹 1세의 실각 후 아들은 엄마와 함께 오스트리아 외가에서 성장하였으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일찍 죽었다.
금박으로 조각된 돔 지붕
군사 박물관(Musée de l'Armée)
군사 박물관 약도
군사 박물관에는 석기시대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병기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박물관에 수집 전시된 각종 총기와 대포는 수량면에서 전 세계에서 세 번 째라고 한다.
군사 박물관에서 바라본 Dome Church 지붕
군사 박물관의 정문이라 할까? 나는 앵발리드 정문으로 들어와서 군사 박물관과 Done Church를 지나 이 문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문은 군사 박물관의 정문이기도 하지만 앵발리드 건물의 후문에 해당되기도 한다.
군사 박물관이 있는 앵발리드와 그랑쁠래 건물은 센강을 가로 지른 아름다운 다리 알렉산드로 3세 다리를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앵발리드 정문에서 멀리 다리쪽으로 바라보면 왼편에 높은 지붕 위로 깃발이 펄럭이는 곳이 그랑빨래 건물이있는 곳이다. 그 건너편에 쁘띠 빨래가 있다.
건물 지붕 코너에 말이 끄는 마차를 모는 조각상을 확인하는 순간 그랑빨래가 맞다고 생각하였다.
참으로 멋들어지게 화려한 건물이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