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과 개선문
2010년 12월 7일(화) 흐림
원래는 루브르 궁전이었으나 일부는 지금 미술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루브르 궁전의 시초는 1360년경 찰스 5세가 필립 오거스트의 튼튼한 성채를 왕족들의 거주지로 변모한데서 출발한다.
* 필립 오거스트(Philippe Auguste, 필리프 2세)는 12세기 말~13세기 초 프랑스 카페 왕조의 왕으로, 프랑스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왕권을 강화한 군주로 빠리를 수도로 정비하고 제3차 십자군에 참여하는 등 프랑스 중세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왕이다.
1672년 베르사유궁이 완공되자 루브르궁은 왕실의 수집품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하게 되어, 1190년 처음에는 필립 오거스트의 성채로 건축되어 그 후 궁전으로 승격하여 약 500년간의 소임을 다하고 궁전이란 이름을 떼게 되었다. 그 후 루브르궁은 왕실이 후원하는 예술가의 활동지로 빠리 예술의 중심지가 되어 1692년에 왕립 아카데미가 들어섰고, 살롱전등이 개최되며 약 100년간 아카데미가 유지되었다.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은 1793년부터 시작하여 여러 회화와 전시품을 선보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마국의 메트로폴리탄, 영국의 대영제국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위상을 지키고 있다.
루브르 궁전은 1682년 태양왕 루이 14세가 수도 궁전을 여기서 남으로 24km 떨어진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전하게 되자 수도 궁전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었다. 루이 14, 15 그리고 16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거주하였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프랑스 왕정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11월에 내린 눈위로 석양이 깔린다
박물관 방문객들이 눈내린 초겨울 날씨를 만끽하고 있다
곧 바로 찾아드는 일몰의 황혼
루부르 미술관 입구
프랑스혁명 200년을 기념하여 1979년 공모작으로 선정된 유리 피라미드로, 루브르의 새로운 명물이 되고 있다.
루부르 박물관의 야경
카루젤 개선문(Arc de Triomphe du Carrouse)
빠리 시내에는 총 3개의 개선문이 있다.
- 루부르 궁전 입구에는 카루젤 개선문
- 드골 광장 한복판에는 에투알 개선문
- 신도심지 라데팡스에는 현대식 신개선문
루브르 박물관과 튈르리 정원 사이에 위치한 카루젤 개선문(Arc de Triomphe du Carrousel)은 나폴레옹이 1806년 승전을 기념해 세운 높이 약 15m의 기념물로 에투알 개선문보다 작다.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을 모델로 하여 만든 작은 개선문으로 4개의 문이 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개선문 정상에는 원래는 나폴레옹이 베네치아에서 약탈한 청동마가 있었으나 1815년 반환 후, 지금은 4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탄 여신상 복제품으로 대체되어있다.
카루젤 개선문 정상에 있는 마차를 탄 여신상 복제품
카루젤 개선문 정면에 좌우로 새겨진 부조 조각
루브르 궁전 왼편으로 카루젤 개선문이 보인다.
드골 광장에 세워진 에투알 개선문과는 다른 개선문으로 나폴레옹이 1806년에 세운 것으로 루브르 궁전의 입구에 서있다. 일명 카루젤 개선문으로 불린다. 이전에 이 곳이 군사용 마장마술(Carrousel) 시합이 열렸던 카루젤 광장이라 그렇게 불린다.
* 티투스 개선문(Atch of Titus)
기원후 1세기에 지어진 개선문으로 이탈리아 로마 포럼의 남동쪽에 있다. 티투스 개선문은 황제와 함께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티투스 황제가 죽은 직후인 기원후 81년경에 그의 동생이자 후임 황제인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축되었다. 티투스 개선문은 16세기 이후 건립된 많은 개선문의 표준 모델이 되었으며 대표적으로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개선문의 표준 모델이 된 로마의 티투스 개선문
로마 포럼 모습(2009년 촬영)
콜로세움 앞에 있는 티투스 개선문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 )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 아르크 드 트리옹프 드 레투알)은 프랑스 빠리 샹젤리제 거리의 서쪽 끝, 샤를 드골 광장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개선문이다. 에투알 개선문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개선문 아래에는 당시 전쟁에서 프랑스가 거둔 모든 승전보들과 지휘관들의 이름이 양각되어있다. 개선문 아래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이들을 기리는 무명 용사들의 무덤이 위치하고 있다. 매년 1월 1일 자정에 새해를 자축하는 불꽃놀이 행사를 바로 이 개선문에서 거행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신년맞이 행사의 중심인 셈이다.
개선문의 바로 아래에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무덤이 있다. 이는 1920년에 독일이 항복한 날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이때부터 이 곳에 절대로 꺼지지 않는 성화가 불타기 시작했다. 이 성화는 4세기에 로마포럼에 있던 베스타 신전의 성화가 꺼진 이후, 서양에서 첨으로 공식적으로 점화된 꺼지지 않는 성화이다.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이 후에는 2개의 세계대전에서 죽은 이들 모두를 기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매년 11월 11일에는 무명 용사의 무덤에서 추모식이 열리는데, 이는 1920년 11월 11일에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항복을 선언한 날로 이를 기념하여 추모식이 열린다.
드골 장군의 조각상
에투알 개선문의 조각상들
개선문 앞뒤로 좌우에 하나씩 총 4개의 조각상이 있다.
남쪽에서 바라 본 개선문
북쪽에서 바라 본 개선문
1. 1792년 출발(Le Départ de 1792)
남쪽에서 바라볼 때 개선문 오른편을 장식하는 조각상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라 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라고도불리며, 8월 혁명으로 프랑스 제1공화국이 탄생한 것을 기리고 있다. 날개를 단 자유의 여신이 군중들을 인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2. 1810년 승리(Le Triomphe de 1810)
남쪽에서 바라볼 때 개선문 왼편을 장식하는 조각상으로
당시 오스트리아의 쇤부른 궁전에서 프랑스에게 유리하게 체결된 1810년의 쇤부른 조약을 기념하여 지어진 조각상. 승리의 여신이 나폴레옹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며 축복하고 있는 장면이다.
3. 1814년 저항(La Résistance de 1814)
북쪽에서 바라볼 때 개선문 왼편을 장식하는 조각상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 황제 주도의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하여 유럽 각국들이 결성한 제6차 대프랑스 동맹군에 맞서 싸우는프랑스 군대의 모습을 기념한다.
4. 1815년 평화(La Paix de 1815)
북쪽에서 바라볼 때 개선문 오른편을 장식하는 조각상
나폴레옹 전쟁을 종결한 1815년의 파리 조약을 기념한다
개선문 정면 외벽에는 앞뒤 2개씩 4개와 좌우측면 2개로 총 6개의 조각들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La bataille d'Aboukir (아부키르 전투로 남쪽 파사드 좌편에 위치)
2. Les funérailles du général Marceau (마르소 장군의 장례식으로 남쪽 파사드 우편에 위치)
3. La bataille de Jemappes (제파페스 전투로 동쪽파사드에 위치)
4. La prise d'Alexandrie (알렉산드리아의 함락으로 북쪽 파사드 좌편에 위치)
5. Le passage du pont d'Arcole (아르콜 다리 전투로 북쪽 파사드 우편에 위치)
6. La bataille d'Austerlitz (아우스터리츠 전투로 서쪽 파사드에 위치)
* 파사드(Façade)는 프랑스 건축 용어로, 주로 건축물의 정면 외벽을 의미한다.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카루젤 개선문과 같이 공사를 시작했으나 카루젤 개선문은 2년 뒤, 1808년에 완성되었으나 에투알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유배를 가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그가 죽고 난 뒤 15년이 지난 1836년에 완공되었다. 보통 파리의 개선문이라하면 이 에투알 개선문을 지칭한다.
나폴레옹이 조세핀과 이혼하고 새 장가를 오스트리아 황제 딸인 Marie-Louise와 치루는데 새 신부와 함께 루부르 궁전으로 결혼식 가기 전에 개선문 아치를 지나가고 싶었으나 공사가 더디어 옆에다 간이 개선문 모형을 만들어 신부와 통과했다고 한다. 그렇게도 에투알 개선문 준공을 고대했지만 나폴레옹은 몰락하여 엘바섬으로 유배되었고, 1815년 2월 극적으로 엘바섬을 탈출하여 백일천하를 호령하였지만 다시 포로가 되어 아프리카 서해안에 있는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1821년 5월 5일 51세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그곳에 묻혔던 그의 유해가 19년 만인 1840년 프랑스 빠리 앵발리드(Invalid) 안에 있는 Dome Church로 이장되었는데 이장되기 전 마지막으로 에투알 개선문에서 장례식을 치루게 되어 살아 생전에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개선문을 죽어서야 저승에서 겨우 보게된 셈이다.
에투알 개선문 아래에서 치러지는 나폴레옹의 장례식
그림에는 개선문 꼭대기에 황금 사두마차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에게 승리한 프랑스군이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가져온 황금 사두마차상이다. 이후 독일이 1814년에 이 동상을 도로 되가져 가서 지금은 현재처럼 텅 비게 되었다.
유해가 안치된 Dome Church가 있는 앵발리드 전경
유해가 안치된 Dome Church 전경
에투알 개선문에서 본 빠리 풍경들(인터넷 사진)
샤를 드골 광장 야경
샹젤리제 거리
혁명 기념일 군사 퍼레이드
2024년 하계 올림픽
샤를 드골 광장의 항공 사진으로 정확하게 12 방위로
도로가 나있다. 그 중심에 에투알 개선문이 있다.
1944년 8월 25일 빠리 해방 뒤 환호하는 관중들-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