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이 밝았다. 일본 특유의 정갈한 정식을 아침으로 먹었다. 어제 묵었던 '윷쿠라'는 진세키고원에 위치한 온천 숙박이다. 일본어 '윷쿠리'는 '천천히, 느긋하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다미방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진세키고원은 히로시마 공항에서 약 1시간 반 가량 굽이 굽이 산길을 오르다 보면 도착할 수 있다. 약 9천 명이 사는 시골마을이다. 이곳에는 피스윈즈재팬(PeaceWindsJapan)이라는 조직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피스윈즈재팬(PWJ) 대표 오니시 켄스케는 주인을 찾지 못한 보호센터의 수많은 유기견들이 처참하게 질식사 당하는 현장을 보고 '피스완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기견을 데려와 구조견으로 훈련시키기도 하고, 새로운 주인을 만나도록 돕고 있다. 진세키고원에 방치된 임야 1만여 평을 활용하여 유기견 보호소 및 구조견 훈련소, 티어가르덴(Tiergarten)을 조성했다. 티어가르덴은 독일어로, '동물의 공원'을 뜻한다. 현재 히로시마 현 유기견 살처분율은 제로(0)를 유지하고 있다.
티어가르덴 안에는 '마르크플라자(Markt Platz)'라는 상점이 있다. Markt Platz는 독일어로, '시장 광장'을 뜻한다. 동티모르에서 온 '피스커피', 네팔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 등 다양한 공정무역 제품을 만날 수 있고,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산지소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선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마시는 커피란 :)
티어가르덴에는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이곳은 함바그 스테이크를 잘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주류도 판매한다. 여름, 겨울 계절별로 종류가 있다.
티어가르덴은 주로 반려동물과 함께 가족이 많이 찾는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넓은 언덕 중간에는 '숲속의 도서관'이 있다. 나무 내음을 맡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낭만적이다.
이곳에는 총 4개의 견사가 있고, 2,200마리 이상의 유기견을 철저한 위생관리 속에 보호하고 있다. 입양이 가능하도록 완벽하게 훈련이 된 개들은 도시에 있는 양도센터로 이동한다. 도쿄, 후쿠야마, 히로시마 등 총 4곳에서 양도센터를 운영 중이다.
개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전용 공원과 수영장이 있다. 물을 내뿜고 있는 동상은 '인간이 생명에게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됐다.
피스완코(PeaceWancoJapan) 사무실 모습이다. '완코'는 일본어로, '강아지'를 뜻한다.
* 참고 기사:http://h21.hani.co.kr/arti/PRINT/44463.html
진세키고원 옆 동네 세라마을에 있는 '오헤소(オへそ)'는 스페인 남자와 일본 여자가 결혼하여 운영하는 곳이다. 일본식 전통가옥에서 맛보는 스페인 요리는 더욱 특별했고, 곳곳에 녹아 있는 세심한 배려가 여행자를 감동케 했다.
손님이 많아 주인 분과 오래 대화하지 못해 아쉬웠다. 다음에 오면 왜 이곳에 정착했는지, 어떻게 식당을 시작했는지 등 오헤소와 얽힌 스토리를 들려주기로 했다.
오헤소 직원에게 추천받은 이찌방 메뉴들. 화덕에서 구워 도우가 쫄깃쫄깃하다.
오후에는 후추 시에 있는 조게 초를 둘러 보았고, 한 골동품 가게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시게모리씨는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를 들으시고는 조용필을 좋아한다며 조용필 노래를 흥얼거리셨다. 가게 안에는 할머니께서 직접 수집한 여러 골동품이 있었다.
내일 음악 콘서트가 있다고 하셨다. 이곳에서 자주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한다.
음악 콘서트 사진. 사진마다 가장 아담한 체격을 하고 계신 분이 시게모리 할머니다. 도쿄에서 태어나 남편을 따라 이곳으로 이주했다. 3명의 자녀을 두고 있고, 2명은 도쿄에서, 1명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골동품 가게는 자녀를 모두 키우고 나서 시작하셨다.
약 20년 동안 300회 이상 지역에서 마켓을 열어 신문에 게재됐다고 하셨다.
커피와 차도 팔고 있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집에도 골동품이 많은데 구경할래? 라고 먼저 제안해주셔서 얼른 따라 나섰다.
집이 어마무지하게 컸다. 이유를 들어보니 에도시대 때부터 사케를 만들던 양조장을 남편이 이어 받아 3년 전까지 운영하셨다고 한다. 양조장 운영을 멈춘 후로 할머니께서 직접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지금은 골동품 수집 공간으로 사용한다.
양조장을 운영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혼자 관리하기 바쁘다며 너스레를 떠신다.
끝나지 않는 공간 소개 ㅎㅎ 이곳은 지역 축제 장소로도 사용하고, 영화 촬영 세트장으로도 쓰인다고 했다. 여러 모로 대단하시다.
다음에 또 오겠다며 할머니와 운명적인(?) 만남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필 앨범을 사서 와야겠다 ㅎㅎ
조게 초의 여러 풍경들. 교토를 닮았다.
조게 역, 역사, 기찻길 풍경들. 조그만 역사에도 여행자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각 역을 기점으로 기차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다시 진세키고원으로 돌아오는 길, '미치노에키'에 들렀다. 일본어로 '길의 역'이란 뜻이다. 일본 국도변의 휴게소를 말한다. 이곳은 지역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로컬푸드 농산물직판장이 휴게소의 중심이 되고 있다.
미치노에키는 1993년부터 활성화 되어, 일본 전역에 1,10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단순히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판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식자재를 이용한 각종 음식을 비롯해 가공상품까지 판매하고 있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오늘도 아이스크림은 거를 수 없다. 182 도로 미치노에키에서.
각 미치노에키에서는 스탬프 북을 판매한다. 지역별 스탬프를 모아서 제출하면 품질이 좋은 지역 생산품을 선물로 준다. 스탬프 북을 구매했다. 또 오려고 ㅎㅎ
오오카미 브레드, 늑대의 빵집이다. 빨간 모자에서 맛있는 빵을 빼앗아 먹던 늑대를 착안했다. 천연효모를 사용해서 건강하고, 천연효모를 사용해서 건강하고, 독특한 재료를 가미해서 보는 재미, 먹는 재미가 있다.
작년, 덴마크 코펜하겐는 '관광의 종말'을 선언했다. 지역에 해를 끼치는 관광은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모두를 위한 지역성'을 내세우며 5가지 관광 전략을 발표한다.
1. Shareability is king
- 여행자, 파트너 및 영향력 있는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든다.
2. Once attracted, twice valued
- 한 번 방문한 여행자를 또 오게 만든다.
3. Tomorrow’s business today
- 여행자 방문이 미래 사업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한다.
4. Co-innovation at heart
-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내도록 협업 기회를 제공한다.
5. People-based growth
- 거주자와 여행자 모두 행복해야한다. 여행자 수 보다는 가치에 집중한다.
오늘 답사한 곳은 모두 코펜하겐이 세운 관광전략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누군가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좋을까?
오늘의 마무리도 요거트와 함께 :)